2022.09.20 10:14
- 2022년작이고 런닝타임은 1시간 42분. 장르는 코미디에요. '액션/코미디'라고 주장하지만 여기에 '액션'을 붙이는 건 액션을 모독하는... ㅋㅋ 암튼 구체적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정신 사나운 것이 딱 영화 컨셉과 어울리는 좋은 포스터입니다.)
- 메소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님께서 이 영화의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를 연기하십니다. 한 때 헐리웃을 주름잡는 톱스타였지만 흥청망청 대충 살다가 커리어도 망했고 경제적으론 빚 투성이에 이혼한 전 와이프도, 하나 있는 딸래미도 모두 자기를 한심하게 보고 있어요. 모처럼 맘에 드는 역할이 생겨서 '원한다면 오디션이라도 볼 게!' 라며 들이대 보지만 소박 맞구요.
그런 판국에 '일단 빚이라도 갚고 보자'라는 매니저의 권유대로 어떤 갑부의 생일 파티 초대 손님 역을 받아들이고 먼 길을 떠납니다만. 오. 이 사람 의외로 사람도 좋고 뭣보다 진짜 레알 니콜라스 케이지의 찐팬입니다. 심지어 영화 취향도 괜찮아서 대화도 잘 통하구요. 저엉말 오랜만에 편안한 맘으로 예술 대화도 나누고 자긍심도 리필하는 행복한 케이지씨입니다만. 갑자기 들이닥친 CIA가 '그 놈은 무기 암거래 시장의 큰 손이며 지금 어떤 나라 대통령 후보의 어린 딸을 납치해 위협 중이다'라며 스파이질을 해달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시키는 일은 해야할 것 같은데!!! 과연 갑부 '하비'의 정체는!? 메소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스파이 흉내의 결말은!!? 무너진 가족 관계의 미래는!!!!!?
(내가 바로 메소드 배우다!!!!)
- 한동안 브루스 윌리스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초현실적으로 망가진 커리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였죠. 결국 둘 다 사정이 밝혀지며 일단락되긴 했지만 물 건너 사람들도 그게 참으로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런 괴이한 기획이 실제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수 있었겠죠. ㅋㅋ
이 영화 속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정말로 니콜라스 케이지입니다. 아니 물론 이런 픽션 속에 들어갔는데 그게 100% 본인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전달되는 정보들은 대부분 현실의 그것과 같아요. 그리고 영화는 계속해서 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한 TMI를 던져대며 그걸 농담 거리로 삼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예술관, 연기관, 출연작들의 뒷 이야기 같은 게 계속해서 튀어나오거든요. 그래서 얼핏 보기엔 진짜로 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한 팬무비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딱히 팬이 아니어도 '아 이거 그거구나'라고 알아보시... 지 않을까요? 전 그런데요. ㅋㅋ)
- 문제는 앞서 말 했듯이 당연히 영화 속 니콜라스 케이지가 진짜 현실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일치할 리는 없다는 겁니다. 일단 가족 문제만 봐도 그렇죠. 영화 속의 전처와 딸은 현실의 전처와 딸이 아니거든요. 니콜라스 케이지는 젊은 동양 여자랑만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닌지 오래잖습니까. 샤론 호건의 비주얼을 한 전처나 케이트 베킨세일과 마이클 쉰의 딸래미처럼 생긴 20대 딸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구요.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좀 괴상한 재미가 생깁니다. 과연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읊어대는 본인의 취미, 성향, 가치관 같은 건 얼마나 진짜 니콜라스 케이지 본인의 것일까요. 이 양반이 떠드는 옛날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요. 뭐 대단한 영화광이거나 니콜라스 케이지의 찐팬이라면 보면서 바로 캐치할 순 있겠지만 전 그냥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이렇게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괴상한 방식으로 무너뜨리고 혼란에 빠트리는 건 나름 재밌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왜냐면 제가 이 혼돈을 즐겼으니까요. 우주의 중심은 저! ㅋㅋㅋ
(주인공은 진짜 니콜라스 케이지 같은데 당연한 듯이 가짜 가족이 등장해서 가짜 이야기를 하니 정신이 마구 산란해지는 것입니다.)
- 이런 부분을 제끼고 그냥 이 영화란 대체 어떤 물건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면... 대충 막 나가는 허랑방탕 개그물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진지함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드립으로 시작해서 드립으로 끝나는 그런 영화에요. 간신히 얼개만 존재하는 모험담을 핑계로 니콜라스 케이지 농담과 헐리웃 영화판 농담을 런닝타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던져대는 게 존재 의의죠. 다행히도 그 농담들은 꽤 타율이 높아요. 재치 있는 농담도 많거니와 주연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 페드로 파스칼의 작정한 개그 연기가 꽤 잘 먹힙니다. 사실 좀 90년대 헐리웃 코미디 영화들 스타일의 노골적 개그 연기들이라서 웃김과 유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할 때가 많습니다만. 둘 다 실력 있는 배우들이니 유치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서 썰렁해지는 장면은 별로 없었어요.
(실제 영화의 분위기는 대략 이런 거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 다만... 아무리 최종 목적이 그런 영화라고 하더라도 뼈대가 되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무성의한 편입니다. ㅋㅋ 그나마 하비의 정체가 미스테리로 존재하는 중반 정도까진 괜찮은데. 모든 미스테리가 다 밝혀지고 정답이 제시되고 난 후, 그러니까 클라이막스에 돌입하는 부분 부터 엔딩까지는 솔직히 '탈력'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차피 이런 영화 결말이 이거 말고 더 있겠어?'라는 식으로 뻔뻔하게 대충 막 흘러가는데, 아... 그래도 이보단 좀 낫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좀 아쉽더군요. 특히나 '액션' 쪽은 상태가 많이 심해요. 웃기는 게 목적이라면 '뜨거운 녀석들' 같은 스타일로 연출한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 영화의 액션은 웃기기 위해 엉성한 게 아니라 그냥 무성의합니다. 심지어 그 대목에선 주인공 둘이 다 진지하기 때문에 웃기지도 않는데 그냥 허술하기만 하더라구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저예산 액션 영화의 액션도 이렇진 않겠다 싶었던.
(코미디로서는 썩 괜찮았으니 끝까지 그냥 그쪽에 방점을 찍는 전개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딱히 길게 말할 게 없는 영화라서 빠르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진짜 그냥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코미디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상당히 즐거운 시간 보내실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호감이 있거나 아님 그냥 관심이 많거나 하는 분들이라면 더 더 재밌을 거구요.
하지만 뒷심이 약해서 뒤로 갈 수록 좀 심심해지는 편이고. 또 재밌는 장면들이 잔뜩 있어도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영 별로라는 거. 하다 못해 클라이막스에 뭔가 야심찬 농담 하나 어떻게 만들어 넣어줬다면 인상이 훨씬 좋아졌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요.
그러니 기대치를 좀 낮추시고. '니콜라스 케이지로 웃기는 영화' 라는 컨셉이 본인에게 얼마나 재밌을 것인가... 를 생각해서 관람 결정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전 어쨌거나 재밌게 봤어요. 이렇게 속 없이 '웃길 거야 웃길 거야 웃기고 말 거야'라는 식으로 달리는 영화를 워낙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요. ㅋㅋ
+ 영화의 소재를 생각하면 좀 의외지만 카메오 출연은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결말 부분에 나오는 한 분 정도? 뭐 그럴만도 하죠. 제작비 3천만달러 짜리 영화에요.
그리고 제작자 명단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올라 있군요. 왜 아니겠어요. ㅋㅋㅋ 근데 안타깝게도 흥행은 망했군요. 극장 수익으론 본전도 못 뽑았답니다(...)
++ 아. 글 제목이 왜 저러냐면요. 그건 보시면 압니다. ㅋ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옛날에 DL로 구입해 놓고 아직도 안 틀고 있는 패딩턴 1, 2를 얼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2.09.20 13:23
2022.09.20 20:02
그렇군요. 그 전에 쏟아지던 헐리웃 드립의 연장선상으로 클라이막스를 본다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네요. ㅋㅋ
말씀대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케이지의 대표작들을 거의 다 보고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웃기는 장면 많은 재밌는 영화였어요. 특히 '맨디'를 굳이 언급하는 걸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한결 더 관대한 맘으로 봤지요.
정말 케이지와 파스칼 둘이서 완전 '캐리'한 영화라고 느꼈어요. 재밌을 부분은 더 재밌고 그냥 그럴 부분까지 재밌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네요. 하비 그 양반 정말 어찌나 귀여운지. ㅋㅋㅋ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타란티노는 좀 쌩뚱맞네요. 뭐 그런 장면을 연기할 실제 감독으로는 적격이긴 합니다만 케이지랑은 좀. 안젤리나 졸리 나오미 와츠 다 아쉽지만 뭐 실제로 나온 분도 괜찮았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뵈어서 반가웠네요. 좀 더 클로즈업이라도 잡아 주지 그랬냐는 생각도 좀 들구요. ㅋㅋ
2022.09.20 20:17
2022.09.20 20:20
2022.09.20 21:26
앗 이거 엄청 보고싶었던 영화예요! 닉케이지는 꽤 오랬동안 단골 놀림감이었지요. 남들 개인기로 전락하느니 이렇게 아예 본인이 직접나서는 편이 모양새도 좋고 경제적으로도..(아참 이쪽은 별로였다고요...ㅜㅜ)
페드로파스칼 같은 캐스팅도 아주 전형적이네요 ㅋㅋ 꽤 신뢰받는 번역가인 황석희씨가 작업을 하셨군요. 어딘가 ott에서 업어오면 봐야겠습니다. ㅎ
2022.09.20 21:39
2022.09.20 21:43
2022.09.20 23:02
수익 보전을 위한 빠른 OTT행 기대(?)해 봅니다... ㅠㅜ
JCVD 말씀이군요. 그게 흥행은 안 됐어도 평은 상당히 좋았는데요. 안타깝게도 벨기에산 영화인 데다가 반담 단물 다 빠지고도 한참 뒤에 나온 영화라 그런지 국내엔 아예 수입이 안 된 것 같더라구요. 나온지 14년이 지났으니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ㅠㅜ
말씀대로 액션 위주로 전개되는 후반이 약하긴 했지만 그것도 작중 대사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상업영화들에 대한 셀프 메타개그로 미리 떡밥 깔았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구요. 저를 포함해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리즈시절 출연작들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근 몇년간 가장 웃기는 영화였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호평받았던 작품 언급도 나오고 대부분 개그로 소화되긴 하지만 정말 이 배우에 대한 오랜 애정과 리스펙트가 있는 사람이 쓰고 연출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톰 크루즈에게 탑건 매버릭이 있었다면 니콜라스 케이지에게는 이 작품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흥행성적이 비교하기가 민망하군요 ㅠㅠ 뭐 어쨌든 왕년의 스타의 컴백은 언제나 반갑습니다. "어디 갔었다는 건 아니지만"
니콜라스 본인도 처음엔 무슨 SNL 꽁트처럼 자기를 희화화하는 영화인 줄로만 알고 각본을 읽어보지도 않고 패스했었는데 감독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받고나서야 읽어보고 수락했다고 하더군요. 일단 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200% 열정으로 연기하신 것 같습니다. 중간에 과거 출연작 중 하나에서 그 특유의 갑자기 텐션 올리는 연기를 보며 자기도 깜놀하는 장면이 제일 웃겼어요. 그리고 중간에 자신의 젊은 시절 분신 니키와의 민망한 장면은 심지어 본인이 즉석에서 낸 아이디어라고 하더군요 ㅋㅋ
아마 감독이 오너캐로 집어넣은 듯한 하비 캐릭터도 참 걸작이었죠. 이건 진짜 진심을 다해서 소화해내야 제대로 사는 배역인데 페드로 파스칼이 너무 찰지게 잘했어요. 혼자 많이 돋보였던 원더우먼 1984에서도 그렇고 참 다재다능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둘이 담넘으려고 뻘짓하는 시퀀스 같은 것도 되게 시시한 썰렁개그일 수 있는데 페드로 연기 때문에 배를 잡고 깔깔 웃었네요 ㅋ
여담으로 초반에 케이지에게 역할을 제안하는 감독 역할은 원래 쿠엔틴 타란티노 카메오를 계획했었는데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할로윈 리퀄로 유명한 데이빗 고든 그린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후반 들어서 커리어가 하향세를 겪으며 우울하던 시기에 같이 작업했던 2013년작 <조>라는 작품으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고 이후로도 절친한 사이라서 이번에 꼭 맡아줬으면 했다네요. 그리고 작중 언급되는 과거 출연작 식스티 세컨즈에 같이 출연했던 안젤리나 졸리도 카메오로 나오기로 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답니다. 아쉽...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 또다른 카메오로 나오미 왓츠가 출연하기로 했다가 스케쥴 문제로 다른 여배우로 교체됐는데 보셨으니 어느 장면에 누구인지 아시겠죠? ㅎ 이 영화의 톤과 의미로 볼 때 차라리 더 잘어울렸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