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7 18:09
일찌감치 올해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갈 리스트에 올려놨던 작품입니다. 국내 감독 중에서 봉준호, 박찬욱처럼 평단과 매니아들의 극찬을 받는 타입은 아니지만 매번 어떤 장르를 건드리더라도 자기만의 스타일로 웰메이드를 찍어서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것 만큼은 가장 확실한 사람이 최동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사회 후 반응부터 불안불안하더라니 개봉 후 관객들의 입소문도 기대치 대비 최악이었죠. 그나마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도 주변에 추천은 못하겠다 정도에 그칠 수준이니... 최동훈의 흥행불패도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깨지고 말았죠. 예전에는 아무리 입소문이 안좋아도 원래 보려고 맘먹었던 영화는 꼭 보러 갔었는데 이젠 티켓값이 너무 부담스럽게 올라버려서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더군요. 결국 극장관람은 취소하고 VOD로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아이쿠야....
(김도훈 평론가의 외계인 시사회 직후 인스타 게시물)
총체적 난국이라는 뻔한 표현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장르나 작품 컨셉에서 감독의 전작 중 그나마 가장 호불호가 갈린 편이었던 전우치를 연상시키는 면이 많아서 불안함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당시 지적받았던 부분들을 교훈 삼아 만회할 자신감이 있었기에 엄청난 대자본을 들여 2부작 동시 제작을 강행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 오히려 그 전우치보다 각본, 연출이 퇴보한 것 같습니다. 전우치도 전개나 몇몇 대사가 다소 유치하거나 오그라드는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작품 전체의 톤하고는 꽤 어울리기도 했고 단점들 못지않은 장점들이 있어서 그렇게 나쁘게 보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외계인은 단점들만 압도적으로 많고 장점은 너무 적을 뿐더러 그나마도 점수를 높게 주기 어렵습니다.
가장 셀링 포인트로 내세울 부분이 화려한 출연진과 돈을 들인 비주얼, 액션 등일텐데요. 너무 당혹스러운 수준의 각본, 연출 때문에 배우들 매력은 전혀 살리지 못하고 비주얼과 액션은 우리가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지겹게 본 SF, 초인물의 열화판을 본다는 기시감만 강합니다. 전우치는 그래도 나름 한국적인 개성이 살아있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김우빈은 로봇인 캐릭터 설정답게 뻣뻣하고 류준열은 개인기로 애를 쓰긴 합니다만 역시나 작품을 살리긴 역부족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대형작품 주연급에 어울리는 배우가 맞는가 하는 평소 생각이 이번에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젊은 배우답지 않게 탁월한 작품 선구안으로 필모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는 김태리마저 이번에 스토리상으로 가장 주인공에 가깝지만 엉성한 비중과 역시나 뻔해빠진 여전사 설정에 묻혀 매력을 크게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배우 본인의 마스크와 씩씩해보이는 분위기에서 나오는 이런 배역들도 이제 약간 타입 캐스팅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우려가 듭니다. 소지섭, 이하늬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중도하차를 막아준 것은 염정아, 조우진이 연기하는 도사 콤비였습니다. 이 유치하고 어설픈 설정과 대사들을 그나마 맛깔나게 소화하면서 작품의 몇 안되는 재미 포인트를 살려주더군요. 감흥이 전혀 없는 액션 시퀀스들 중에서 그나마 좀 기발했던 것도 염정아 배우의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이었어요. 조우진이야 내부자들 이후로 성격파 배우로 계속 잘나가고 있는데 염정아는 지금보다도 더욱 높게 평가 받아야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어지간하면 감상평은 간단하게 적는 편인데 조금 길어졌네요. 이번 1부 흥행참패도 참패지만 문제는 2부도 이미 찍어놨다는 것이겠죠. 제작비는 더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어차피 한 번에 각본을 쓰고 찍었으니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이대로라면 개봉해도 극장은 커녕 만만찮게 비싼 돈 주고 VOD 결제도 망설여집니다. 차라리 넷플 같은데 올라오면 한 번 고민은 해보겠네요.
한가지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외계인의 그냥 실패도 아닌 처참한 흥행폭망 때문에 안그래도 SF, 판타지 장르 볼모지인 한국 영화계에서 앞으로도 과감한 시도나 투자를 기대하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팬데믹 때문에 넷플릭스로 판매해서 공개된 승리호가 그나마 반응이 좀 긍정적인 쪽에 가까웠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배급되는 극장용 작품이 히트를 쳐야 계속해서 뭐라도 시도를 해볼텐데 더 움츠러들기만 할 것 같다는 거죠.
2022.08.27 18:36
2022.08.27 23:32
김보라 감독 차기작은 저도 기다리는 중인데 아직 각본 집필중이거나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2022.08.27 19:01
아... 그 정도인가요. ㅋㅋㅋ 그렇담 이제 마지막 희망은 넷플릭스에서 괜찮은 가격에 사 가 주는 것 아닌가 싶지만 넷플릭스 '개봉'이 아니니 많이 받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한국에서 나오는 SF들 보면 뭔가 이상할 정도로 키치함, 코믹함에 매달리는 것 같아요. 걍 정색하고 진지한 거 한 번 만들어 내놓는 사람 있으면 좋겠는데... 라고 적다가 '고요의 바다'가 떠올라서 여기까지만. ㅋㅋㅋ
2022.08.27 23:34
기사가 몇개 떴던데 2차시장 배급계약도 좀 복잡하게 했더라고요.
듀나님 트윗 감상평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는데 말도 안되는 SF 설정을 개그대사로 대충 민망함을 넘기려는 시도를 하는데 웃기지도 않고 전혀 안먹히더라고요.
2022.08.27 20:31
승리호도 일반 개봉했으면 처참했을 텐데, 제작비가 그렇게나마 보존되어서 다행인 케이스일 겁니다. 그때부터 넷플 한국영화는 극장 개봉하면 망한다는 공식이 맞아떨어지는 분위기죠. (어제 공개된 **대작전...)
한국SF 영화는 제작진들이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름만 대면 아는 어떤 감독도 어슐러 르 귄이라는 작가이름을 처음 들어본다고 얘기하는 걸 실제로 들은 적이 있죠ㅎ
2022.08.27 20:38
2022.08.27 21:15
음...르귄을 안 읽었다도 아니고 처음 들어봤다고 할 정도면 그냥 책 자체, 문학 자체와 먼 감독이네요.
2022.08.27 23:34
저는 승리호는 평상시에 개봉했다면 충분히 흥행승산 있었을 거라고 봐요. 제가 재밌게 보기도 했고 물론 어설픈 부분도 많고 단점은 있지만 충분히 먹힐만한 대중성은 확보했다고 봤거든요.
우리나라 천만관객 동원한 작품들 리스트를 보면 꼭 탄탄한 웰메이드라서 대박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차라리 단점이 명확해도 이걸 상쇄하거나 유치한 신파라도 뭔가 확실하게 대중성을 잡아낼 코드가 있다면 터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는데 외계인은 나름 품격있는 SF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물론 그냥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즐기려는 관객들이 보기에도 딱히 볼거리가 뛰어나지도 않고 과거/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구성때문에 더 불호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2022.08.27 23:35
2022.08.27 23:47
크게 동의합니다. 염정아는 뺑반, 시동 같은 작품들을 봐도 어느정도 사이즈가 되는 곳에서는 낭비되는 경우가 잦아요. 정말 게으르죠. 류승완 감독 차기작 주연이던데 여기에 그나마 기대를...
2022.08.27 23:53
2022.08.28 01:31
야심 자체는 최동훈 감독이 충분히 그 이상을 노리려고 했는데..... 뭐 이상만 높고 현실은 시궁x
2022.08.28 01:07
2022.08.28 01:29
듀게 정도 사이즈라면 저 혼자서 역바이럴 가능하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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