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3 22:56
어디가 아퍼서 자살을 택한 것도 아니고 삶이 너무 지루해져 마감하였다는데
그의 나이 91세에 이르도록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부러웠습니다. 실제 그는 죽기 직전까지 계속 각본을 쓰고 작업을 했었어요.
그리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죽을 날과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 한 것이 참 부러워요.
예전에 나는 듀게에 자살에 관하여 합법화, 제도화 하는 미래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린 적 있었어요.
그 당시 조롱하고 비난하는 악플들이 많았죠. 노인혐오라고 몰아가는 x도 있었구요. 요즘은 그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이후 ‘존엄한 죽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한국사회에서 많이 흘러 다녔었으니까요.
프랑스에서는 고다르의 자살을 계기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 자살할 권리에 대한 대통령이 사회적 논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자살할 권리란 말은 성립하지 않아요. 누구나 자살할 자유가 있고 그 어떠한 권력과 규제도 개인의 자살 선택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살할 권리나 자유가 아니라 자살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성립되어야 하는 문제가 본질입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누군가 구속해서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살로 인하여 누군가 곤란해지는 상황 때문에 자살을 망설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자살이 사회적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그로 인하여 사회적 약자 (극빈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자살을 빙자한 사회적 타살을 조장하는 세태가 만들어진다는 우려는 타당합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지책은 모자람 없이 충분히 구축되어야죠.
나는 고다르처럼 91살까지 지루하지 않은 흥미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진 않아요.
그는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은 백명 중에 하나가 있기도 어려울 거에요.
나는 이미 삶에 딱히 큰 미련은 없습니다. 허무주의나 그런건 아니구요. 무언가 내 인생의 리미트를 흐릿하게 보고 느꼈을 뿐이에요.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절대 열심히 ‘일하고’ 살지 말아라. “‘일’ 따위에 네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라” 라구요.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구요.
일을 완전히 놓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일년 가까이 지내보니 절절히 느낍니다. 정말 시간이 부족해요. 하루 하루가 너무 짧아요.
(참고로 나는 architect 라는 나의 진로를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결심했고 이루었고 최근까지도 그 캐리어를 주욱 이어오고 있었고 그 선택을 후회한적도 없었어요.)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아무도 내가 죽고 남겨진 슬픔이 내가 그를 먼저 보내는 슬픔보다 큰 그런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그런 어느날
고다르처럼 내 자신의 선택으로 어떤 참 좋은 날을 골라 남은 사람들에게 맑은 정신으로 인사를 전하고 떠나고 싶어요.
한국사회의 진부함과 보수성이 내가 선택하는 그 어떤 날이 내가 죽고 싶은 날까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큽니다만
뭐 안되면 되는 나라로 떠나죠.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면 효율성에 죽고 못사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도 ‘조력자살’을 제도화 하겠죠.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희망의 근거가 되내요.
2022.09.24 08:41
2022.09.24 10:09
극공감합니다. 아직은 이르지만 언젠가 저도 진지하게 스위스 행 알아보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영생같은 거 바란 적 없고, 워낙 어릴 때부터 삶은 한편 고통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때문에 죽고 싶을 때 죽으려고 아이 생각도 전혀 없었을 정도니까요. 그나저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하루가 짧다는 걸 느끼셨다니 행운아시로군요. 본인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것만도 어쩌면 일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라. 얼마전 알게 된 분이 인생이 허전하다고 하더라구요. 아이들도 다 키워놓았고, 본인이 죽어도 가족들 노후는 문제없게끔 해놓고 나니 일만 하고 너무 열심히 산 것 같아 허무하다고요.
2022.09.24 11:13
합법화, 제도화를 하기위해서는 그 법의 긍정적인 효과, 부정적인 효과등을 따져보게되죠.
사실, 저도 아직까지는 언제든 죽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합법화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이죠..
본문의 글은 합법화의 바램과 함께 우려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실상 자살의 권리와 자유를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네요.
본문의 존엄한 죽음이란 것이, 육체적인 고통에 관한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함께 묶여 있는 것인지,,,잘 모르겠어요.
1. 혹, 어떤 존엄한 죽음, 또는 자신이 자신의 죽음의 시점을 선택할 권리도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살할 권리(?) 를 지금도 법으로 막을 수 없고, 방법도 다양 할 텐데, 존엄사라는 이름을 붙인 죽음은 돈 있는 사람이 가진 권리가 될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야 될것 같아요.
자실도 국민건강보험으로 된다면 모를까요..
2. 본문에도 언급된 자살을 빙자한 사회적 타살의 우려도 큽니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을 확률이 큰 집단,,,
독거 노인들이 그러할 가능성이 크고, 1인 가구, 사회적 왕따류의 사람들,,,,
"저 사람도 죽는데 너는 왜?....사니?",,,
이런 시선들과 압박이 예상됩니다.
3. 합법화된 자살을 이용한 범죄,,,(요즘도 법적 효력이 없는 신체포기각서를 들이미는 집단이 있죠...영화에서만 있는 것일지도,)
가스라이팅..등등...
저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적을 가능성이 큰데요,,,,
그래서 그런지,,, 핵전쟁, 혜성 충돌..이런 것에도 담담할 것 같아요...
사람에게 있어서,,,,인생의 끝은 슬픔, 한,,,이런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마도,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면 자녀의 미래를 생각해서 지구의 미래도 탄탄하기를 바라겠지요...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자살을 생각하면 무척 슬플 것 같아요...죄책감도 들 것 같구요....
P.S 예전에 쓰셨다는 글은 못찾겠더군요.
링크 정보좀....^^
2022.09.24 11:41
2022.09.24 11:56
그럴지도요...
근데, 이런 생각도 하게됩니다.
합법화된 자살을 하려할 때는, 공무원과 의료기관에서 도움을 줄텐데,
한강이나 옥상에서 뛰려할 때, 막 말리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사라질까요?
혹은 목을 메거나 약물로 자살했다는 연예인 기사에는 '우울감등,,,,정신 상담,,,전화,,,,,' 이런 문구는 사라질까요?
(이런 생각이나 의문이 의미는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
2022.09.24 20:36
저도 오랫동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저도 그렇게 엔딩을 찍고 싶습니다만...
며칠전 캐나다에서는 극도의 빈곤에 대한 해결책으로 안락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생각이 좀 복잡해졌어요.
이걸 복지의 확장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복지의 포기로 보아야하는 것인지... 단지 옵션 중 하나로 아직까지는 설왕설래 중인 사항이겠지만 말이지요.
2022.09.24 21:42
내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그게 트라우마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2022.09.28 00:17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게 크지 않을까요. 살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긴 했었나 싶습니다.
컴튼 같은 곳에서 마약 팔다가 총격전으로 자살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