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잡담.

2022.06.12 17:11

thoma 조회 수:371

지난 번에 이어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 <얼간이>의 후속 작 <하루살이> 잡담입니다. 

이번 소설은 아쉬운 면이 있어서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미안한 글입니다. 좋았던 점은 <얼간이>와 비슷해서 아쉬운 점만 생각해 봤습니다.


<하루살이> 역시 <얼간이>처럼 에도 시대의 소소한 생활상이 주된 내용입니다. 중심 사건이 있지만 중심 사건의 추적이 스릴 있다거나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이 드라마틱한 것은 아닙니다. 중심 사건이 소설의 중심은 아니예요. 

<얼간이>에서 소개된 캐릭터들이 새로이 등장한 주변 인물들과 작은 사건들로 엮이며 도움을 주고받고 오해의 매듭들을 풀기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소설의 몸통입니다.

시대물 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 전편에서 인물과 상황을 소개했으니 그에 대한 익숙함에 기대어 조금은 느긋하고 편안하게 여유를 부리며 진행되고 있거든요. 추리, 수사물로서는 중심이 되는 사건의 진상이 약해서 싱거운 감이 있었습니다. 중심 인물인 유미노스케 얘기를 조금 하면 여기에선 이전 작품에서보다 덜 성숙한 아이로 표현되더군요. 측량하는 습관을 그만둔 건 아까워요. 기량을 계속 살려서 사건 해결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좋으련만. 이불에 실례는 더 자주하고 예쁨을 이용하는 장면도 잦다 싶더군요.(헤이시로가 조카의 예쁨에 너무 자주 놀라요) 덩치와 노소를 막론하고 주요 인물들 거의가 한 번 이상은 눈물바람이라 너무 감동의 소년 만화같이 흘러가는 느낌도 있었네요. 이게 아마도 작가의 고향 지역에 대한 향수와 삭막한 현대인에게 옛시대의 온정을 되새겨 보게 하겠다는 시리즈 의도의 결합인 것 같은데 저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얼간이>에서는 재미로 다가왔던 생활상의 묘사들이 <하루살이>에서는 더 나아가지 못 했어요.(소설가들이 얼마나 힘들까요) 저같은 외국인 독자가 낯선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생소함에서 오는 즐거움이 시리즈의 다음 권부터는 반감된다는 게 크지요. 독자로 하여금 이 세계가 계속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소설은 영원히 진행되기를 바라게 되잖아요?

시리즈물이 계속 재미를 유지하려면 캐릭터들에게는 익숙한 기본 성격에 더해서 너무 멀리가선 안 되겠으나 살짝 발견되는 새로운 매력이 있어야 하고, 팬들이 읽고 즐거워하는 주변 일상과 의식주 살림살이의 흥미로움도 유지해 줘야 합니다. 이런 점이 <얼간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지 않나 싶어요. 헤이시로나 유미노스케, 짱구, 규베 등의 중심 인물에 대한 친근감은 강화되었으나 필요한 만큼의 매력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친근감에 더해서 존경심같은 낯섦의 양면 조절이 잘 되어야 매력을 느낄 텐데요. 식당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이 나오니 음식이 자주 나오긴 하는데 이건 <얼간이>에서 다룬 정도였고 <하루살이>에서는 뭔가 새로운 직업군이 관련되어 정보를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면 좋았을 것인데 싶더군요. 새로운 직업군이 나오긴 합니다. 그런데 그 직업을 알아가는 재미를 준다든가, 전문성의 비밀 같은 것이 드러났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어요. 

후속 작인 <진상>은 어떨지. 캐릭터와 일상으로 반복적인 재미 이상을 주기 어렵다면 새로 등장하는 중심 사건이 작품 하나를 끌고 갈 수 있는 치명적인 힘을 갖는 방향으로 이겨낼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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