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7 23:08
- 1988년 영화입니다. 미국에선 1989년에 개봉했다 그러고 한국엔 비디오 출시만 한 것 같은데 시기는 모르겠네요. 암튼 런닝타임 103분에 장르는 블랙 코미디. 스포일러는 피해 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국인들도 포스터 사기를 쳐요. 이게 어떻게... ㅋㅋㅋㅋㅋㅋ)
- 오하이오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하이틴물입니다. 이 학교엔 여왕벌 3인조가 있는데 어쩌다 보니 얘들 이름이 다 '헤더'에요. 그래서 '헤더스'인 것이구요. 주인공은 어떻게든 이 클럽에 들고 싶어서 몸부림 중인 베로니카라는 녀석입니다. 딱히 모자랄 게 없는 아이 같은데 그저 학교의 핵인싸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여러가지 무리를 합니다.
그러다 그 짓거리에 회의가 들어 이 짓 때려 치울까... 하던 중에 바람처럼 나타난 불량한 전입생 제이슨 딘(...)과 가까워지고. 이 놈의 장난에 장단 좀 맞춰 버리려다 얼떨결에 우두머리 헤더를 죽여버리게 돼요. 간신히 운 좋게 해결(?)하고 넘어가는가 했지만 베로니카에겐 아직도 골칫거리가 좀 남았고. 우리의 제이슨 딘 군도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여왕벌 클럽! 그 시절 패션 센스 같은 걸 구경하는 재미도 좋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북미권의 트렌드가 문화 상품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만. 인터넷이 없던 예전과 지금은 그 전파 속도 면에서 차이가 있죠. 보시다시피 저 비디오 케이스에 '엑스 세대 레퀴엠' 같은 문구가 적혀 있고 아마 한국에서 저 개념이 유행을 시작한 게 1994~1995년이라고 기억합니다만. 요 영화는 그보다 4~5년 전에 나왔단 말이에요. 하지만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보니 저 문구는 정확합니다. 그 시절 한국의 '엑스세대'로 불리던 사람들의 정서나 취향과 정확하게 잘 맞아요. ㅋㅋ
(엑스 세대 레퀴엠!!!)
- 엊그제 '패컬티'를 보고 나니 그냥 이 영화가 바로 떠오르더라구요. 제가 90년대에 본 미국 하이틴물이 별로 없다 보니. ㅋㅋ 근데 영화를 틀고 보니 둘 다 오하이오네요. 그냥 우연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이제사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이후 하이틴 영화들에 남긴 유산이 은근 많아요. 특히 영화 속 여왕벌 클럽의 상태나 스타일, 이들을 다루는 태도 같은 걸 보면 '아 이게 원조였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구요. 미국 고딩들의 삶을 신분제 사회처럼 묘사하는 시각도 그렇죠. 특히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늘 거론되는 '클루리스'나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 미친 영향은 아주 노골적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살인 행각이 펼쳐지는 어두컴컴 코미디라는 거.)
다만 이 영화는 상당히 막 나갑니다. 시작부터 살인이고 주인공은 자의 반 타의 반의 공범이면서 범행 은폐에 여념이 없구요. 독살에 총살에 막판까지 가면 폭탄 테러까지 등장하는데 영화의 주제는 하이틴의 학교 생활이고 장르는 코미디란 말입니다. 요즘 기준으로도 튀고 과격한 이야기인데 1989년 당시엔 어땠겠어요.
(훈훈하게 눈맞는 청춘들 같지만 손에 들린 물건이...)
- 솔직히 매끈 탄탄하게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긴 좀 애매합니다. 코미디라는 핑계로 개연성은 대충 접어 나빌레라이고 주요 인물들의 심경이나 관계 변화 같은 것도 이리저리 막 튀어요. 게다가 결정적인 게, 주인공들은 도대체 본인들 삶에 뭔 그리 큰 문제가 있어서 이 난리인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아요. 영화 속 대사 마냥 그저 'Life Sucks'인 겁니다. 뭘 더 설명해라 마라야!! 나 원래 이런 놈이야! 어쩌라고!!!
(운동부 에이스들이 쓰레기라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고!!!!)
- 그런데 사실 바로 이런 부분이 당시 청년들의 갬성을 정확하게 건드렸던 거죠. 마치 당시 유행하던 염세&반항적인 롹밴드의 콘서트 느낌입니다. "여러분!!! 다들 인생 x같으시죠!!!? 그냥 막 달려봅시다!!!" 라는 느낌. ㅋㅋㅋ 학교는 x같고 거기 다니는 우리네(?) 인생도 다 x같고 그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데 뭐 더 설명이 필요하냐는 식.
이 영화는 그렇게 구조나 디테일보단 스피릿(!)이 더 확 들어오는 영화이고 그걸 또 기가 막히게 살려주는 게 바로 크리스찬 슬레이터입니다. 이걸 오랜만에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이 양반이 그 시절에 이렇게나 간지나는 분이었구나. 정말 그 시절 반항아 정서 그 자체였던 배우였구나... 하구요. 자칫 하찮고 뻔해질 수 있는 비현실적 캐릭터를 엑스 세대 간지(...)로 완벽하게 승화시켜줘요. 오오 클라쓰...
(증빙자료.gif)
- 이게 결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혼돈의 카오스거든요. 결국 위노나 라이더의 주인공 캐릭터는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길을 거부하고 한 판 승부를 벌이죠. 그러고서 선택하는 길이 그렇게 건전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Grow Up!' 그래서 그런 훈훈한 이야기였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정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시절 간지를 작렬시키며 폼나게 퇴장을 합니다. 이거 뭐야. 대체 어쩌라는 이야긴데. ㅋㅋㅋㅋ 반항을 하라는 거야 10대라고 위세 부리며 뻘짓 정당화 그만하고 나이 좀 먹으라는 거야. ㅋㅋㅋ
근데 이렇게 앞뒤가 좀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그냥 둘 다 간지거든요(...)
(ㅇㄱㄹㅇ ㅂㅂㅂㄱ)
- 암튼 재밌는 영홥니다. 계속 좀 덜 다듬어진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그만큼 (당시 기준) 재기발랄한 부분들이 많아서 계속 즐겁게 보게 되구요. 주인공들이 벌이는 막장 행각 같은 건 사실 요즘 기준으로도 꽤 자극적이에요. 사건 전개도 그 시절 영화치곤 쾌속 진격!
게다가 찬란한 청춘을 뽐내는 위노나 라이더와 크리스찬 슬레이터라는 두 배우가 내내 눈호강 겸 안정적, 매력적인 연기로 캐리해주고요. 마지막으로 이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그 시절 그 정서'가 영화 내내 뿜뿜합니다.
요즘 젊은 분들이 아무 생각 없이 틀어봐도 최소한 지루하거나 재미 없다는 반응은 잘 안 보일 영화에요. 물론 그 시절을 직접 비슷한 나이로 살아 본 사람들이 느낄 재미에 비할 바는 아니겠습니다만. 특히나 전 로드쇼에 실린 위노나 라이더 팬레터 주소까지 메모해두고 고민하던 인간이었... ㅋㅋㅋ
끝이구요.
+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살짝 '파이트 클럽' 생각이 나네요. 크리스천 클레이터가 마치 그 영화의 브래드 피트 같은 역할을 해요. 가만 생각해보면 혼자 비현실적으로 둥둥 떠다니며 위노나에게만 집착하는 모습도 있구요. ㅋㅋ 하지만 뭐 그냥 위노나의 자아 배틀 같은 걸 '상징'하는 걸로 끝입니다. 그런 반전 같은 건 없어요.
++ 이게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꽤 장수하고 있나 보네요. 생각해보면 뮤지컬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영화로 볼 땐 좀 덜컹거리는 느낌 드는 부분들이 뮤지컬로 번안하면 그쪽 장르적 특성으로 덮일 것 같기도 하구요.
+++ 왓챠에도 있고 올레 티비에도 있고 그래요. 한국에서 그렇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는 아닌데 아마 영화 선정하는 분들이 엑스세... (쿨럭;)
++++ 이걸 보고 나니 '볼륨을 높여라'도 보고파지는데 이건 지금 볼 수 없는 곳이 없네요, 아깝...
+++++ 사실 위노나는 이 시절에 그냥 예쁜 게 아니라 뭔가 아싸 같고 친구 없어 보이게 예쁜 게 매력이었죠.
그것도 참 특이한 재주(?)였던 것 같습니다. ㅋㅋ
근데 이 양반 나온 영화 '루카스'는 정녕 한글로 구해다 볼 길이 아예 없는 걸까요.
주말의 영화로 10대에 한 번 보고 끝이네요.
요즘 말로 '치였다'라고 할 만한 일생의 거의 유일한 경험이었습니다. ㅋㅋㅋ
2022.07.18 00:07
2022.07.18 02:34
무비스타님은 저보단 훨씬 진지한 글을 적는 분이었죠. 전 그냥 '이거 봤어요~' 하고 수다 떠는 수준. ㅋㅋ
엔딩 장면 아주 좋았죠. 그 시절이니 나올 수 있었던 정서에 배우와 연기도 완벽!!
크리스찬 슬레이터는 나이 먹으면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스타였던 것 같아요. 특유의 반항아 캐릭터가 약해지면 차별점이 없어지는지라. '브로큰 애로우'처럼 흥행 잘 된 영화를 봐도 배우 존재감은 거의...
2022.07.18 00:20
2022.07.18 02:37
이 시절이 리즈였죠. ㅋㅋ 대략 90년대 중반까지 짧게 빛났던. 최근에 나름 재기 성공하고 안 늙음으로 찬사(?)도 받고 있지만 이 시절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구요.
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있으니 이렇게 집요하게 장르 필수 요소로 버티는 것 아닐까요? ㅋㅋ 물론 영화 속 모습처럼 대놓고 못되게 구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요.
2022.07.18 00:58
그시절 영화들 중에서도 나름 자기만의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하.이.틴 장르라서 도전했다가 이상한 블랙 코미디가 섞인 톤에 적응을 못하고 중간에 이탈했었네요;;; 아직 다양한 톤의 영화들을 즐기는 내공이 많이 부족할 때라 이게 뭐야?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배티님이 어제 패컬티도 그렇고 연달아 같은 리스트에 있던 작품들 글을 올려주셨어요 ㅎㅎ
크리스챤 슬레이터는 약간 더 샤프하게 생긴 제 2의 잭 니콜슨 이런 기대를 받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잊혀진 배우가 됐더라구요. 트루 로맨스 나올 때만 해도 상당한 위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디서 삐끗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위노나 라이더는 막 전성기 시작되려던 타이밍 같군요. 이분은 나름대로 아주 정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슬레이터에 비하면 젊은시절 확실한 본인의 흔적을 업계에 남긴 것 같습니다. 하필 작품 선구안 휘청거리던 시절 "그 사건"까지 겹쳐서 터지는 바람에 참... 그래도 최근 기묘한 이야기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영화에서도 조연이라도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네요.
2022.07.18 02:48
'패컬티'랑 이 영화 중에 하날 본다면 이걸 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말씀대로 위상도 있고 또 지금 다시 보니 그럴만한 매력이 있는 영화였어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좀 애매한 구석도 있지만 역사적 의미랄까 사료적 가치랄까 그런 부분이. ㅋㅋ
나이 먹고 반항아 캐릭터 빨도 소진되고 시대적 분위기도 바뀌고... 아마 사생활 문제도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근래에 '더티 존' 시즌2의 인기와 '미스터 로봇'의 대박으로 부활하셨죠. '미스터 로봇'에서 참 괜찮았어요. 나이 먹었지만 배우 예전 이미지를 잘 활용해서 고쳐썼(?)더라구요.
위노나는 90년대 초반에 당시 거장들 영화에 줄줄이 나오고도 대표작 하나를 못 뽑아낸 게 컸던 듯요. 조니 뎁과 결별 후 데미지로 사생활 망가진 것도 있었고. 그러다 쉴드 불가 범죄와 추태까지... ㅠㅜ 말씀대로 '기묘한 이야기' 덕에 좀 비중 있는 역으로 간간히 나오는 것 같은데 평들이. ㅋㅋ 그나마 평 좋은 hbo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웨이브 계정 살리면 그 때 보는 걸로,
2022.07.18 12:56
코폴라의 드라큘라, 스콜세지의 순수의 시대 등 사실 어디서 밀리지 않고 충분히 훌륭한 작품들인데 해당감독의 최고작에 거론될 수준은 아니고 위노나도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정도지 본인의 존재감을 아주 크게 드러낸 정도는 아니어서 그런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순수의 시대로는 오스카 후보도 올랐었지만 ㅎ 차라리 90년대 대표작이라면 청춘 스케치, 작은 아씨들 정도가 더 어울리네요.
그러다보니 생각났는데 청춘 스케치에서 에단 호크랑 주인공 커플로 나왔었는데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딸과 만난 것도 재밌어요.
2022.07.18 09:25
2022.07.18 09:32
아 역시 한참 후에 출시된 거였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ㅋㅋ 근데 그 시차 덕에 한국 젊은이들에게 더 와닿았을 것 같아요. 88, 89년에 들어왔음 좀.
2022.07.18 09:38
패션이 딱 저 고딩 대딩때 옷이네요. ㅋㅋㅋ
유명한데 못 본 영화 중에 하나예요.
위노나 라이더는 한참 잘 나갈 때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인생에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서 사는 게 무섭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거 아니라도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죠. 원래도 좋아했지만 이 인터뷰에 결정적으로 반한 저도 좀...
연예인도 같이 늙어가면서 부침 겪는 거 보면 친구처럼 맴이 아픕니다. 음...당사자는 신경 꺼주길 바라겠군요 ㅋㅋㅋㅋ
2022.07.18 11:00
한국 80년대에도 유행했던 패션이었죠. 전 그때 나름 어린이(!)였고 성인 되기 전에 듀스와 서태지의 시대가 와서 지인들 패션으로 보진 못했어요. ㅋㅋ
부모랑 뭐가 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고, 뭔가 되게 예민한 사람이었죠. 요즘도 느낌은 좀 그래 보여서 잘 살고 있는 건가 괜히 걱정해 보는 옛날 팬심입니다. ㅋㅋㅋ
2022.07.18 11:32
위노나라이더 샤방한거야 알고있었지만
크리스찬 슬레이터도 같은 시기 아주 샤방샤방했군요. 저 숀코너리와 '장미의 이름' 나온거 보고 깜놀했는데, 샤방샤방해서.. 이 크리스찬슬레이터가 그 크리스찬이라닛!
비벌리힐스 아이들이라든가 이라든가.. 생각이 안나네요. 그것도 좋았는데. 틴 에이저 물로 좋았다는 겁니다.
헤더스들의 옷은 현재 국내 LG패션의 '닥스' 브랜드같네요
2022.07.18 11:46
여기 4인조 사진 중에 청록색(?) 자켓 입은 양반이 비버리힐즈가 낳은 인기 스타 섀넌 도허티잖아요. ㅋㅋ 인기 정말 많았죠. 한국 와서 광고도 찍고!!
2022.07.18 13:09
앗 다시 기어올라가서 사진 보고 새넌 도허티 확인했어요 ^^ 감사
2022.07.18 22:53
2022.07.19 10:24
우왁 감사합니다!! 스페인어에다 자막 생성도 막혀 있어서 스토리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뒤적뒤적 해보니 기억 살아나고 좋네요. ㅋㅋ
저도 대낮에 봤을지도 몰라요. 요즘 제 기억이란 게 신뢰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하하.
깔깔깔깔 이거 아주 골때리는 영화죠....그나저나 영화에 대해 이렇게 정기적으로 쓰는 긴 글을 보는 건 예전 무비스타님인가....생각이 납니다. 위노나 라이더는 <비틀주스> 랑 <귀여운 바람둥이 (Mermaids)>랑 이영화까지가 3년 연속 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고요. 어쨌거나 전 이 영화 엔딩장면을 좋아합니다.
크리스천 슬레이터는 여름 장마철이면 생각이 나요. 그의 필모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그 영화 <하드 레인>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