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운 혹은 관객운

2022.05.02 19:35

Sonny 조회 수: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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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지브이에서 오즈 야스지로 기획전이 열렸기에 <안녕하세요>를 보고 왔습니다. 처음으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봤을 때의 즐거움을 다시 체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 중 제가 인상깊게 봤던 영화 중 하나이면서, 코메디 영화를 보면서 뒤끝없이 계속 웃음이 터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시 봐도 그 아기자기함과 주고 받는 유머의 리듬이 참 기가 막히더군요. 시대가 흘러간 뒤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사라지지만 어떤 작품은 그 시대에만 가능한 스타일과 호흡이 고전의 향기로 남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 영화를 용산에서 보면서 좀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안웃더라구요. 거장을 향한 예의를 차리느라 그랬던 것인지. 누가 봐도 웃기지 않냐고 감독이 앙증맞게 풀어낸 에피소드들에서 웃음소리가 너무 작았어요. 그래서 제가 괜히 열심히 웃게 되더군요.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저 혼자 '감독님, 이 영화 재미있네요!' 하고 응원하는 느낌으로 웃었습니다. 이마를 누르면 방귀를 뀌는 그 고전적인 패턴의 개그는 어이가 없고 어른들의 무의미한 대화를 흉내내는 미노루의 일침은 통렬합니다. 이런 장면들에는 크게 웃진 않아도 흐뭇한 표정 정도는 지어줘야 또 예의가 아닐지. 이미 당대의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웃고 봤을테니 저의 오지랍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저는 이 영화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 야스지로 기획전을 했을 때 봤습니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일단 예매를 하고서 봤는데, 극장의 사람들이랑 함께 폭소를 터트렸던 게 기억이 납니다. 특히나 젠의 아버지가 방구를 뀌자 아무렇지 않게 그 아내분이 와서는 '나 불렀어요?'라고 부르는 장면에서는 다들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방구가 일종의 대화가 되버릴 정도로 자연스러워진 집의 풍경이란! 특히나 주인공 가족의 막내아들 이사무가 '알라뷰!'라고 할 때마다 다들 소리를 치면서 귀여움을 참곤 했습니다. 오즈를 사랑하고 기꺼이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를 봤던 게 저한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이 영화의 광팬인 윤가은 감독이 이화정 기자와 함께 지브이를 했는데 그 대화의 시간 또한 즐겁고 따스했죠.


같은 가수가 같은 노래를 불러도 어떤 무대에서는 떼창을 하는가 하면 어떤 무대에서는 다들 조용하게 고개만 까닥거리겠죠. 영화와 웃음에 열광적인 사람들과 어울려서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참 큰 복입니다. 잘 안웃는 사람들과 이 영화를 보니 영화 자체가 영 싱겁고 밍밍하게 느껴지더군요. 처음에 그렇게나 웃기게 봤던 기억마저 희석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잠깐 유튜브로 이 영화를 다시 보는데 실실 웃음이 새어나오네요. 이사무가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운지. 


슬픈 영화는 혼자서 보고 싶고 또 극장에서 봐도 결국 혼자만의 슬픔으로 침잠하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러나 웃긴 영화는 다같이 웃고 함께 터트리는 웃음을 더욱 키우고픈 그런 욕심마저 생겨요. 그런 면에서 코메디 영화를 열린 관객들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꽤나 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죠. 저는 삼박자 고루 맞춰서 코메디 영화를 다수의 사람들과 즐겁게 봤던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영화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작품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그 낯선 타인들과의 커다란 행운마저도 이 영화가 안겨다준 행복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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