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 엔딩

2023.12.13 11:30

칼리토 조회 수:228

몇년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스쿼시를 다시 치고 있습니다. 초보는 아닌데.. 다시 치기 시작하니 또 한번 초보가 된 느낌? 어색하지만 근육이 소리를 지르는 게 느껴지면서 뭔가 기분이 좋을락 말락하기도 하고 이 운동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낡았구나 싶기도 합니다. 늙거나 낡거나.. 


스쿼시를 끊었는데 사우나가 따라 왔습니다. 제법 부유한 동네의 헬스클럽이라 운동 끝내고 온탕에 들어가면 아마도 자주 이 곳을 이용하는 느낌의 사람들이 저절로 보이는데 태반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즉 장년을 벗어나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거나 완연한 노년이 되신 분들이죠. 


근육의 흔적이 보이는 몸들도 있습니다만 극단적으로 뼈와 가죽으로만 된 조합이라던가.. 볼록한 배와 허기진 팔다리도 있고 대부분은 엉덩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쳐졌습니다. 머리 숱은 빠지고 얼굴은 기미와 검버섯 그리고 주름이라기에는 미묘한 흔적들이 남아있네요. 


타인을 그렇게 자세하고 꼼꼼하게 볼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어떤 처연함? 허무함 같은 게 느껴져서 그렇게 멍하니 관찰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지금도 어느 회사의 대표일지도 모르고 건물주님이라 월세를 따박따박 받는 화려한 인생일수도 있겠지만 온탕안에 함께 들어 앉은 모습들은 이미 생의 많은 부분을 소모하고 어쩌면 죽음에 더 가까운 모습들이라 전혀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린 것, 젊음이라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피부가 탄력이 있고 얼굴이 화사한 것.. 그런 것들은 모두 겉으로만 보이는 아름다움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온탕 속에 묵묵히 앉은 군상들을 보면 내가 그러한 상황일 때 최고 속도로 모든 것을 즐겨야 하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젊음은 쉬이 사라지고 온탕 엔딩은 부지불식간에 찾아 옵니다. 


어제는 나이 든 아저씨 둘이서 서로의 엉덩이를 칭찬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아직 탱탱하다던가 뭐라던가.. 그러게요. 사우나에서도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이어지고 그것의 대부분은 서로의 기분을 잠시나마 좋게 해주는 거겠지요. 슬프고도 희극적인 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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