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9 21:34
- 2019년작이고 런닝타임은 88분. 장르는 호러... 인 척하는 코미디입니다. 스포일러는 없을 거에요.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드론. 저기 앉아서 실제로 흔들기도 합니다. ㅋㅋㅋㅋㅋ)
- 드론을 이용해서 맘에 드는 여성을 미행한 후 납치, 살해하는 범죄자가 화제입니다... 만 시작하자마자 경찰에게 쫓기다가 죽어요. 다만 죽기 직전에 알 수 없는 이진법 숫자들을 중얼거리다가 벼락(!!!)에 맞고, 당연히 죽어가는 그의 곁에는 본인이 애용하던 드론이 놓여져 있겠죠. 그리고 그를 쫓던 경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 우리 아들이 이런 거 사달라고 난리였는데'라며 그 드론을 집어 들고 집에 가다가 자기 혼자 부웅부웅 날아오른 드론 때문에 사망.
장면이 바뀌면 젊은 신혼 부부가 으리으리한 새 집에 이사해 들어오는데, 전자 기기 덕후인 남편놈이 집 앞 쓰레기통 위에 곱게 앉아 있는 그 드론을 보고 득템했다며 주워들고 오겠죠. 그리고 그 드론은 남몰래 붕붕 날아다니며 음침한 짓들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붕붕. 붕붕.
(끼요오옷!!! 마법의 벼락이 작렬합니다!!!!!)
- 원제는 심플하게 그냥 'The Done'이에요. 이번에도 번역제가 좀 오버를 한 셈인데, 놀랍게도 이번엔 번역제가 오히려 원제에 판정승을 거둔 경우라고 해야겠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노골적인 '사탄의 인형' 베끼기 영화라서요. 어린이들의 벗 최신 장난감 인형이었던 게 이제 시대의 핫 아이템 드론으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변화한 시대상과 인형 -> 드론으로의 소재 변화로 인한 새로운 범행 수법(?)들을 만들어 넣었을 뿐 이야기의 골자는 거의 비슷하고 특히 도입부는 그냥 대놓고 갖다 썼죠. 그랬는데, 그렇긴 한데...
('사탄의 인형'과 달리 이 영화의 빌런은 젊은 여성에 집착하는 변태 범죄 드론이다 보니 주인공 팀에 어린이는 없습니다.)
- 0.1초만 생각해봐도 딱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뭐 그런 바보 같은 발상이 다 있어!!!" ㅋㅋㅋㅋ
하지만 이건 2019년 영화구요.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당연히 그런 걸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에 누가 '귀신 들린 살인 드론' 같은 걸 무서워할 것이며, 또 당최 이야기를 어떻게 짜야 남몰래 숨어다니며 사람 죽이는 드론 이야기를 말이 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의 답은 심플하게 '안됨' 이잖아요. 그래서 영화는 진지한 척하는 코미디로 갑니다. 살인 드론도 진지하고 도망다니는 주인공들도 진지하지만 보는 사람은 웃기는 영화로 만들어놨어요. 못 만들어 웃긴 호러가 아니라 그냥 근본부터 코미디를 의도한 영화인 겁니다.
(이 고색창연한 드론 시점 구현만 봐도 뭐... 게다가 악령의 드론에게 굳이 이런 인터페이스가 필요할 이유는 뭔가요. ㅋㅋㅋ)
- 그래서 일단 도입부부터 중반까지는 80년대 허접하고 과장된 B급 호러 무비들의 톤을 흉내내는 쪽으로 갑니다. 뻣뻣하고 멍청한 대사들, 살짝 과장된 연기, 유치찬란한 특수효과에다가 음악까지 80년대 유행했던 그 시절 전자음으로 깔고요. 도입부에서 중요한 범죄 증거물을 서슴지 않고 낼름 집어가서 아들 갖다 주려다 끔살 당하는 그 경찰 아저씨처럼 등장 인물들도 대부분 나사가 조금씩 풀려 있지요. 여기까진 그냥 당연한 수순 정도입니다만.
거기서 살짝 더 나아가는 게 영화 속 드론의 묘사입니다. 일고의 가치도 없이 말도 안 돼요. 일단 그렇게 맘대로, 고속으로 붕붕 날아다니는데 무음이란 말입니다. 조용한 집안에서 뒤에서 다가와도 아무도 눈치를 못 채요. ㅋㅋㅋ 힘은 엄청나게 세서 사람 정도는 가볍게 끌고 다닐 정도이고 날개는 누가 개조를 한 것도 아닌데 칼날 수준으로 예리하며 당연히 충전 따위 필요 없죠. 거기에 덧붙여서 아주 그냥 척척박사 만능 해커입니다. 최신 드론들의 무선 전송 기능들을 핑계로 연결 가능한 모든 기기를 맘대로 조작하는데, 하필 또 주인공들 사는 집이 홈오토메이션이 아주 거하게 적용된 집이고 그런 식이죠.
그러니까 그냥 작가 편할대로 맘껏 폭주해서 나온 말도 안 되는 괴물 캐릭터인데, 이게 앞서 말한 '80년대 B급 영화풍'과 결합이 되니 또 그 시절에 유행했던 영화들 생각이 나는 거죠. 왜 그 땐 그런 영화 많았잖아요. 최신의 유행 아이템 뭐 하나가 나와서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하는 류의 모험 영화들. 그래서 이 영화의 마법의 드론도 '이것도 그 시절 B급 영화들 스타일 패러디인가?'라는 식으로 나름 설득력을 얻습니다.
(변태 드론의 공포!!!)
- ...그래서 여기까지 납득이 가능하다면 그냥 편하게 킬킬거리며 즐기면 되는 영화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대놓고 '웃어라!!!'라고 외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진지하지만 유치한 B급 호러'인 척을 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예 막나가면서 사람을 웃게 만들려면 굉장히 센 개그가 빵빵 터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진지하게 바보 같도록(?) 만들어 놓으니 그냥 적당히 실없고 상당히 멍청하기만 해도 꽤 웃깁니다. 게다가 가끔씩 막나가는 유머가 두어개쯤 튀어나오는데 그건 별로 안 웃겨요. 작가들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톤을 조율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암튼 멍청하긴 한데 상당히 신경쓰고 공들여서 멍청하게 쓴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드론이 어떻게 사람과 육탄전을 벌이냐구요? 이렇게 합니다. ㅋㅋ)
- 사실 이렇게 길게 설명하려들면 안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엔 걍 시시껄렁하게 웃기는 코미디거든요. 크게 참신할 생각도 없고 쉬지 않고 폭소를 빵빵 터뜨릴 생각도 없고 걍 애초에 원한 게 이 상태였던 것 같고 그럼 된 거죠.
그렇게 시시껄렁하게 웃기는 영화를 보고픈 분들, 특히 '사탄의 인형'을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아무 기대 없이 틀어 놓고 다른 일도 하면서 가볍게 즐기실만 할 겁니다.
당연히 뭔가 알멩이나 얻을 것(?) 같은 걸 바라고 영화를 보는 분들은 멀리 피하시길. ㅋㅋ
어쨌든 전 기대보다 훨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렇게 당분간 '사탄의' 시리즈(?)는 접어두는 걸로.
+ 앞서 적었듯이 2019년작입니다. 바로 아래 글 적었던 '사탄의 인형'과 같은 해에 나온 거죠.
근데 소재가 많이 겹칩니다. 스마트홈을 지배해서 목표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거라든가. 영상과 메시지 등을 통해서 누굴 모함한다든가. 결정적으로 '사탄의 인형'에도 드론이 처키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나오죠. 우리가 돈이 딸리지 아이디어가 딸리냐!! 라는 느낌의 인디 호러였습니다. ㅋㅋㅋ
++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성함이 '알렉스 에소'라고 하는데요.
이제껏 몰랐는데 이 분 또한 은근 인디계의 호러퀸 중 한 분이었더라구요. 출연작 중 태반이 호러. 거의 다 인디구요.
메이저 작품들에도 크지 않은 역으로 얼굴을 종종 내밀고 계신데 뭐 예를 들면 '닥터 슬립'이라든가 '블라이 저택의 유령'이라든가, '어둠 속의 미사'에도 나왔구요.
결론은 이 분도 아주 살짝 마이크 플래너건 패밀리였다는 거. ㅋㅋ 슬프게도 진골은 아니었는지 '어셔가의 몰락' 캐스트에는 안 보이네요. 아쉽...
2022.06.10 00:37
2022.06.10 08:14
세상엔 참 (크게 안 뜬) 매력적인 배우들이 수두룩하더라구요. ㅋㅋ 아니 특별히 드론에 무슨 안 좋은 경험이 있으셨나요. 워낙 사생활 침해 최적화 아이템이라 그냥도 싫으실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영화에서도 그런 식으로 많이 써먹구요.
2022.06.10 01:36
사탄에 제대로 빠지셨군요. 마이크 플래너건 사단하면 역시 사단장(?) 헨리 토마스가 제일 먼저 떠오르죠.
2022.06.10 08:15
제가 바로 듀게의 사타니스트... (쿨럭;)
헨리 토마스는 이제 엘리엇 생각도 잘 안 날 정도에요. ㅋㅋ 검색해보면 갸가 갸인줄 모르고 보다가 놀랐다는 글도 많이 보이네요.
2022.06.10 04:01
(이유없슴) 아 Christine이나 간만에 봐야겠네여
2022.06.10 08:18
ㅋㅋㅋ 그래도 크리스틴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귀여운(?) 녀석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2019년 버전 '사탄의 인형'과 좀 비슷한 류의 이야기였네요.
2022.06.10 05:45
오 이분 상당히 분위기가 독특하고 인상에 남아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과장되지않게 귀족적인 느낌이 드는 배우같아요. 그나저나 이런 류 영화를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시네요. 저는 로이배티님글 읽으면서 대리만족하는 걸로 상당히 즐거움을 얻고있습니다만 :)
2022.06.10 08:21
저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류의 영화들이 제일 재밌어요 요즘엔. ㅋㅋ 기대 안 했다가 얻어 걸리는 재미도 있구요.
이 영화 때문에 배우님에게 관심이 생겨서 검색해서 찾아보다 의외로 멀쩡하게 괜찮은 스릴러도 하나 건지고 그랬네요. 매력도 있고 실력도 좋고 괜찮은 배우 같아요!
2022.06.10 09:02
어셔가의 몰락이라니 포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건가요? 기대되네요 ㅎㅎ 플래너건 이분 진짜 넷플릭스 공무원이군요 ㅎㅎ
2022.06.10 20:31
네. 어셔가의 몰락을 베이스로 다른 단편들 요소도 섞어서 만드는 모양이에요.
플래너건이 그렇게 공무원 놀이 하는 바람에 플래너건 패밀리 멤버들도 덩덜아 함께 공무원이 되었죠. 칼라 구기노, 케이트 시겔, 헨리 토마스, 잭 길포드, 애너베스 기쉬 등등등 힐하우스, 블라이 저택, 어둠 속의 미사 멤버들이 또 총출동합니다. ㅋㅋㅋ
2022.06.10 13:20
2022.06.10 20:35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저런 제목을 쓰고 싶어집니다. ㅋㅋㅋ
말씀대로 짤막한 코믹 단편이 어울릴 내용인데, 그걸 진지하게 장편 분량으로 뽑아냈더라구요. 나름 늘어지지도 않고 내용도 알차요(?)
2022.06.10 21:08
변태 드론이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했는지 궁금하네요. 중간의 한 스크린샷은 너무 오마주 같기도 하고 ㅋㅋ.
그런데 기계 몸인데도 어째서 아직 변태인 것인지. 적어도 다른 귀신들은 영체여도 인간 형태의 몸을 가지는데요. 기계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의문이 조금 듭니다ㅋㅋ.
2022.06.10 21:41
나중에 보면 그 변태 드론에겐 또 나름의 배경 스토리가 있었고, 그 사연을 따라 적절한(?) 대접을 받으며 끝나긴 합니다. ㅋㅋ
사실 자신의 기계 몸에 영향을 받을 정도라면 이미 고작해야 드론 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칩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 테니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바로 끝이 나야... 하하하. 근데 생각해보면 그런 식의 묘사가 나오는 작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기계는 아니고 동물 몸에 들어간 사람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