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9 09:55
저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지지자는 아닙니다. 저에게 그는 좀 밍밍한
영화였던 <마지막 황제>(1987)의 감독이자, 실제로 보지는 않았지만 관련 이야기를 들을수록 볼 마음이 없어지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의 감독이었거든요. <몽상가들>(2003)은 좋게 보았지만 소품이었고요.
근데 보르헤스 원작소설을 좋아해서 본 <거미의 계략>(1970)에 감탄한 이후, 젊은 베르톨루치 영화를 볼 기회를 노렸고,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 <혁명전야>(1964)는 꽤 좋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순응자>(1970)가 개봉했지요. 어떻게 개봉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갔는데 최근 무슨 영화제 수상을 기념으로 새로 복원한 복원판이고요. 그 결과 완벽한 화질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는 제가 최근 몇 년간 본 중에 가장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모라비아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나 주연 배우 등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베르톨루치 협업자인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촬영한 화면은 완전 바로크적으로 찬란합니다. 역시 베르톨루치 협업자인 프랑코 아칼리가 실력을 발휘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도 기가 막히고요.
당시 29살이었던 베르톨루치 감독이 <순응자>와 <거미의 계략>을 같은 해에 감독했다는 걸 생각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기는 합니다. 이분의 영화를 많이 못봐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젊은 천재가 나이들어서 시들은 경우같네요.
그렇더라도 이런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기회 놓치지 마세요~ 특히 저처럼 비토리오 스토라로 촬영감독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이번 주말까지 한다면 저는 재관람도 할 예정입니다.
2023.06.19 11:23
2023.06.19 12:07
저도 베르톨루치의 다른 영화는 좋아한 적이 없는데─애석하게도 [거미의 계략]은 보지 못했어요─[순응자]만은 정말 좋아합니다. 이것도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구석이 있는 영화라 매번 다시 볼 때마다 '과연 이번에도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까?' 생각하게 되지만 결국 보고 나면 '제길, 아직도 좋아하는군!' 하고 말죠.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사상 가장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꼽을 때 상당한 표를 받을 만하지 않은지. 원래는 시공간이 분절되고 뒤섞인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찍었다는 것도 참 놀랍고 즐거운 얘기고요.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2년 전에 모라비아의 원작이 번역됐을 때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직도 미루고만 있네요.
2023.06.19 13:24
예전에 재개봉 했을 때 보다가 잤는데 이거 한번 봐야겠군요...
2023.06.19 15:07
2023.06.19 17:00
베르톨루치 감독은 긴박한 것을 우아하게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순응자 진짜 보고싶네요..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6.19 20:47
어려서(?) '거미의 계략'을 봤을 때 제 소감이 대략
'우와! 막 쩌는데 뭐가 쩌는진 모르겠어!!!'
이랬습니다. ㅋㅋㅋㅋ OTT에 있던데. 조만간 한 번 다시 볼까 봐요. 어차피 거의 완벽에 가깝게 까먹어서 신선한 느낌으로 볼 수 있을 듯.
본문에 적어 주신 '순응자'도 궁금하네요.
개봉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추천 글 올리신 걸 보니 꼭 극장 가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시간을 잘 맞춰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