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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끌리지는 않았는데 thoma님 감상평을 슬쩍 보고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컨디션이 안좋아서 영화를 보다 깜빡 졸았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본 거니 감상평을 남겨보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파우릭의 입장에 이입했습니다. 이 영화는 파우릭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파우릭은 계속해서 콜름이 자신을 왜 멀리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고 납득하려고 애쓰지만 실패합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알 정도로 절친했던 사람이 갑작스레 절교를 선언하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영화로만 봤을 때는 콜름보다 파우릭에게 훨씬 더 이입이 됩니다. 그건 콜름이 절교를 선언한 이유가 불합리해서가 아니라, 절교를 선언한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제가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속 모든 유혈사태는 콜름이 자초한 것처럼 보입니다. 파우릭이 좀 시시하고 재미없는 인간일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파우릭이 범속하다해서 콜름이 그를 그렇게 쳐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콜름은 정말 괴상한 인간입니다. 그렇게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절교를 선언하는 것은 그가 시간에 따라 축적되는 관계의 작동원리를 무시하기 떄문일 것입니다. 콜름은 독선적이고 난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는 계속 콜름의 입장에 이입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오고 있는 인간관계를, 하물며 절친인 인간관계를 평화롭고도 예의바르게 끝낼 현실적 길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모든 이별은 난폭합니다. 이별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모르는 척 하며 쌍방의 합의하에 이별을 진행시켜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진절머리를 내는데 저도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그런 진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실없는 소리들을 들어줘야하는가. 이 대화를 유지하면서 나는 사색과 휴식의 기회비용을 얼마나 날려버리고 있나... 콜름이 친구를 버려가면서 예술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저는 십분 이해합니다. 자기자신과의 대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타인이 소음공해에 더 가깝습니다. 그 폐쇄적인 섬에서, 베토벤도 모르는 우울한 짙은 눈썹의 친구와 무슨 할 이야기가 더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콜름이 파우릭을 미워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파우릭이 깡패같은 경찰에게 두들겨맞고 널부러져있을 때 콜름은 그를 부축해줍니다. 그는 아마 파우릭과의 관계에 싫증이 난 것이지 파우릭 자체를 미워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눈치없는 파우릭은 또 접근했다가 콜름의 결심만 더 단단하게 합니다. 콜름은 손가락을 잘라서 파우릭의 집에 내던집니다. 그보다 강한 메시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점점 더 안좋아집니다. 파우릭이 한번 더 말을 걸었고 콜름은 이제 손가락 네개를 다 잘라서 파우릭의 집에 던집니다. 하필이면 파우릭이 애지중지하는 당나귀가 그 손가락을 주워먹었다가 목에 걸려서 죽습니다. 파우릭은 콜름의 집에 불을 지릅니다. 둘은 정말로 끝장을 봅니다. 


아마 제가 아일랜드의 내전을 역사로 잘 알고 있었다면 더 중의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그런 맥락을 몰라서 인간관계로만 해석해야한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이미 파국에서 시작한다는 게 특이합니다. 좋은 관계였다가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게 아니라, 아예 단절이 된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이별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콜름은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 역사적인 설명을 찾아보고 싶은데 찾기가 어렵군요. 볼 때는 그냥 기괴하다고 하면서 졸다깨다 하고 봤는데 보고 나니 이상할 정도로 그 파국이 계속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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