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영어의 'you'처럼 널리 쓸 수 있는 2인칭 대명사가 없다시피 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또는 서로 친한 사이를 제외하고 서로 지칭 할 수 있는 2인칭 대명사는 전무하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이란 호칭이 있지만 이제는 상대를 낮춰 부르는 표현으로 변질돼버렸죠. '당신'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표현으로는 '그대'와 '귀하'가 있는데 '귀하'는 문어체이면서 너무 격식을 차리는 표현이고, '그대' 역시 낯 간지러운 표현이면서 널리 쓰이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인칭 대명사를 대체할 다양한 3인칭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합니다. 몇 가지 살펴보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 이름이나 직함에 의존명사인 '님'이나 '씨'를 붙이는 겁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바로 앞에 두고도 일일이 3인칭 호칭으로 '길동씨가~', '과장님이~'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 딱히 직함이 없는 경우나, '씨'를 높은 사람에게 사용할 때처럼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 역시 높히는 표현이 변질된 경우겠죠). 또한 이것이 널리 쓰이다보니 직업에 '님'을 붙이는 것 처럼 잘못된 용례도 종종 발견됩니다. 영어의 'sir'에 해당하는 '선생(님)'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극존칭으로 쓰이기 때문에 널리 쓰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씩 써야할 때가 있는데 제가 말하면서도 낯간지럽더군요.


면식이 없는 사람을 호칭할 때는 '아저씨', '총각', '아가씨', '아줌마', '언니' 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친척끼리의 호칭이 친척외에까지 확장된 경우인데 이 역시 사용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자칫하면 무례한 표현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닐 때 '저기요'라는 표현을 씁니다. 호칭을 하기 애매한 상대거나 주로 가게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많이 사용하는데 상대에게 주의를 환기시킬 때만 쓰일 뿐, 상대가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위의 표현과 달리 2인칭 대명사처럼 기능할 수가 없죠(예: 저기가 물을 안갖다줬잖아요). 이럴 땐 다시 '아저씨' 등의 표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이 정도인데 전부 3인칭 호칭이기 때문에 상대를 호칭할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2인칭 대명사처럼 사용할 때는 불편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지 않았다"라고 할 때 '당신' 대신에 위에서 거론한 3인칭 호칭을 넣어야 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상대를 높히지 않을 때는 '너', '자기', '자네'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상대를 높일 때는 대신할 2인칭 표현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새로운 2인칭 대명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비관적이 될 수 밖에 없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그 표현도 '당신'처럼 상대를 낮추는 표현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안그래도 적당한 2인칭 대명사가 없으면서 있는 것마저 그 적용범위를 좁혀버리는 건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나이로 서열을 나누는 문화가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과 비효율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하는데 2인칭 호칭 문제도 비슷한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정을 소모시키죠. 널리 쓰일 수 있는 2인칭 대명사만 정착이 되어도 이런 비용은 줄일 수 있을겁니다. 호칭이 서로 자유로워지면서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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