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7 22:08
날씨가 더워 그런지 며칠 전에는 비빔냉면이 심히 끌리더니, 어제부터는 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더군요. 더위가 살짝 주춤해져서 그런 건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라 밀가루가 땡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냉면을 먹었으면 하는 아들의 바램을 완전 무시해 주시고 칼국수를 먹으러 갔습니다. 마침 비도 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져서 딱 먹기 좋은 분위기였어요.
양재역 바로 옆에 한칸짜리 옛날짜장이랑 칼국수하는 집이 있어요. 주변의 음식점들에 비해 간판도 너무 초라하고 평수도 작아서 거의 염두에 두지 않던 곳인데, 찾으면 없다고 아무리 봐도 칼국수 집도 안 보이고 해서 그냥 그 집에 갔어요. 시댁 근처라 주차하기도 편하고 아들이 시아버님과 얼마 전에 갔다왔다 하더라구요. 가게는, 뭐랄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더군요. 옛날 짜장면집 기분이 났어요. 손님도 한 분 외엔 없고, 일하는 사람들도 가족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딱 그런 분위기, 옛 생각나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오는 음식과 양념통. 전반적으로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맛을 말하자면 김치도 별 맛 없고, 칼국수도 딱히 입에 확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평범) 저는 그 집에 참 맘에 들었습니다. 일단 주인이 참 친절했어요. 갑작스런 폭우 속에 우산 하나 나눠쓰며 갔더니 울 아들 닦으라고 수건 가져다 주시며 손수 닦아 주시고, 칼국수 한 그릇, 아들이랑 나눠 먹는 걸 보신 주방장 할아버지가 아들 칼국수 면발에 짜장 소스 퍼 주시더니, 마지막 국물 속 건더기까지 건져먹는 저에게는 밥을 좀 주시겠다 하시더군요. 공기밥 시킬려니 그러면 돈을 내야 하니 그것보단 덜되게 그냥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려면서도 가격은 4500원이었어요. 자장면도 4000원이구요. 다시 보니 낡은 집이긴 했어도 바닥도 정말 깨끗했어요. 시댁 식구들이 언젠가 이야기하길 신랑 어릴 때부터 그 동네에 있었다 하니 오래된 집인 것 같고, 직접 와서 먹는 손님들보단 배달 손님 위주인 것 같은데 여전히 인심이 살아있는 것 같아 좋더군요.(음, 아님 우리 아들이 똘똘하게 생겨 특별히 선심쓰신 걸까요?ㅎㅎ) 아, 그런데 칼국수 위주인 집은 아니에요. 짜장면집인데 칼국수도 같이 하더군요.
2010.08.27 22:19
2010.08.27 22:55
2010.08.27 22:57
2010.08.27 23:23
2010.08.28 12:05
내 앞에 칼국수가 없는 상황이 부조리하게까지 느껴지는군요.
역시 배고픔은 이성을 마비시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