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듀나님 트위터에 '고도를 기다리며' 얘기가 올라왔더라구요. 어느 분이 자기는 고도가 어떤 높은 도의 경지인줄 알았다나요. 저는 오래된 도시, 그 왜 '천년고도 경주' 할 때의 그 고도인 줄 알고 있었어요. 몇년 전에 책을 사게 되면서 그런 뜻이 아니란 걸 겨우 알게 됐죠.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게 된 계기는 꽤 속물적인 것이었어요. 교양 수준은 접싯물처럼 얕은데, 남들 앞에서 책읽은 척은 하고 싶고, 그러자면 세계문학이 딱인데, 좀 얇고 금방 읽을만한 게 없을까, 이러다가 고른 책이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쓰고보니 이건 농담 같군요). 중간에 누군가와 관련된 특이한 에피소드 정도만 흐릿하게 생각날 뿐이죠.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아, 하는 한숨이 나왔고, 그 느낌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이후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yes24에 있는 출판사 리뷰에 의하면, 이 책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 숨어 살았다고 해요. 숨어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고, 언제가 될 지 모를 그날을 기다리며 저자와 다른 피난민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한 이야기가 끝이 나면 어떻게든 다른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를 계속 해야 했는데, 이 경험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밑그림이 되었다는군요.

저자는 생전에 고도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는, 내가 그걸 알았다면 작품속에 썼을 거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러니 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고도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건 그다지 틀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추운 겨울 늦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듀게에 올릴 바낭글을 끄적이면서, 저도 언제 찾아올지 모를 제 나름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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