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8 00:29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정신 없는 계절을 보내다, 듀게가 닫혔다 열리고, 3월이 되어서야 인사를 드리네요.
거진 반년만인가요. 반갑습니다.
스물 여섯에서 일곱으로 넘어가던 겨울, 제주에서 체험 다이빙으로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에 입문해
오픈워터와 어드밴스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설렘과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종종거리며 듀게에 글을 썼던게 작년 4, 5월즈음인데
벌써 한 해가 지나 3월이네요.
당근밭의 수확이 한창이던 봄과
개양개비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담벼락엔 장미넝쿨이 흐드러지던 초여름까지
제주를 옆동네 마실가듯 드나들며 하잠하고 또 하잠하며 보냈던 시간들.
수면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과, 낮은 파도 위로 내리쬐는 햇살.
사위를 감싸는 호흡소리, 얼굴을 간지럽히며 피어 오르는 버블.
수천의 자리돔이 유영하는 수중아치를 거쳐, 맨드라미 산호의 협곡을 지나고
유유히 조류와 같은 방향으로 일렁이는 백송을 마주하면
아득한 심연의 연속.
눈을 감으면 손에 닿을 듯한 수면 아래의 세계는 저를 정말 미친사람;_;처럼 만들었고
두 계절이 지나는 내내 저는 육지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채 바닷가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동안 200회에 가까운 로그가 쌓여 갔고 어느덧 믿을 수 없는 가을.
기온과 수온이 함께 떨어지는 11월이 왔을 때
몇 달을 함께 다이빙 했던 버디들과 눈 뜨면 밥 먹고 하루종일 다이빙만 하는 일정의 여행을 잡아 보홀에 다녀왔습니다.
통상적으로 10m가 넘어가는 다이빙을 할 때 체내에 누적되는 질소를 배출시키기 위해 5m 지점에서 안전정지라고 하는 질소배출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저는 다이빙을 하는 순간 중 가장 즐거울 때가 바로 이 안전정지를 하는 동안입니다.
수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고려하고 그에 따라 메뉴얼에 맞는 다이빙만을 진행하지만 언제나 동반되는 긴장이 풀어지고
블루존에서 심해와 마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은 세상 어느것과도 맞바꾸기 힘들죠.
발리카삭의 맑은 바다와 형형색색의 열대어들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어느 때보다 정적이면서 관능적인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200회 기념 다이빙.
비다이버 입장에서는 그깟 다이빙 횟수가 뭐가 대수냘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많이 해봤자 3번 정도의 다이빙이 허락되고-그것도 날씨가 좋을 때에 한해서-주말마다 다이빙을 하러 바다를 찾는다 해도
한달에 20회를 채우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라 일반적으로 다이버들은 100회와 200회 다이브 로그를 꽤 큰 기념거리로 삼습니다.
보홀에서 다이빙을 진행할 때 마침 딱 200회째 다이빙에 맞는 날이 있어
저의 강사님들과 함께 동행한 팀들이 수중에서 현수막을 펼쳐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었는데 그렇게 신나고 좋을수가 없었죠.
수중에서 희귀한 수중생물을 만나거나 날씨운이 맞아 떨어지는 걸 다이버들의 은어로 쌧복 있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저는 참 쌧복이 좋게도 플랜카드를 펼치는 순간 바라쿠다 떼와 거북이를 만나 정말 즐거운 200회 기념 파티를 하고 돌아왔죠.
그렇게 꿈만 같던 보홀에서의 투어가 끝나고
저는 어느새 마스터 다이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픈워터, 어드밴스, 기나긴 레스큐 기간, 그리고 마스터 다이버.
멋도 모르고 마스크를 사고
제 전용 핀과
슈트를 마련하고
다이브 컴퓨터와
레귤레이터, BC를 차곡차곡 마련하는 동안 어떻게 파산하지 않고 꾸준히 다이빙을 할 수 있었는지 저도 의문이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만 1년도 안되는 동안 빼도박도 못하는 골수 다이버가 되어 있더군요.
스쿠버 다이빙에는 여러가지 매력이 있고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에 빠져 다이빙에 매혹되지만
저번에도 여러번 이야기 했듯, 수면 아래의 세상이 물론 아름답지만 단지 물고기를 구경하고, 산호를 보는 것보다
수중에서 느끼는 그 막연한 감정, 무중력 상태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적막과 공포.
그리고 그 모든것들과 함께 찾아오는 고요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물 속에서 자기 감정에 몰두 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스킬에 대한 연습이 많이 필요한데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다이빙을 하면서 여러번 벽에 부딫히고 또 그만큼 그 벽을 깨가며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꼈죠.
제대로 중성부력을 맞추고 편안하게 킥을 차고 바른 자세로 다이빙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레스큐 과정에서 버디의 불안을 보고 그 불안에 잠식 당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평정심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단계가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기가 고갈되어 가는 버디에게 괜찮다고 내가 호흡기를 나누어줄테니 당황하지 말라고 눈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할때는
이 응급상황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진심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지금 당장 너에게 호흡기를 줄거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급상승 하는 초급 다이버에게 도움을 주거나 수면에서 파도에 겁을 먹은 사람을 끌고 배까지 갈 때도
나는 이 상황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과 함께 상대방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것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상황에서의 자신감과 자기확신은 단순한 자만심이나 자기과신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연습을 통해 쌓여 나가는 스킬 그 다음의 것이었어요
뼛속까지 문과생에 운동 신경이라고는 제로, 물도 무서워하고 수영도 못하던 제가
과연 어디까지 배워볼 수 있을까 하는 갈증에 대한 해답으로 내린 것은 바로 강사 시험 이었습니다.
즐기기 위한 다이빙, 즉 레크레이션 다이빙 기준으로 최고 레벨은 마스터 다이버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내가 과연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2주간의 합숙훈련을 통해 IDC(강사개발코스)를 거치고 IE(강사시험)을 치게 되었죠.
(저 아니고 강사 후보생 동기들ㅋㅋ입니다. 잠이 부족한 평균연령 32.5세의 아쟈씨들.)
평균 수면 시간 4시간.
이론시험과 제한수역, 제한수역의 실습시험을 준비하는 IDC과정은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잠이 부족해 죽을것만 같았지만 즐겁고 또 새로웠습니다.
어떤 날은 아침 먹고 9시 좀 넘어서 들어가 수영장 폐장 시간인 밤 8시까지 물 속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직 차가운 바다에서 두시간이 꼬박 넘도록 덜덜 떨며 실습을 마치기도 했었죠.
이론시험에 약한 후보생분들을 위해 후보생들끼리 전문분야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
기계치인 저를 위해 많은 상남자 후보생분들이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피말리는 IDC 기간 동안
저 스스로의 발전 뿐만 아니라 좋은 강사란 어떤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다른 후보생들과 인사하며 자기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연유에서 강사 시험을 치게 되었는가 소개 하는 대목이 있는데
거기서 저는 영리강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사 시험을 통해 다이빙에 대해 더 배울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대답을 했었죠.
하지만 지나고 보니 참 부끄러운 대답인 것이
영리적인 목적이든 아니든 강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프로라면 그 나눔에 대해서 합당한 댓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임은 물론이고
다이빙은 늘 버디와 함께 해야 하는 레포츠인데 과연 나 스스로만의 발전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한참 고민하기도 했었네요.
그리고 대망의 IE!!
시험 칠때는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기에 합격증서만 뙇!
함께 시험에 임한 강사 후보생 전원 합격이라는 영광에 정말 얼싸안고 기뻐하며 서로를 축하해 주고
강사시험이 끝난 시간부터 거하게 낮술을 마셨던게 아직 생생하네요.
강사가 되고 가장 좋았던 건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이 일을 제가 직접 가르치고 안내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작년에만 벌써 주변사람들 여럿을 제가 배웠던 센터로 데려가 강습을 받게 했지만
이젠 안가도 돼!! 나한테 받아!! 진짜 재밌어 ㅠㅠ 한번만 해봐!! 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스쿠버 다이빙에 미쳐서
2013년 한해 동안 제주행 편도 비행기만 20회를 타고 총 183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주에 머물며 200회가 훨씬 넘는 다이빙을 하고도 모자라
2월에 강사시험을 치고 저번주에 첫수업을 하고 나타난 다이버 벚의 다이빙 일대기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아직은 취미로 하는 강사이긴 하지만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되도록 정규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마성의 영업으로 많은 다이버를 배출할 포부ㅋㅋ를 가지고 있지만 글쎄요.
저의 다이빙 여정은 과연 어디까지 일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럼 다음에 또 다른 바다 이야기, 그리고 되도록 식단 공개도 함께 해서 찾아 뵐게요:-)
2014.03.08 00:33
2014.03.08 00:35
생각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나 다이버가 많다니까요:-) 반갑습니다. 세계 아니 국내 어느 포인트에서든 만날 수도 있겠네요. 아님 잠실 수영장에서라도 ㅋㅋ
2014.03.08 00:35
다이버 강사까지 됐군요 축하해요.
2014.03.08 00:37
네 스쿠버 다이빙 강사입니다:-) 감사해요
2014.03.08 00:42
대단하십니다요!! 무릎 이상 깊이의 물에만 들어가도 심장이 벌렁벌렁 하는 저로썬 벚꽃동산님이 우주에 200번 갔다온사람처럼 위대해 보여요. 어떤 의미론 바다속이 또 다른 우주이기도 하겠죠. ㅎㅎ
2014.03.08 00:58
우주에서 느낄 수 있는 무중력 상태를 가장 유사하게 경험할 수 있는게 바로 스쿠버 다이빙이라고 하죠.
저도 처음 배울 땐 20m만 내려가도 심장이 터질것 같고 약간의 파고만 높아져도 곧죽을 것 같았는데 재미가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더군요 ㅎㅎ
그리고 스쿠버 다이빙 할 때의 익사사고는 볼링장에서 볼링치다 사망하는 확률과 사고율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다이빙용 슈트 입고 부력조절기 메고 있으면 절대 빠져 죽지 않아요 ㅎㅎ 다들 가라앉지 못해서 고생한답니다.
2014.03.08 00:51
다른 건 무식해서 몰라도 바다거북과 조우하시는 사진은 참 마음이 찡하네요.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항상 무탈하시길 빕니다.
2014.03.08 00:59
거북이 뿐만 아니라 고래상어, 돌고래, 만타레이!! 등 만날 수 있는 어종들은 훨씬 다양하죠. 다음 투어때는 꼭 만타를 만날거예요.
축하 감사합니다XD
2014.03.08 01:04
아쒸 고래상어라니!! 얌전하게 댓글 달았건만 제대로 염장 지르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
2014.03.08 01:04
2014.03.08 01:12
감사합니다! 사실 따 놓고 아직 제 뿌듯함을 다 날려 버리지 못하긴 했어요 ㅋㅋ
교육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편하게 물어봐 주셔요. 10년, 20년 다이빙 한 강사님들처럼 경력이 많진 않지만
누구보다 자신 있는 건 물을 무서워하고 처음 스쿠버 다이빙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생(1년 전의 저..)의 마음을 진심 이해하고 그에 맞게 수업할 수 있다는거예요
처음부터 잘 배우면 좋지만 잘 못하는 사람도 초임강사의 미친열정ㅋㅋ으로 다이빙의 세계로 데려갈거랍니다
2014.03.08 01:15
다이빙에 대한 설레임을 표현하셨던 글이 기억나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쉽지 않았겠지만 정말 원하셨기에 과정을 감내하셨겠군요. :-)
2014.03.08 01:19
감사합니다. 우연히도 3월 8일은 딱 1년 전 제가 오픈워터 교육을 시작하게 된 날이기도 하네요.
아직 그 때의 감정들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적이 있긴 했지만 다이빙을 하는 동안은 한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답니다.
다음주에도 수업이 있는데 첫 오픈워터 수업 받을때처럼 설레고 기대 되네요:-)
2014.03.08 01:28
먹는 짤이 없는데도 감동이네요
우화아앙~
2014.03.08 17:49
2014.03.08 02:23
사진들이 다 아름답고, 느긋해지는 기분입니다. 바다사진만 봐도 이런데 들어가시는 분은 어떨까싶어요. ^^
2014.03.08 17:54
2014.03.08 02:59
2014.03.08 17:57
2014.03.08 03:05
2주 후에 말레이시아의 티오만섬에서 첫 다이빙! 겸 오픈워터 교육을 받을 예정입니다.
이 글을 보니 더 설레게 되네요 ㅎㅁㅎ 축하드려요!
2014.03.08 17:59
2014.03.08 03:26
저도 어느 날 문득 수강신청 하겠습니다. 돌고래와의 유영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 입니다.
2014.03.08 18:01
2014.03.08 05:23
와 정말 축하드려요. 저도 언젠간 마스터를 따겠죠?... 아 정말 부럽네요 ㅎㅎㅎ
2014.03.08 18:03
2014.03.08 05:46
우오! 짝짝짝! 열정이 느껴져요. 온 몸으로 폭 빠지셨네요. 바닷속에 자리한다는 걸 상상으로 그릴 수 밖에 없지만 글과 사진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2014.03.08 18:05
2014.03.08 07:32
2014.03.08 19:27
2014.03.08 08:13
2014.03.08 19:29
2014.03.08 08:54
다이빙 너무 하고싶네요 저도. 하지만 기회가.
근데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만..스쿠버 다이빙도 잘하고 못하고의 실력이 있는건가요?
2014.03.08 19:34
2014.03.08 10:21
재밌겠어요! 그리고 맛있게 밥상차리시는것도 모자라 이제는 재료를 직접 공수까지 하실테니!!
2014.03.08 19:40
2014.03.08 11:55
2014.03.08 14:00
^^ 욕많이 봤심더. 멋진 강사님 되세요 ㅎㅎ. 한 두어달만 있으면 다시 다이빙하러 제주 갈 수 있겠네요.
2014.03.08 14:59
진짜 대단합니다. 맨 처음 다이버의 세계에 입문하실 때 부터의 글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주욱 읽어 왔었어요.
저도 언젠간 해야지 하는 다이버 이야기이기도 했고 글도 마치 내가 체험한 것 같은 흡입력도 있었구요.
정말 내 일처럼 기쁘다는게 이런 것이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젠간 저 역시 벚꽃나무님의 행보를 뒤따라 가겠죠? 계속 해서 다이빙 이야기 전해주세요.
2014.03.08 16:22
와우.. 축하드려요~ 대단하시네요. 강사라니.. 저는 어드밴스까지 따고, 레스큐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더이상 레벨업같은건 꿈도 꾸지 않기로 했는데... ^^
장비까지 다 장만하셨네요. 순토Di6.. 제 꿈의 컴퓨터네요. 너무 이뻐요. 장비들이 다 반짝반짝 해요~~
저두 이번 구정 연휴때, 보홀 다이빙 투어를 다녀왔답니다. 그 전에 태풍이 지나가서인지 시야가 썩 좋지 않았어요. 저는 잭피쉬도 겨우 봤는데, 바라쿠다라니.. 바라쿠다라니... 너무 부럽네용..
저는 태풍오기 전날에 야간 다이빙 갔다가.. 죽는줄 알았어용. 물 속에서 20분, 물위에서 30분 떠 있었네요. 조류때문에.. 파도가 집채만하고 얼굴에는 비바람 싸다귀.. ㅠㅠ
야간다이빙은 무조건 잔잔한 날 가는걸로..
아무튼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