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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편에서 "우주로 가버리는" 그런 뇌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 편의 뇌절은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번 작을 보는 내내 헛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존 윅 4]를 좋게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하나의 장르영화로서 보는데 완전히 실패했을 것 같아요. 신경쓰면 지는 거라고 계속해서 자기최면을 걸었습니다. 왜...? 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생각하지말자!! 라고 명상을 하듯이 영화를 봤습니다. 귀신영화 보러 가서 지평좌표계에 어떻게 고정이 되어있는지 따지고 들 순 없듯이요.


이 시리즈를 다 안봐서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전편에서 주인공 도미닉이 마피아 금고를 털어버린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 일화를 프롤로그처럼 보여주고 '사실 거기에는 아들내미도 있었다...'는 첨가를 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좀 궁색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렇다고 쳐야죠. 이 설정에서부터 이 작품의 대책없는 가족주의가 시작됩니다. 너는 우리 아버지를 죽였어,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아버지로서의 아픔을 안길 거야... 그리고 어김없이 나오는 도미닉 식구의 대가족 바베큐 파티가 나옵니다. 농담 안하고 전성기적 와이지 패밀리보다 패밀리를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거의 명절 영화 급으로 훈훈한 가족애가 깔려있습니다. 물론 보면서 감동은 1도 없습니다. 어차피 악당한테 박살나기 위해 깔아놓고 가는 거니까요.


이 작품의 이런 가족주의는 중세시대 봉건제와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이 패밀리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세력의 단위인 것이죠. 도미닉의 가족은 도미닉 혈족과 그를 따르는 기사 및 다른 영주들입니다. 그래서 도미닉과 대립하던 사이퍼가 찾아와서 도움을 청할 때, 가문의 원수이지만 또 다른 가문을 유지하는 영주가 자기 성을 털린 뒤 지역 단위의 협력을 요청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도 또 가족주의가 터져나옵니다. 이번 작의 메인 빌런 "단테"가 사이퍼의 성을 빼앗는 과정은 사이퍼의 부하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자기 아래로 들어오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끝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이 가족의 질주... 아니 [분노의 질주]를 보고 있자면 모든 게 온통 나의 가족을 지킨다는 가부장제와 마초이즘의 뒤범벅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가족타령, 악당도 가족타령, 주인공을 돕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 죽는 사람들도 다 가족... 그래서 보는 내내 의문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왜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세계급으로 부풀려서 터트리는 것일까. 화려하고 규모가 큰 액션을 선보여야 한다는 기능적인 이유는 알겠는데, 영화는 이 가족주의를 너무 낯뜨겁게 떠들고 있어서 영화 전체가 가족을 인질로 걸고 쇼를 펼치는 인상입니다. 언제는 안그랬냐만은.


영화가 액션의 목적만 있어서 캐릭터들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합니다. 특히나 메인 빌런인 단테는... 영화 상의 표현대로 이 캐릭터를 이해하면 진짜 머리통이 고장난 사람 같습니다. 그는 자기가 너무 미워하고 복수하려는 도미닉에게 적당히 극복가능한 과제를 던져주면서 잘하면 잘하는대로 멋지다고 하고, 또 그의 과거를 낱낱이 조사해서 그걸 전시하고, 애증에 미쳐버린 스토킹 사생팬 짓을 런닝타임 내내 하는데 이게 뭐하는 낭비인지 보다보면 좀 지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저렇게 신을 내면서 즐기면 그건 불효자 아닌가요? 이런 거 생각해봐야 생각하는 놈이 패배한 건 압니다만, 그래도 좀 너무합니다. 단테의 동기는 증오보다는 선망하는 라이벌 의식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계속해서 적당히 시버걸고 또 도미닉을 칭송하고 대결하고 싶어하고 이런 짓을 할 리가...


이 과정에서 이 영화는 장르영화로서 존 윅 시리즈와 확실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존 윅은 말이 없죠. 그리고 대의명분과 무관하게 개인 대 조직 권력다툼으로 훨씬 더 단순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래서 액션을 즐기는데 별 부담이 없어요. 그런데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휴머니즘을 깔고 가려고 별의별 짓을 다합니다. 현실적인 설득에 미련을 놓지 못하죠. 그 와중에 이 시리즈에 나왔던 사람들은 죄다 끌고 나옵니다. 


그리고 끝없는 가오의 질주... 어디 근사한 해외 명소를 갔다하면 자막으로 쾅! 하고 박아주고요. 거기에 떴다 하면 주인공들은 으시대면서 기물파손 엄청나게 해댑니다. 미국인 민폐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 끝을 보는데, 그런 점에서 가족주의와 전 세계 무대가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정치적 지향점이 미국패권주의를 과시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흑인 대 백인 (빈 디젤은 혼혈이지만)의 남성성 쟁탈전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리뷰 쓰기가 곤란한 작품은 또 처음입니다. 보고 난 지 한시간만에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단테를 연기한 제이슨 모모아의 연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양갈래 머리도 뭔가 웃겼고요ㅋ 하지만 그 외에는 시종일관 돈과 힘을 과시하기만 해서 좀 지치더군요. 캐릭터들이 단체로 세뇌라도 되어있나 싶어서 납득이 안될 때는 같이 보러 간 친구를 바라보며 무언의 항의를 했습니다. 아무튼 자동차만 있으면 중력이고 물리학이고 다 무시하니까... 그냥 어이의 질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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