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 

영국-미국, 2024.    ☆☆☆★


An Escape Plan/Film4/A24 Co-Production. 화면비 2.39:1, 1시간 44분. 


Director: Rose Glass. Screenplay: Rose Glass & Weronika Tofilska. Cinematography: Ben Fordesman. Production Design: Katie Hickman. Special Makeup Artist: Bryan Perkal. Music: Clint Mansell. 
CAST: Kristen Stewart (루이즈), Katy O’Brien (재키), Anna Baryshnikov (데이지), Ed Harris (루), Dave Franco (제이제이), Jena Malone (베스), David DeLao (경찰관).


LOVE LIES BLEEDING POSTER #1 

광기가 넘쳐나는 심리스릴러 [Saint Maud] 를 만든 로즈 글래스의 베를린영화제에서 꽤 화제를 끌었던 두번째 작품이 금년도 부천영화제의 개막작입니다. 곧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개봉하는 모양새인데, 부천영화제에는 합당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자면 최근 북미의 드라마 시리즈와 영화계에 보이기 시작하는 “익스트림 복고풍” 이라고 해야 할지, 1970-80년대를 충실하게 또는 패러디로 재생하기 보다는, 당시의 추레하고 과격하고 쓸데없이 키취스러운 경향성을 완연히 끌어안고 가는 그런 장르적 태도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러브 라이스 블리딩] 은 내용상으로는 별 볼일 없었던 [언더워터] 같은 작품에서 오히려 더 강렬하게 발휘되는 종류의 크리스텐 스튜어트의 압도적인 영화스타적 재능이 없었더라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기획 단계에서 전혀 다른, 좀 더 얄팍한 작품이 되었을 공산이 큽니다. 이 한편에는 일면 매섭게 날이 서 있고 씨니컬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 기저에 서글픔과 회한의 감정이 흐르는 그런 플레이버가 있는데, 그 주된 성분은 간단히 말해서 스튜어트의 캐스팅과 그의 황당하게 훌륭한 연기라고 할 수 있겠죠. 


[블리딩] 은 레이건 시대 말기 1989년의 미국, 대다수의 지방 유지들이 크고 작은 형태의 범죄와 폭력과 연계되어 있는 뉴 멕시코의 시골 마을이 배경입니다. 풀도 제대로 안 나있는 모래먼지에 휩싸인 길을 차타고 좀 가면, 무슨 지옥에의 통로처럼 대지가 쩍 입을 벌리고 갈라져 있고, 그 공간을 시체 처리용으로 써먹고 그래도 아무도 아무 말도 안하는 그런 동네입니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루 (“루이즈” 의 약칭인지? 아무튼 아버지의 이름도 “루” 라서, 통상적으로는 그녀의 캐릭터가 루 주니어인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루 시니어” 로 호칭되는 듯 하네요) 는 이 시골에서 덩치만 크지 화장실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모두에 나오는 막힌 변기를 뚫는 일도 손수 해야 되는 지저분한 묘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추레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인 오너는 괴상망측한 백발 히피 머리를 하고 살아있는 해골같은 몰골을 하고 있는 갱스터 두목 아버지이고, 그의 언니는 찌질한 폭력남에게 주기적으로 구타당하면서도 “나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라는 변명만 일삼고 있지, 형사들은 루의 주위를 맴돌면서 과거에 아버지 때문에 실종된 인물들을 탐문하지, 답답하기가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설정의 디테일이 카일리 미노그 등의 뮤직 비데오를 찍었고 [아웃 오브 다크니스] 에 강렬한 짙은 암흑의 영상을 그려냈던 벤 포즈먼이 담당한 하이 콘트라스트의 카메라의 지원을 받으면서 일종의 극채색적, 약에 취한 것처럼 약간 “들 떠 있는” 영상을 통해 표현되는 데요. 뭔가 차분하게 드라마가 벌어진다는 인상 보다는 끊임없이 감정의 바닥과 폭발적으로 아드레날린이나 세로토닌이 뇌내에서 분비되는 “하이” 의 상황을 오가는 캐릭터들의 주관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주인공 “루” 를 처음부터 두목의 딸이자 레스비언인 것으로 상정하고 각본을 쓴 것인지, 아니면 원안에서는 루가 남성이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크리스텐 스튜어트를 캐스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급히 루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꾼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로 스튜어트의 임팩트는 강렬합니다.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보디빌딩으로 라스 베가스의 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이 꿈인 재키를 트레이닝해주겠다고 꼬실 정도의 캐릭터라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지닌 스튜어트의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만, 이 캐릭터의 중요한 점은 그 심리적인 비틀림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의 표현이겠지요. 그러나 스튜어트는 그 자신 정말 그림에 그린 것 같은 어여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권총을 휘두르고 하는 소도구적인 요소에 의존하기를 거부하고, 그 마음속에 누적되어 있는 고뇌와 또한— 이 점이 중요한 데— 포식자적인 성향을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보디빌더로서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 잭키역의 케이티 오브라이언도 그 일면 사람들의 심중을 읽지 못하는 나이브함과 더불어 스테로이드 약물로 망가져가는 정신상태를 열성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만, 잭키의 캐릭터에 관련된 요소들은 나한테는 약간 얄팍하게 느껴졌습니다. 잭키가 점액으로 덧씌워진 루를 입에서 구토하는 환영을 보는 신이라던가, 잭키가 쉬-헐크처럼 변신을 하는 클라이맥스 등 로즈 글래스 감독의 과격한 상상력을 과시하는 장면들도 나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 미적으로 매력적인 군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류의 80년대 싸구려 뮤직 비데오적인 “미적 감각” 을 글래스 감독이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했다고까지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끝까지 보고 난 다음의 나의 감상은, 이 한편의 키취적이고 약 빤 것같은 하이한 분위기는 아주 드라이하고 냉소적인 알맹이를 가리고 관객들을 후리기 위한 일종의 스타일적인 위장전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가 매듭을 지은 부분에서 영화를 끝내는 순간에 나오는 어찌 보자면 상당히 “재수 없는” 코다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 한편의 내실은 린다 피오렌티노 주연의 [The Last Seduction] 같은 필름 느와르입니다. 어찌 보자면 팜므 파탈이라는 연구자들이 비판하다시피 남성 중심적인 담론으로 생성된 존재를 성정체성적으로 비틀어서 재구축한 예로도 쓰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텐 스튜어트와 근육이 마구 불거진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레스비언 로맨스에 중점을 두고 이 한편을 보신 분들께서는 보기 전에 기대하셨을 수도 있을 접근에서 좀, 또는 많이, 빗나가는 한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려놓겠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언설인데,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고 하면 감이 잡히시려나? (아 물론 섹스 묘사는 아주 드세게 다 드러내놓고 하니까 그 점은 염려하실 필요 없고요) 토드 헤인즈의 [캐롤] 같은 한편을 기대하시면 실망하실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걸작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순전히 크리스텐 스튜어트 보는 재미로 봐도 충분히 입장료 가치를 뽑는 한편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주인공을 사랑한다고 어쩌고 하면서 귀찮게 굴다가 처참한 꼴을 당하는 데이지역의 안나 바리시니코프가 부천영화제 때문에 한국에 오셨다고 들었는데 나는 만나뵐 기회를 놓친 듯 하네요. 이분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따님이시고, 안무가와 댄서로 나간 슈라 바리시니코프와는 열 살 가까이 나이가 어린 배다른 동생인데, 슈라보다 이분이 아버지를 빼닮았네요. 슈라의 엄마는 대배우 제시카 랭인데 그분은 댄서가 되었고, 안나의 엄마는 어메리칸 발레 씨어터 출신의 발레 댄서 리자 라인하트인데 이분은 연기자가 되었습니다. 안나가 너무 사브작거려서 발레를 배울 수 없었다는 글도 읽었는데 본인의 피셜인지 남들이 한 소린지 모르겠네요.^ ^ 연기파 지향이신 것 같은데, 앞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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