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 엔딩

2023.12.13 11:30

칼리토 조회 수:232

몇년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스쿼시를 다시 치고 있습니다. 초보는 아닌데.. 다시 치기 시작하니 또 한번 초보가 된 느낌? 어색하지만 근육이 소리를 지르는 게 느껴지면서 뭔가 기분이 좋을락 말락하기도 하고 이 운동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낡았구나 싶기도 합니다. 늙거나 낡거나.. 


스쿼시를 끊었는데 사우나가 따라 왔습니다. 제법 부유한 동네의 헬스클럽이라 운동 끝내고 온탕에 들어가면 아마도 자주 이 곳을 이용하는 느낌의 사람들이 저절로 보이는데 태반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즉 장년을 벗어나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거나 완연한 노년이 되신 분들이죠. 


근육의 흔적이 보이는 몸들도 있습니다만 극단적으로 뼈와 가죽으로만 된 조합이라던가.. 볼록한 배와 허기진 팔다리도 있고 대부분은 엉덩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쳐졌습니다. 머리 숱은 빠지고 얼굴은 기미와 검버섯 그리고 주름이라기에는 미묘한 흔적들이 남아있네요. 


타인을 그렇게 자세하고 꼼꼼하게 볼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어떤 처연함? 허무함 같은 게 느껴져서 그렇게 멍하니 관찰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지금도 어느 회사의 대표일지도 모르고 건물주님이라 월세를 따박따박 받는 화려한 인생일수도 있겠지만 온탕안에 함께 들어 앉은 모습들은 이미 생의 많은 부분을 소모하고 어쩌면 죽음에 더 가까운 모습들이라 전혀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린 것, 젊음이라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피부가 탄력이 있고 얼굴이 화사한 것.. 그런 것들은 모두 겉으로만 보이는 아름다움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온탕 속에 묵묵히 앉은 군상들을 보면 내가 그러한 상황일 때 최고 속도로 모든 것을 즐겨야 하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젊음은 쉬이 사라지고 온탕 엔딩은 부지불식간에 찾아 옵니다. 


어제는 나이 든 아저씨 둘이서 서로의 엉덩이를 칭찬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아직 탱탱하다던가 뭐라던가.. 그러게요. 사우나에서도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이어지고 그것의 대부분은 서로의 기분을 잠시나마 좋게 해주는 거겠지요. 슬프고도 희극적인 순간이었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36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41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731
125175 프레임드 #668 [4] Lunagazer 2024.01.08 69
125174 임선애 감독, 이유영, 임선우 주연 - 세기말의 사랑 메인예고편 상수 2024.01.08 205
125173 파묘 1차 예고편 [1] 상수 2024.01.08 247
125172 젤리아드 음악 [1] 돌도끼 2024.01.08 85
125171 코난 잡담 [11] 돌도끼 2024.01.08 309
125170 어제 1.7.일자로 63년이 된 사진/드 팔마 영화에 나온 드 니로 [6] daviddain 2024.01.08 317
125169 웅남이를 봤어요...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3] 왜냐하면 2024.01.08 553
125168 2024 골든 글로브 수상 결과 [2] 상수 2024.01.08 393
125167 뒤로 가는 남과 여에서 [3] daviddain 2024.01.08 212
125166 [디즈니플러스] 아주 독한 힐링물, '더 베어' 시즌 1 잡담입니다 [11] 로이배티 2024.01.08 501
125165 프레임드 #667 [2] Lunagazer 2024.01.07 67
125164 [넷플릭스, 디플] 도쿄 MER, 달리는 응급실 [4] S.S.S. 2024.01.07 320
125163 [시간의 향기] [4] thoma 2024.01.07 177
125162 2023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Award Winners [2] 조성용 2024.01.07 172
125161 #경성크리쳐 시즌1 다보고<스포> [2] 라인하르트012 2024.01.07 411
125160 [넷플릭스바낭] 미국인들이 작정하고 건전하면 이렇습니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잡담 [8] 로이배티 2024.01.07 660
125159 열녀박씨계약결혼뎐 완결.. 라인하르트012 2024.01.06 302
125158 요즘 들은 신곡 MV들 - 1조, 도레미파, To X, Chill Kill, Love 119, What Love Is, Off The Record 상수 2024.01.06 145
125157 [근조] 전 천하장사 황대웅 [2] 영화처럼 2024.01.06 330
125156 Wild palms [9] daviddain 2024.01.06 14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