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8 04:02
[EBS 인문학특강]에 '한시, 삶의 노래'라는 강연이 있더군요.
https://youtu.be/y0WWIwy3YG0?list=PLX9xXlTjdQqGijQJWRhNRvOSDQ3zljzAQ
1강 근원으로의 회귀, 도연명
2강 영원한 자유인, 이백
3강 슬픔의 미학, 두보
4강 삶의 긍정, 백거이
5강 성스러운 자연의 발견, 왕유
6강 일상에 뿌리내린 해학, 한유
7강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소식
8강 삶, 사상 그리고 문학의 일치, 김시습
저는 '자유', '슬픔', '집착'에 끌려서 2강, 3강, 7강을 휙휙 돌려보다 한시 몇 편 가져왔어요.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李白(이백)
夫天地者 (부천지자) 천지라는 것은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고
光陰者(광음자) 광음이란 것은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 긴 세월 거쳐가는 길손이다
而浮生若夢(이부생약몽) 뜬 구름 같은 인생은 그저 꿈만 같으니
爲歡幾何(위환기하)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 얼마나 되는가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 옛사람이 촛불 들고 밤에 노닌 것은
良有以也(양유이야) 정말로 이유가 있도다
春日醉起言志 (춘일취기언지) 李白(이백)
處世若大夢 (처세약대몽) 세상에 처하기는 큰 꿈과 같거늘
胡爲勞其生 (호위노기생) 어찌 생명을 고달프게 하랴
所以終日醉 (소이종일취) 그래서 종일토록 취하여선
頹然臥前楹 (퇴연와전영) 무너지듯 앞 기둥 밑에 누웠다가
覺來盼庭前 (각래반정전) 깨어나 뜰 앞을 흘끗 보니
一鳥花間鳴 (일조화간명) 한 마리 새가 꽃 사이에 울고 있다
借門如何時 (차문여하시) 지금이 무슨 때인가 묻자
春風語流鶯 (춘풍어류앵) 봄바람에 날아가는 꾀꼬리가 말한다
感之欲歎息 (감지욕탄식) 이에 느껴 탄식하려다간
對酒還自傾 (대주환자경) 술병을 마주해 또 스스로 기울이고
浩歌待明月 (호가대명월) 크게 노래하며 달 뜨길 기다렸으나
曲盡已忘情 (곡진이망정) 곡이 다하자 그 감정을 잊었노라
登高(등고) 杜甫(두보)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서애) 급한 바람 높은 하늘에 잔나비 울음 구슬프고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류회) 맑은 강가 흰 사장에 새 날아 돌아오는데
無邊落木蕭蕭下(무변낙목소소하) 가없는 낙목은 솨솨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다함 없는 긴 강은 콸콸 흘러온다
萬里悲秋常作客 (만리비추상작객) 만 리 밖 슬픈 가을에 오래도록 길손 되어
百年多病獨登臺 (백년다병고등대) 인생 백년 병도 많아 홀로 누대에 올랐나니
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백) 간난에 서릿발 된 귀밑머리가 너무도 한스러워라
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맥없이 그만 끊었다 탁주배 드는 일도
無邊落木蕭蕭下(무변낙목소소하) 가없는 낙목은 솨솨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다함 없는 긴 강은 콸콸 흘러온다
絶句(절구) 杜甫(두보)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 강물 파래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 산 푸르고 꽃은 타는 듯하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 이 봄도 목전에 또 지나간다만
何日是歸年(하일시귀년) 어느 날이 돌아갈 때인가
成都紀行(성도기행) 杜甫(두보)
翳翳桑楡日(예예상유일) 뽕나무, 느릅나무 사이로 해는 어둑한데
照我征衣裳(조아정의상) 길 떠난 나그네, 나의 옷깃을 비추는구나
我行山川異(아항산천리) 내가 걷는 길은 산천도 다르고
忽在天一方(홀재천일방) 문득 나는 먼 하늘 한 곳, 여기에 있도다
但逢新人民(단봉신인민) 오직 만나는 이는 낯설은 사람들
未卜見故鄕(미복견고향) 고향 다시 볼 일은 점칠 수도 없도다
大江東流去(대강동류거) 큰 강물은 동으로 흘러가는데
遊子日月長(유자일월장) 떠도는 나그네 길은 멀기만 하여라
曾城塡華屋(증성전화옥) 층진 성채에는 화려한 집들 가득하고
季冬樹木蒼(계동수목창) 마지막 겨울인데도 나무는 푸르기만 하다
喧然名都會(훤연명도회) 이름 난 도회는 소란하여
吹簫間笙簧(취소간생황) 생황소리에 퉁소소리까지 들려온다
信美無與適(신미무여적) 참으로 아름다워도 함께 갈 사람 없어
側身望川梁(측신망천량) 몸을 옆으로 뉘여 냇물과 다리를 바라본다
鳥雀夜各歸(조작야각귀) 새들도 밤이면 각자 돌아가거늘
中原杳茫茫(중원묘망망) 중원은 아득하고 멀기만 하여라
初月出不高(초월출부고) 갓 나온 달이 채 높지 못하여
衆星尙爭光(중성상쟁광) 뭇 별들이 아직 빛을 다투는구나
自古有羇旅(자고유기려) 떠도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
我何苦哀傷(아하고애상) 나만 어찌 이리도 슬퍼하는가
小寒食舟中作(소한식주중작) 杜甫(두보)
佳辰強飯食猶寒(가진강반식유한) 좋은 날 억지로 먹는 밥은 여전히 찬데
隱机蕭條戴鹖冠 (은궤소조대갈관) 책상에 기대어 쓸쓸히 은자의 관을 써보네
春水船如天上坐(춘수선여천상좌) 봄 강물의 배는 천상에 앉은 듯하고
老年花似霧中看(노년화사무중간) 늙은 날의 꽃은 안개 속에 보는 것 같네
娟娟戲蝶過閑幔(연연희접과한만) 사뿐사뿐 나는 나비는 장막을 지나치고
片片輕鴎下急湍(편편경구하급탄) 하나둘씩 나는 백구는 급여울에 내리꽂히네
雲白山青萬餘里(운백산청만여리) 흰 구름에 푸른 산의 만리 밖
愁看直北是長安(수간직북시장안) 근심스레 바라보는 북쪽은 바로 장안이리니
赤壁賦(적벽부) 蘇軾(소식)
且夫天地之間(구부천지지간) 무릇 천지간
物各有主 (물각유주) 만물은 각각 주인이 있기에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雖一毫而莫取(수일모이막취)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으나
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오직 강상의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산간의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귀로 그것을 들어 소리가 되고
目遇之而成色 (목우지이성색) 눈으로 그것을 보아 색을 이룬다
取之無禁(취지무금) 그것을 가져도 금하는 이 없고
用之不竭(용지불갈) 그것을 써도 다하지 않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는 조물주의 다함 없는 창고로서
而吾與子之所共食 (이오여자지소공식) 나와 그대가 함께 향유하는 자원이다
題西林壁(제서림벽) 蘇軾(소식)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옆에서 보면 산령, 곁에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無一同(원근고저무일동) 멀고, 가깝고, 높고, 낮아 모두 다르다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것은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이 몸이 이 산 안에 있기 때문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민지회구) 蘇軾(소식)
人生到處知何事(인생도처지하사) 산다는 게 무엇과 같은지를 아는가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기러기가 눈 섞인 진창을 밟는 일 같다네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유지조) 진흙에 기러기는 어쩌다 발톱 자국 남기지만
飛鴻那復計東西(비홍나부계동서) 기러기 날아오르면 향방을 어찌 따지랴
老僧己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노승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되었고
壞壁無有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벽은 허물어져 옛 글씨 찾을 길 없네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지난날 험난했던 산길을 기억하느냐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길은 끝없고 사람 지치고 노새 울어대던
舟中夜起(주중야기) 蘇軾(소식)
夜深人物不相管(야심인물불상관) 깊은 밤 사람과 사물이 서로 무관심할 때
我獨形影相嬉娛(아독형용상희오) 나 홀로 그림자와 즐기나니
暗潮生渚弔寒蚓(암조생저조한인) 어둠 속 조수는 물가에 불어나 지렁이를 애도하고
落月掛柳看懸蛛(낙월괘류간현주) 지는 달은 버드나무에 걸려 거미를 바라본다
東坡(동파) 蘇軾(소식)
雨洗東坡月色淸(우세동파월색청) 비에 씻긴 동쪽 언덕, 달빛 맑은 밤
市人行盡野人行(시인행진야인행) 왕래 끊긴 길을 야인 홀로 걷는다
莫嫌犖确坡頭路(막혐락학파두로) 울퉁불퉁 동파 길이 험하다 싫어 말자
自愛鏗然曳杖聲(자애갱연예장성) 잘각잘각 지팡이 소리를 사랑하기에
2017.04.08 09:53
2017.04.08 10:41
오오, 문과는 고등학생 때 두시언해도 배우는군요. EBS 강연에서도 두시언해 부분이 나오던데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ㅠㅠ 나중에 시간 날 때 EBS2 국어 강좌를 좀 찾아봐야겠어요.
저는 이제 한자맹이 다 돼서 한시도 음과 뜻을 다 알려줘야 겨우겨우 이해가 갈랑말랑하고요.
심심할 때 이런 한시도 자력으로 한 수 읊어보고 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春夜喜雨(춘야희우) 杜甫(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 되어 내리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2017.04.08 11:06
2017.04.08 12:08
한시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한자 뜻의 미묘한 차이와 발음을 알아야 할 텐데
저는 그게 안 되니 한국어로 번역이 잘 되어 있어야 좀 찾아 읽을 것 같아요. ^^
이번 강연에서 알게 된 시들 중에서 저는 소동파의 시가 꽤 마음에 들어서 한 편 더~
琴詩(금시) 蘇軾(소식)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거문고 소리가 줄 위에서 나는 것이라면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부명) 어찌하여 상자 안에서는 울리지 않는가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거문고 소리가 손끝에서 나는 것이라면
何不于君指上聽(하불우군지상청) 어찌하여 그대 손가락에서는 들리지 않는가
2017.04.09 00:49
2017.04.09 02:35
한시에는 밤에 관한 시가 많아서 좋아요. ^^
倦夜(권야) 고달픈 밤 杜甫(두보)
竹凉侵臥內 (죽량침와내) 대숲의 서늘함 방안까지 스며들고
野月滿庭隅 (야월만정우) 달빛은 구석구석 뜰 안을 비춘다
重露成涓滴 (중로성연적) 맺혀진 이슬은 방울지어 떨어지고
稀星乍有無 (희성사유무) 드문 별은 깜박깜박 조는 듯 반짝인다
暗飛螢自照 (암비형자조) 반딧불이 어둠을 스스로 밝혀 날고
水宿鳥相呼 (수숙조상호) 물가에 깃든 새들 서로를 부른다
萬事干戈裏 (만사간과이) 세상만사가 전쟁 속에 있으니
空飛淸夜徂 (공비청야조) 맑은 밤 지나감이 괜스레 슬프다
2017.04.09 13:33
멋지네요...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2017.04.09 10:54
2017.04.09 13:31
을지문덕이군요. 저도 좋아하는 시입니다. 군인들이 멋지게 시 한 수 읊으니 근사하…
2017.04.09 01:26
2017.04.09 02:57
[EBS 인문학 특강]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특강을 못 본 것 같은데 저도 못 본 강연이
굉장히 많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달밤에 거문고를 뜯고 있으면 참 운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
竹里館(죽리관) 王維(왕유)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앉아
彈琴復長嘯(탄금부장소) 현을 튕기다가 휘파람 부나니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깊은 숲을 사람은 알지 못하고
明月來相照(명월래상조) 밝은 달만 와서 비춘다
2017.04.09 13:51
<이백행음도> 양이, 13세기 초반, 남송, 종이에 먹, 80.8*30.4cm,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달을 바라보는 이백의 모습을 그렸죠. 제가 진짜 한번에 뻑 간 작품입니다. 붓 한 획으로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니...ㅎㄷㄷ
2017.04.09 14:00
2017.04.09 14:08
2017.04.09 14:23
조춘도(早春圖), 곽희(郭熙), 북송, 1072년, 비단에 먹과 옅은 채색, 158.3*108.1cm, 대북고궁박물원 소장
2017.04.09 14:29
청만소사도(睛巒蕭寺圖), 이성(李成), 북송, 약 960년 경, 비단에 먹과 옅은 채색, 111.4*56cm, 캔자스시 넬슨 앳킨슨 미술 박물관 소장
2017.04.09 14:40
한시들 읊다가 전에 학교 다닐때 생각이 나서 그 때 즐겨 보던 산수화들 몇 편 올려봅니다. <청만소사도> 처음 봤을 때 저 그림의 마을로 직접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2017.04.09 20:34
오늘 내일이 바쁜 날이라 이제서야 듀게에 들어왔는데 댓글이 [17]로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Bigcat님이 올려주신 그림은 나중에 시간내서 차근차근 볼게요.
어느새 벚꽃이 피었더군요. 그래서 시 한 편~
고등학생 때 두시언해 배우면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매번 징징대나 지겨워하던 기억이 나네요.
두보의 시가 아니라 중세한국어를 배우라는 취지였겠지만 아무튼 두보 인상은 그때 다 구겼죠. ㅎㅎ 전쟁 중 늙은 몸에 바라는 것은 오직 약이고...이런 정서가 십대후반에 먹힐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너무나 와 닿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