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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를 보고 꼭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괴짜 여자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한증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인관계의 쓴 맛을 보고 좀 고립된 채로 성장해버린 20대 후반의 청년입니다. 그는 집에서 혼자 마늘 까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비자발적 괴짜입니다. 그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하는 것도 전부 학창시절에 사람들이 자신을 꺼리는 것 때문에 마음을 닫은 결과입니다. 그의 세계는 이 매정한 식구가 그나마 내준 다락방만큼이나 좁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그 세계를 넓혀나가기 시작합니다.


보면서 전소운 감독의 소공녀 생각도 났습니다. 약해보이지만 의외로 심지는 단단한 여자가 사람들을 만나며 다정을 뿌리고 다니는 이야기니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 춘희도 다친 마음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도 알고 작은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위태로워보이는 세계에서도 이런 여자들은 쉬이 꺾이지 않죠. 그 대신 그는 과거의 상처와 마주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움츠리고 있으니까요. 이 과정은 파블로 라라인의 스펜서와 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집안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만나는 여자의 이야기도 영화가 갖고 있거든요.


연애는 춘희에게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것이 그렇게 결정적이진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춘희의 정신적 자립에 장해물로 작용해서 춘희가 그걸 뛰어넘고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만들죠. 그가 자꾸 떠올리는 과거는 어떤 표현도 못한 채로 뚱하게 서글픔을 삼키기만 하던 어린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더 이상 응어리만 빚는 것을 그만하고 그걸 꺼내놓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집이란 공간과 인간의 관계, 가족으로부터 청년의 자립, 컴플렉스의 극복, 우울증 혹은 트라우마... 진지한 주제이지만 무겁게 그리진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고민이니까요. 영화는 간간히 웃기고 어쩔 때는 속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전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아주 친숙하고 낯익은 세계 안에서 채워집니다. 한해에 하나씩은 인상적인 독립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서 기쁘군요. 이 영화는 진짜 괜찮습니다. 다들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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