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보고 왔습니다 (스포)

2022.03.17 09:24

Sonny 조회 수:362

당연하게 스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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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란 히어로의 정체성은 기존의 걸작들로 이미 정의가 된 상황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 크리스트로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 잭 슈나이더의 슈퍼맨 대 배트맨입니다. (그리고 레고 배트맨 무비도 포함시켜야할까요? 히어로의 정체성을 메타적으로 제법 잘 파악하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이미 단 기간에 제법 많이 반복된 이 히어로를  또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동어반복을 피해가야할지 맷 리브스는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질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존의 시리즈와 다르게 배트맨은 싸우지 않고서 다수의 군중 속에 있고 그 군중은 그가 배트맨이라는 걸 뚜렷하게 파악합니다. 그 동안 배트맨들이 다수의 '악당'들과 싸우거나 어둠 속에서 깜짝 놀래키거나 메인 빌런과 일대일로 대치하는 상황을 제외하면 이런 설정은 꽤나 기이합니다. 배트맨은 원래 어둠 속에 숨어있어야 하는 존재이고 사람들은 그를 뜬소문처럼 여기잖아요. 도시괴담쯤으로 여겨져야 할 존재가 신비감을 벗어던지고 떡 하니 사람들의 눈 앞에 있습니다. 이 출발점부터 배트맨은 다른 존재로 정의됩니다.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긴 한데, 박쥐 가면을 쓰고 설치는 괴상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배트맨은 어떤 사람이 뒤집어 쓴 상징이 아니라, 상징 뒤에 숨은 개인이 더 도드라져보입니다. 배트맨으로 활동하는 저 사람은 분명히 '브루스 웨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의 나레이션을 통해 다시 한번 못을 박습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있으며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지 타인의 시선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역대 배트맨 영화 중 가장 브루스 웨인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이번 영화에서 배트맨은 기존 배트맨들처럼 해결사의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재력으로 얻은 신기술과 정보력을 동원해도 그는 고작 한명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존까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간의 절대에 가까운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들이 들어갔다면 이번 배트맨에서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는 증거를 수집해도 그걸 신기술로 척척 풀어나가는 장면이 많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정답을 도출해내는 게 굉장히 비상해보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브루스 웨인 본인의 사고능력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동시에 브루스 웨인이라는 개인의 영향력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사람들이 신기해하긴 하지만 그는 거의 유폐된 왕자, 히키코모리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브루스 웨인"은 이상할 정도로 혼자 다니고 그 어떤 일행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왕자 취급해주는 것과 달리 그는 창백한 얼굴을 가진 구경거리 도련님일 뿐입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놀란의 다크나이트와 대비됩니다. 크리스찬 베일의 미남형 얼굴, 탄탄한 근육질의 몸, 사회적 영향력과 자기과시 같은 것이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에게는 보이질 않습니다. 다크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 우아한 지배자라면 더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은 재벌 2세라는 지위만 있는 음울한 청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의 그 액션 씬들은 다 무엇인가하면, 오히려 그의 활약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재료입니다. 기존의 배트맨들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마키아벨리들과 맞서 싸워 세계를 구해내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맷 리브스의 배트맨은 정말로 동네 자경단의 느낌입니다. 그가 맨 처음 싸우는 갱단들은 할로윈을 틈타 가련한 아시안 남자를 린치하려는 동네 건달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때려잡는다고 도시의 치안이 좋아지거나 어떤 문화가 퍼지진 않을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그의 싸움은 좀스럽기까지 합니다. 박쥐 가면을 뒤집어쓰고 저런 잡범들을 두들겨팬다고 뭐가 좋아질까요. 브루스 웨인 역시도 그의 이런 한계를 계속 질문합니다. 그래서 그의 행위에는 결말 전까지는 별다른 영웅찬가가 없습니다. 그는 조직의 거대한 마약상인을 소탕하지도 못하고 부하들을 두들겨패지만 이들은 이내 멍든 얼굴로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는 리들러와 맞닥트리지도 못합니다. 브루스 웨인은 비루한 악인들과 뒤엉키는 비루한 괴인입니다. 영화에서 자꾸 그 행위에 몰두하는 브루스 웨인의 내면적 갈등을 조금만 더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드는군요.


특히 이번 배트맨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은 배트맨이 총을 피하려는 시도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전의 배트맨들은 그래도 총을 안맞으려는 노력은 하는데 비해 이 배트맨은 총을 든 다수의 인파 속에 떨어져 총탄에 공격받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이 설정이 흥미로운 건 그런 액션시퀀스 자체가 브루스 웨인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쏠 테면 쏴봐라, 하며 갑옷을 입은 것처럼 걷는 이 배트맨의 액션은 무모한 만용에 더 가까운 인상을 줍니다. 그는 싸우는 도중 자주 위기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배트맨은 악당들을 제압해내는 육체적, 기술적 초월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의 힘으로 겁쟁이인 자신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는 강박 상태에 더 가깝습니다. 아마도 브루스 웨인은 증명하고 싶었지 않을까요? 너희는 나를 총으로 못죽인다... 


이 전의 배트맨들이 자본은 힘이라는 명제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면 이번 배트맨은 꽤나 솔직하게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들여서 새로운 아이템을 갖추는 게 과연 이 나약한 인간에게 절대적인 무기가 될까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기술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백만장자인 부모가 잡범의 폭력에 허무하게 죽었는데, 그가 과연 자본의 힘을 그렇게 맹신하거나 의심없이 수단으로 쓸 수 있을까요. 이번 배트맨은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자본이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가 실질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절대적 힘일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우울함에 빠져 살았겠지만, 브루스 웨인은 자본이 있어서 훨씬 더 돈을 많이 들여서 우울해하고 있는 건지도요.


너무 길어지니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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