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5 12:17
힐라스와 님프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6년, 캔버스에 유채, 132.1/197.5cm, 맨체스터 아트 갤러리 소장
제가 바로 그런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그림 때문인데요. 한 눈에 보고 순간 뻑 가버린 거죠. (<물의 역사>라는 책이었죠.) 그래서 이 그림 하나 때문에 그냥 책을 사버린 일이 있습니다. 어찌나 아름답던지...님프들이요, 사실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신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얘들은 물귀신에 다름 아닌데, 이렇게 아름다운 물귀신들이라서 힐라스가 그냥 빨려들어갔다는 얘긴지...-_-;;
그래서 간만에 힐라스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이다.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받아 함께 아르고호 원정에 참여했다가 그의 미모에 반한 물의 님페들에게 유혹되어 연못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실은 제가 힐라스에 대해 아는 건 딱 이 정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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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스는 어머니인 님페 메노디케의 미모를 물려받아 대단히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와 힐라스의 아버지 테이오다마스 왕 사이에 황소를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헤라클레스가 사냥해 잡아먹은 황소가 실은 주인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헤라클레스가 테이오다마스 왕을 그만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헤라클레스는 이때 미소년 힐라스를 납치하였다. 힐라스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여 곁에 두려고 그런 것이다. 힐라스는 헤라클레스가 아르고호 원정에 참가하자 창잡이로 따라나서 원정을 함께 했다.
일설에 의하면 힐라스의 아버지는 테이오다마스가 아니라 헤라클레스라고 한다. 테이오다마스의 아내이던 님페 메노디케가 헤라클레스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들인데, 테이오다마스와 헤라클레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도 이 간통 사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버전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테이오다마스를 죽이고 친아들을 데려가 전사로 키운 것이 된다....
힐라스 [Hylas] - 왕자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98434&cid=58143&categoryId=5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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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네요...그리스 신화의 막장 스토리야 워낙 악명높은 것이라 새로울게 없긴 한데, 이건 뭐라...그러니까 힐라스가 실은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었군요! 영웅과 얽힌 미소년 스토리의 대명사겠거니 생각했더니만(그런데,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을 유괴했다니!...여기서 정말 처음 들었네요...둘이 좋아서 같이 다니는 줄 알았지...-_-;;) 숨겨진 출생의 비밀까지. 그러니까 이게 실은 이 스토리의 창작자가 여러 명이라서 생긴 일 같군요. 영웅의 대명사 헤라클레스 전승에 누군가 동성애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는데, 이에 분개한 누군가 '그게 아니거든! 그 두 사람은 실은 아버지와 아들이었어!' 하면서…그래도 나의 영웅이 게이인것 보다는 불륜을 저지른게 낫지! 하고 막장 스토리 첨가....생각해 보니 진짜 웃기…ㅎㅎ
실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분쟁이 이 이야기에만 있는게 아니고 제우스와 가니메데의 신화에도 있습니다. 제우스가 미소년 가니메데를 사랑하여 독수리로 변신 어쩌구(이하 생략...)하는 신화에도 당시 그리스 인들이 적지 않게 불편함을 표시했던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이에 대해 언급하길,
......대화편 『노모이』에서 제우스와 가니메데스의 신화가 크레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곳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남성들 간의 동성애를 제우스를 모범으로 내세워 합리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신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유는 성인 남성과 소년 간의 사랑(ephebophilia: 소년성애증)이 이 신화를 통해 종교적인 정당성을 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니메데스 [Ganymedes] - 신의 반열에 오른 인간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97654&cid=58143&categoryId=5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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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인가 실감이 나는군요. 고대 그리스 사회가 민주정이다 보니(물론 여성과 노예와 외국인 제외)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이 되었는데, 이에 연동하여 창작의 자유를 신앙이나 성의 자유의 영역까지 확대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듯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자(여성 제외)들은 자신들의 성정체성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말 부단한 노력을 했군요. 특히 가장 민감하다고 볼 수 있는 종교의 영역에서 신화와 미술과 같은 예술적 수단을 동원해 선전하고 공동체로부터 동의를 구해 나가는 과정은, 같은 시기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2018.04.15 12:42
2018.04.15 13:17
웹소설로 비유하니까 정말 감이 딱 오네요! 사실 비단 그리스 말고 다른 중근동 지역이나 이집트의 신화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쪽은 전제왕권이 일찍 확립되었고 그리스는 민주정 체제가 오래도록 지속되었죠. 이런 정치 체제의 문화 차이가 오늘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리스 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는데, 생각해 볼 수록 재밌네요.
2018.04.15 12:44
요정들이 위노나 라이더 느낌이
2018.04.15 13:20
2018.04.15 13:20
2018.04.15 15:46
저 윌리엄 워터하우스 그림 너무 좋아해요. 제 취향이거든요. 그런데 이 그림은 처음 보는데 매혹적이네요. "물의 역사" 자체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2018.04.15 17:05
2018.04.15 21:41
과거의 난잡한 짓들이 당대나 후대의 권력자에 의해서
미화되거나 신화화된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화랑이죠
한국 정치학회 부회장인
신복룡 교수님의 한국정치사론을 보면
화랑은 사실상 호스트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육사 생도에 대응되는 화랑이 정작 군역은 면제받았다는 것이나
남자가 색동치마를 입고 술과 춤을 즐겼다는 기록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화랑에 관한 설화들에 단겨있는 여러 동성애적인 표현들과
선덕, 진덕여왕 때 화랑들이 주로 여왕의 술시중과 잠자리 시중을 들었다는 기록을 볼 때
사실상 화랑은 호스트이고 동성애가 만연된 집단이었단 것을
박정희가 미화하여 신화화한 것이라고 설파했죠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의 당쟁이 일제에 의해 폄하될 정도로 폐해가 크지 않았고
실제로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당쟁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왕조시대로는 이례적으로 극히 적다는 사실이나
경주 첨성대가 천문 관측소가 아니라 재단이라는 사실
(관측소가 왜 산이나 성위가 아닌 어래쪽 저지에 세워졌겠습니까) 등을
최초로 밝힌 책입니다
2018.04.15 23:51
화랑에 대해서는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 학자들이 언급하신 것과 같은 견해를 발표한 바가 있죠. 물론 이에 대한 당시 민족주의 사학진영(대표적으로 박은식)이나 (해방 이후)한국사학계의 반응은 '일고할 가치도 없는, 한국사에 대한 조작 행위' 내지는 '추잡한 식민 사학의 날조 사례'로 단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이후 박정희 정권하에서 화랑은 신라의 상무 정신을 높이 기리는 무사집단으로, 필요 이상으로 격상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충무공과 함께 군사 정권을 미화하는) 말씀하신 사례(호스트)로 비유될 만큼 '그런 집단'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박노자 선생(한국사 - 신라사 전공,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은 화랑에 대한 이설은 신라를 비롯한 고대 한국 사회가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후대에 비해 훨씬 더 열린 사회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라는 평가를 내린바 있습니다. 저도 물론 박노자 선생과 같은 견해이구요.
2018.04.16 10:10
2018.04.16 12:40
2018.04.16 20:33
2018.04.16 20:34
2018.04.16 20:35
2018.04.16 20:35
2018.04.16 20:38
힐라스와 나이아드, 존 깁슨, 1827~36, 대리석, 테이트 브리튼 소장, 런던
조각은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보면 다르게 보이는 면이 많아서 새롭더군요. 특히 조명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 반전되는 것도 신기...
2018.04.16 20:41
2018.04.16 20:42
2018.04.16 20:47
힐라스, 헤르만 빌헬름 비센, 1846년, 대리석, 뉴욕 찰스버그 글리포트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전시될 때의 모습입니다. 조각은 실제 현장에 가서 볼 때 도판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지요.
마치 조회수/추천이 높은 쪽이 정본이 되는 거다! 이러는 온라인 소설 연재 사이트의 승부가 연상되네요. 그리스 신들의 위계는 그 신이 가장 인기 있는 도시의 흥망성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읽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쪽의 자유가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그토록 많이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