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를 읽고

2022.03.28 20:58

Kaffesaurus 조회 수:1026

조용한 새벽 시간이라 생각되지만 새소리니,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 봄이 되면 은근히 소리가 많은 5시 30분 산책. 그 산책를 하다보면 지나가는 집들이 있습니다. 영국식 타운하우스들인데, 꽤 오래전에 지어져서 오래된 정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정원들을 쭉 지나가면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건물들이 지어지던 때 우리 나라는 전쟁으로 잿더미였구나.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전자제품 파는 곳에 삼성이나 LG는 살짝 들어는 봤나 한국제품, 싸고, 일본제품보다 못하지만 쓸만은 해, 정도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삼성이 다른 일본 회사보다 더 이름이 있지만, 그건 그렇게 흥미롭다거나, 또는 그것이 제가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것에 어떤 플러스가 된다는 생각이 안들어요. 그런데 요 몇년 일어나고 있는 문화 상품으로서의 한국 붐은 좀 흥미롭군요. 지난 겨울에는 여기 지상파에 해당하는 한 채널에서 모범택시를 수입했고, 같은 채널에서 복면가왕 스웨덴 버전을 시작하는 군요. 저는 들어본 적 없는 데 핸리?? 라는 한국가수가 콘서트를 연다고. 어제 한국에 교환학생 가는 게 꿈이라는, 마마무 팬인 동료 딸이 말해주었어요. '우리 망했어요' 라는 시리즈의 한국인은 한국배우가 연기하고 저희 지역 신문에도 나온 파친코 시리즈 기사까지, 음 마치 80 90 년대 일본 붐을 보는 듯해요.


파친코는 500 페이지 넘는 책을 이번 주말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만큼 책이 쉬운 영어였고, 이야기 중심으로 돌아갔고, 사실 그렇게 끔찍한 이야기 도 없었어요. 문학적으로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언어도  없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The discomfort of evening 은 무척 좋았지만 다시는 읽지 않을 책입니다. 한 챕터 이상 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 책의 인물중 한명 노아가 좋아하는 영국 작가들, 고전 문학을 읽는 것과 비슷한 기분. 아마 여러 세대가 나와서 순간적으로는 Forsyte saga가 생각났어요. 다 읽고 나니 몇몇 생각이 남습니다. 책을 읽고 마치 책에 있던 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던 마냥 그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면 그만큼 책에 어떤 힘이 있었단 이야기 이겠죠. 저는 노아의 부모의 어쩔 수 없는 부모로서의 이기정 행동을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삭의 희생과 그의 '축복'.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물론 French dispatch의 외국인들이나 저와 파친코의 한국 일본인들이 같은 상황의 외국인이란 건 아닙니다.


영어로 된 책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TV 시리즈가 되었군요.

한국의 이야기가 (책, 영화, 음악, 엔터테이먼트) 하나의 보편적 이야기로 소비되는 게 흥미롭습니다. 얼마나 갈지 또 어떻게 발전될지 궁금하고요. 제가 어렸을 때 프랑스나 영국에 대해 동경을 가졌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면서 그 행동들이 그 이야기 속에 속하고 싶었던 갈망을 심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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