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7 12:28
retreat님 덕분에 님포매니악 vol2 보고 감사하는 마음에 후기를 간단히 올립니다.
볼륨 1에서 불감증에 걸린 조는 어떻게든 다시 감각을 찾기 위해 고분분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일단 제롬과의 사이에서 조는 아이가 생기고 어머니가 된 조는 스테이시 마틴에서 샤를로뜨 갱스부르로 배우가 바뀝니다.
갱스부르는 어머니가 됐음에도 자신의 욕망을 거두지 못하고 생판 모르는 불량배와 관계를 시도하기도 하고 SM 플레이도 하고 자극적인 행위를 쫒습니다.
볼륨1이 에피타이저였고 볼륨2가 메인디쉬라는 예고편이 있는데 성기 노출 빈도나 묘사 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소재나 묘사의 전복성에 비해 님포매니악의 주제가 그렇게 전복적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구심만 갖게한 볼륨2였습니다.
볼륨2에서 조는 가정을 버리고 섹스에 탐닉하는 자신에게 회의를 갖게 되고 섹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해 보지만 결국 자신은 님포매니악이고 욕망을 사랑한다고 선포합니다. 조가 가정을 버리고 아이를 돌보지 않은 것도 만약 조가 남자였다면 그렇게 비난받을 일도 아닌 흔한 일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에서 그렇게 진보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수차례 되풀이 되어온 말이잖아요. 남성 감독의 한계인가 생각도 들고 그간의 트리에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진부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레즈비언 관계의 묘사도 남성적인 시선에 발목잡힌 느낌이었구요.
차라리 님포매니악 2는 라스 폰 트리에의 마더 컴플렉스와 연결지어 봤을 때 더 재미있었습니다. 안티크라이스트의 한 장면이 영화에서 반복되는데 헨델의 Lascia ch'io pianga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가 아이를 홀로 방치한 채 남자를 찾는 장면입니다. 요람에 혼자 방치된 아이는 창 밖의 눈이 신기해 베란다 난간에 오르는데요.
안티 크라이스트에서는 결국 어머니의 욕망으로 죽음을 맞았던 아이가 님포매니악에서는 극적으로 구조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감독이 묘사한 자식을 죽인 악귀같은 어머니에 비해 장족의 발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의 아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데, 대신 조의 후계자로 P라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외향도 젊은 시절의 조와 닮았는데 참 이런 일관적인 취향의 매력적인 배우를 또 어디서 데려왔나 신기했습니다.
P는 조에게 딸과 같은 존재입니다. 조도 예전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P를 숲에 데려가 자연데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P는 예전 조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수치스러운 질환을 앓는 조를 위로해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P에게 아버지같은 존재이고 싶었던 조와 P의 앞에 제롬이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가 뒤틀립니다. 제롬과 P가 만나면서 조는 이제 과거 어머니 캐서린처럼 점점 변합니다. 그리고 P는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조를 무참히 모독합니다.
그리고 말로는 님포매니악이지만 스테이시 마틴에서 갱스부르로 배우가 교체되고 조는 불감증도 생기고 성기에 생긴 질환으로 제대로 된 성관계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가 갖는 관계는 SM같은 비정상적인 관계이거나 채무적인 관계이고 어쩔 때는 동정심에서 일환합니다. K는 조를 '파이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흔한 개의 이름이라는 큐레이터 분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결국 트리에 감독은 어머니 조가 제대로 섹스하도록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셀리그만이 조를 창녀 취급한 것도 저는 비슷한 일환으로 해석했습니다. 어머니의 욕망을 인정하고 용서하려는가 싶었던 트리에 감독은결국 끝까지 그녀를 용서치 못한 것 같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음악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늙은 어머니를 죽이러간다는 가사의 hey Joe 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라스 폰 트리에는 내면은 미성숙한 어린 아이인 반면 몸체는 거대한 거장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이게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하는 예술가들이 있는 반면 미숙해지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숙한게 꼭 매력이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보고있기가 불안해질 뿐이지요.
압구정 CGV에서 마침 영화 끝나고 토크가 있어서 끝까지 들었는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질문도 많이 나왔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궁금증을 갖은 부분을 나누면서 영화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볼 수도 있어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양도해주신 retreat님께 다시 감사 드립니다.
2014.07.07 12:44
2014.07.07 12:51
볼륨1이 정말 강렬해서. 무언가에 애타게 구원을 바라다가 그 구원이 완전히 허망하게 무너지는 그런 지옥을 종종 생각해 와서 1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거든요. 볼륨2는 자극적인 장면이 많아도 그런 한 방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2014.07.07 12:46
2014.07.07 12:52
결말 장면 저도 정말 좋았어요. 예상치 못한 토크 시간도 있고 덕분에 좋은 관람했습니다 retreat님.^^
2014.07.07 12:51
2014.07.07 12:54
젠더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아니면 표방하려다 실패한 것 같기도 하구요.
조와 셀리그먼이 만드는 삐그덕거리면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불멸화음 같은 흐름 저도 참 감탄했어요.
2014.07.07 13:33
라스 폰 트리에 작품은 아트하우스 영화라기보다는 생경한 시청각 경험을 주는 영화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 브레이킹더웨이브,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등이 그런 느낌을 받은 영화들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아트 블록버스터 같다고나 할까요. 한 가지 컨셉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지독하게 인공적인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걸 또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죠. '상황'은 있지만, 그 상황 하에서.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 교류나 충돌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상황이 인물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게 폰 트리에 내러티브의 특징인 거 같습니다. 개인의 의지 따위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그런데 님포매니악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캐릭터 자체를 다뤄보려 했던 거 같습니다. 그것이 메타포로 영화 전체를 통제하는 그의 기존 작법 관행과 충돌했기 때문에 뭔가 애매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군요.
2014.07.07 13:38
저도 2편보다 1편이 재밌었어요. 조가 샬롯 갱스부르로 바뀌고 부터는 뭔가 이야기에 생기가 사라진 느낌이어서 좀 아쉬웠어요.
2014.07.07 14:03
P역의 미아 고스는 샤이아 라보프의 실제 여친인 것 같더군요. 감독의 개인사나 구체적인 은유에 대해 굳이 생각을 안하고 보면, 결핍을 갖고 자란 사람이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어떤 중독에 빠지고 삶의 고통을 겪는 과정을 그렸다 라고 간단하고 보편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을거 같아요. 하지만 다른 중독도 아닌 '색정증'은 한 여성의 삶에 좀 더 내밀하고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관객들이 긴 영화를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강력한 소재이기도 한 것 같구요. 사실 색정증이 아니고서야 누가 5시간에 가까운 장황한 한 사람의 인생 얘기를 열심히 보러 가나 싶기도 하거든요. 1보다 2는 힘이 좀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2014.07.07 18:03
개인적인 견해로는 마지막까지 어머니의 욕망을 용납치 않는 것은 라스폰트리에가 미성숙해서 욕망을 허하지 않는 게 아니라 허하지 않는 현상을 보여준 건 아닐까 싶어요.
저도 1이 더 좋았고 2가 좀 진부하단 느낌도 받았어요. 근데 그 진부함이 문학적이란 생각도 들었는데...1만큼 재밌진 않았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 하면 저도 악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