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0 16:05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친한 지인들이 어울리는 자리였고, 그 중 한 명이 제 몸에 관해 불쾌한 농담을 했어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제 얼굴은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동행한 자리였는데, 자리를 파하고 뒤늦게서야 '너는 왜 침묵하고 있었지?'란 의문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이에 관해 꽤 오래 이야기하였습니다. 가족은 제 지적에 다소 부끄러워 했어요. 그리고 내 불편한 기색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군요. 하지만 아니에요. 그건 아니었어요. 그 농담이후로도 그이는 주절주절 불쾌한 소리를 이어나갔고, 나뿐 아니라 일행은 잠시 어색한 침묵 속에 있었으니까요. 적어도 맞장구치기는 힘든 불편한 말이고 분위기라는 것을 다들 인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침묵하고 있었던 건데? 무슨 남성연대같은 것이냐고 규정한다면 이건 또 과도하지 않은가도 싶은데, 그럼 과연 우리는 왜 조용했던 것일까요?
불쾌한 농담을 하던 이와의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애초 망가져가던 사람이어서 우리는 그와의 대화 가능성에 회의적이기도 했구요. 몇 해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들어버릇하던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서서히 그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고립되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불쾌한 농담의 당사자가 자신이건 곁에 있는 사람이건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당사자가 자신일 경우, 예전보다는 대처에 요령이 꽤 생겼습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 한 무리 안에서의 일이라면 이 나이먹고도 아직은 대처가 서툰 것 같습니다.
역으로, 상대에게서 제 발화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저역시 그 말에 불편했지만, 그에 앞서 제 말의 무엇이 상대에게 불편했는지 또 오래도록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좀더 길게 대화나눌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제 발화의 의도치않은 의미에서 불러일으켜진 그 불편의 내용을 좀더 상세히 알았으면 했거든요. 순발력있게 상대의 허를 때리는 농담은 기실 제 적성과 능력이 아닙니다. 무대 비슷한 것에 서면 벌벌 떠는 사람인 걸요. 하지만 침묵한 채로 귀가해서야 뒤늦게 가슴을 치는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명하고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면 좋겠지만 그걸 못한다고 해서 흉은 아니죠. 대신 정확한 순간에 정확하게 표현해보려고 노력하기로 합니다. 당신에게 살을 날리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고자 한다는 제스쳐를 유지하면서요.
윌 스미스의 주먹을 옹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수호되려면 역시 다른 목소리들도 있어야 겠지요. 침묵은 옵션이 아닙니다.
록산 게이의 칼럼 공유합니다. 요즘 무대 코미디 보는 것에 맛을 들여서 희극인들의 대단함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는데요, 크리스 락때문에 좀 짜게 식었..ㅜ
https://www.nytimes.com/2022/03/29/opinion/culture/will-smith-oscars-roxane-gay.html?fbclid=IwAR30Jdv4LbuMaBirePQyh0zOLz1nYMPU2MFNAxtYpnAq1LpQ4RWeBJ1P5pM
2022.03.30 16:07
2022.03.30 16:19
말할까 말까 할 때는 그래도 말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근데 제3자가 연루되는 경우는 좀 어렵더라고요.
2022.03.30 16:1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의 행동이 옳으니 그르니에 대해선 의견제출을 일단 보류하고...
"처음 농담이 나올 땐 다른 사람과 같이 웃더니 왜 나중에야 나와서 주먹질하고 ㅈㄹ이냐? 미친놈 아니냐?" 이런 비난을 하는 자들에 대해선 똥바가지를 퍼붓고 싶어지더군요.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법이죠. 처음엔 다른 사람을 따라서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도 가만히 생각하니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행동하면 당연히 그 반응이 진짜라고 할 수밖에 없는건데
2022.03.30 16:18
저도 그런 측면에선 과한 리액션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2022.03.30 16:33
그걸 정신병이다, 성격장애다라고 표현하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냥 처음엔 웃고 넘어가려다가 뒤늦게 아차!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나봐요. 물론 그걸 만회하려다가 더 큰 실수를 한 것이 문제지만
2022.03.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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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0 16:28
본문을 읽으면서 윌 스미스를 연상했는데, 역시 언급되는 군요.
그 행위가 서로 약속된 퍼모먼스였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겠죠.
저도 불편한 경우를 가끔씩 겪게 되는데,
그때 마다, '아 진짜 옛날 같았으면 넌 죽었다,,'생각하면서 슬쩍 웃기도 합니다.(자조석인)
2022.03.30 16:39
2022.03.30 16:48
지적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요. 결국 그렇게 에너지를 쏟을 정도로 상대에게 애정이 있으며, 상대가 그래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이다라는 두가지 전제가 성립됐을 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때로는 조용히 넘어가고 서서히 멀어지는 것도 나를 위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2022.03.30 16:57
2022.03.30 17:17
덕분에 매우 매우 오래된 경험이 떠 오릅니다.
서울에서 대학동문친구가 그 모대학 앞에 개업한 주점이 있어 역시 동문이었던 측근과 자주 놀러 갔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주점에는 종종 연락도 없이 우연히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동문들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거기에서 그 동문을 수년만에 우연히 만났는데 우리 모두를 잘 알고 꽤 친했던 동문이었어요. 그도 부인과 함께 왔고 역시 서로 잘 알고 친한 사이.
당시 측근은 지병이 있었고 그 동문이 못 보던 동안 다소 악화된 편이었죠.
측근이 몸이 안좋아 두어해 정도 쉬다가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좀 빡세게 지내던 중이었거든요.
“아니 너 얼굴이 왜 그러니? 아이고…”.
그는 당연히 측근의 지병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다시 웃으며 병과 요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줬죠.
그런데 자리에 마주 앉아 5분동안 쉬지 않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을 합니다. 그는 조금 취해 있었어요.
“아니 얼굴이 너무…얼굴이 너무… 그렇게 이뻤던 애가….”
안그래도 지병으로 인해 얼굴에 생긴 변화 때문에 당시 측근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간혹 대인기피증이 나타날 정도였구요.
그는 나보다 두살 많은 복학생이었고 졸업은 나보다 늦게 했지만 깍듯이 그동안 내내 선배 대접해드렸는데…
측근은 얼굴이 굳었지만 그래도 걱정해서 그러는거라 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였어요.
반복되는 그의 술주정에 결국 나는 정색을 하고 큰 소리로 제지를 했습니다.
“그만 하세요…..(계속 궁시렁 궁시렁…”그만”…궁시렁 궁시렁….)….. 그만 하라고! 이 새끼야!”
아직도 그의 멍한 눈 동자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역시나 피해자 코스프레가 나옵니다.
“니가 뭐라 뭐라 걱정을 한답시고 말을 안해도 이미 당사자가 더 괴롭고 힘들어 그러니까 닥치라고!”
그리고 끝. 자리 털고 나와버렸고 그 뒤로 인연 끊고 죽 안보고 있습니다.
그는 농담이 아니었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태도와 목소리였죠.
그냥 외모에 대해서도 문제지만 아픈 사람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당사자 ‘면전’에서 하는건, 특히 부정적인 말은 그게 농담이던 진담이던 걱정이건 뭐건 아가리를 닥처야 하는게 매너입니다.
진심으로 걱정하여 그런 소리를 했던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끝냈지만 만약 농담으로 했다면 순간 이성을 잃었을거 같아요.
그래서 난 스미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이해만 합니다. 그의 싸다구질에 동의하지는 못해요.
나도 그런 상황에서 싸다구질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을 동의 하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싸다구이긴 합니다.
아픈 외모를 갖고 농담 따먹기 하는건 적어도 생중계중인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자리에서도 사회자가 싸다구를 맞을 수 있는 말이라는 각인 효과는 만들어 졌으니까요.
물론 아카데미 측에서는 하필 그게 자기들 시상식에서 벌어진 일이라 속이 쓰리고 스미스에게 소송을 걸 수 있다고 보고
스미스가 사과도 하고 반성도 하고 책임도 져야 하지만
이렇게 각인된 효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건 그래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2022.03.30 17:46
2022.03.30 18:21
2022.03.30 18:42
제가 길게 개인적 경험을 늘어 놓은 이유는….
나와 가족을 불편하게 만든 상대가 문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고려보다 그 불편함을 나와 가족만이 겪게 강제하는 사회절 관계망 혹은 관성을 깨야만 그 불편함을 중지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센스 있고 현명한 대처로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은 생각보다 매우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센스 있고 현명한 대처에도 결국 누구 하나는 불편하고 어색해지게 되어 있어요. 나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무례를 범한 상대 포함)의 불편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심리적 저항이 센스 있고 현명한 대처에 대한 강박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런 상황에선 “모두다 유쾌하고 즐거둔 해피엔딩은 존재할 수 없다”를 알아야 합니다. 결국 선택은 나와 가족만 불쾌감을 안고 물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냐 아니면 모두 다 같이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 것이냐의 문제아는 거지요. 당연히 스미스의 행동은 너무 나가서 필요 이상의 강도로 필요 이상의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스러운 불쾌감을 안겨줬습니다. 잘못된 행동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의 사정을 이해함과 동시에 폭력이 배제된 다른 세련된 어떤 대응이 있을까? 모두다 불편하게 만들면서 (이게 중요합니다. 어찌되었던 평화를 깨야만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나쁜 짓을 한것이다”를 잘 전달할 방법은 뭐가 있었을까요? 없다고 단언합니다.
아마 스미스가 곧 이어질 자신의 수상후 코멘트 시간을 갖게 될때까지 참고 그 못난 발언을 한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조목 조목 지적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 어필했다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모두 불편함은 없고 못난 발언을 한 사회자는 헤헤 오마이갓~~쏘 쏘리~거리고 비스듬히 서 있고 그렇게 끝났겠죠.
복수는 허망한 것입니다. 폭력이 수반되는 복수는 공허합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은 개인의 몫이죠. 우리같은 제3자에게는 그 폭력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불편함’이 남는군요. 그런 의미입니다. 이 정도의 불편함을 만들어낼 세련되고 현명한 방법이란 없습니다. 그게 문제죠. 그게… 그리고 그런 불편함은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권장할 수도 없습니다. 권장 되어서도 안되고.
2022.03.30 18:58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합니다. 사안은 다르지만 장애인 시위에 대한 다수 온라인 커뮤들의 부정적 반응에서 비겁, 뻔뻔함을 느끼니까요. 이런 불편과 민폐를 초래하니까 그렇지, 시민사회의 규범 아래 자기요구를 하면 누가 뭐래? 식의. 이럴때만 잽싸게 시민으로 편입. 그 권리를 누릴 제반시설이 뭐가 얼마나 있었다고.
분위기를 맞추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몰라도 저는 불편한 사자후가 편치 않습니다. 좀 소심하기도 하고요. 얼마전 식당에서 두 아저씨가 반주를 곁들이며 좀 큰 소리로 떠들더군요. 일행과 저는 좀 시끄럽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의 혼자 오신 여성분이 좀 조용히 해달라고 근엄하게 요청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스웩... 그리고 그 테이블의 아저씨들은 군말없이 죄송합니다 하곤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갔네요.
2022.03.30 18:58
맥락이 좀 다른 얘깁니다만.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을 때, 그 중에 많이 친근감 표하던 학생들이 '솔직히 쌤은 다 좋은데 평소 화법이 좀 압박스러워서 상처 받을 때가 있다'라는 얘길 해서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다음 해엔 신경을 많이 썼... 는데 또 연말에 비슷한 얘길 들었죠. 그래서 더 신경 쓰고 더 신경 쓰고... 하다가 결국 그런 말을 더 안 듣게 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리더군요.
솔직히 직장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받은 지적이었으니 고치려고 노력했지 그냥 친구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음 웃어 넘기고 신경 안 썼겠죠. 사실 고치려고 노력하는 그 와중에도 저 자신은 제 화법에 문제가 있단 생각도 안 했거든요. '그냥 상대방이 그렇다니 고쳐보자'라는 거였는데. 시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냥 제가 잘못 했던 게 맞았을 거에요. 그걸 스스로 느끼기도 힘들고, 지적을 받아도 받아들이고 고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구나... 라는 생각을 요즘에 합니다.
2022.03.30 19:15
우와 훌륭하십니다! '나는 문제없다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그렇다니 고쳐보자'는 마음먹기는 어려운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가족과 농담의 톤을 맞추는 게 어려웠습니다. 사회적 자아를 벗어던진 자연인(?)으로서의 저는 굉장히 냉소적이고 짓궃고 나 자신도 까고 너도 까내리고 뭐 이런 식인데 가족이 초반에는 영 적응을 못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도 꽤 신경을 쓰고 조심하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노력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은 괜찮댑니다. 서로 맞춰간 결과겠지요. 본인도 나를 충분히 갈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나요.
하여간 위계가 성립되는 관계에서의 상대의 말은 일단은 생각해 보는 게 좋은것 같아요.
2022.03.30 19:22
대학 시절 많이 가깝게 지냈던 동아리 선배들 농담 스타일이 좀 그랬거든요. 냉소적인 톤으로 짓궂게, 직설적으로 던지는 스타일... 이었는데 전 그냥 '그런 분들과 어울렸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저도 그런 스타일이 되어 있었나 보더라구요.
맞아요. 위계 관계란 게 참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이나 선배들 만나면 옛날 스타일로 드립 치며 잘 놉니다만. 출근하면 기어를 바꿔 넣고... ㅋㅋㅋ 그리고 또 그런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재밌는 드립이랍시고 맘껏 시전해서 30명 웃기고 1명 빡치게 할 거라면 그냥 재미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거. 하지만 직업상 어느 정도의 드립은 또 필요한지라 언제나 매일매일 모두에게 무해한 개그를 연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2022.03.30 22:38
많은 생각이 드는군요. 모욕에 곧바로, 당사자로서, 정확하게 반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노리님의 일화나 크리스 락 사태가 좀 감정적으로 다가오긴 했습니다.
2022.03.31 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