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이 해결하는 것

2022.03.30 20:47

Sonny 조회 수:549

1-TKw-IUyc-AMgqy0ce-A4g-S2-U.jpg


미국의 파워레인저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습니다. 무조건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해야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전부 다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꼭 비백인 인종을 참여시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굉장히 시끄러워질 겁니다. 미국은 단지 백인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흑인과 아시안들도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파워레인저가 이렇게 철저히 지키는 수칙을 왜 2010년대를 휩쓴 마블 영화는 뒤늦게서야 땜빵하듯이 지켰는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정치적 올바름입니다. 으랏차님과 해삼너구리님의 지적에 따르면 한계가 있는 표면적 올바름이긴 하지만요. 백인남성만 캐스팅하는 것은 다른 인종과 성별의 개개인을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전제 하에 일부러 캐스팅을 이런 식으로 합니다. 취향의 문제로만 가면 얼마든지 백인 남성만 파워레인저로 캐스팅할 수 있습니다. 변명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요. '우린 백인 남성들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인종이나 성별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 눈에는 백인 남성들이 쫄쫄이를 입고 싸우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이 전제에서 비롯되는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어쩔 수 없이 백인/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진 미국 사회에서 다른 인종과 성별이 그나마 덜 소외당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를 더 확장시키고 소외당하던 사람들을 기존 사회로 더 편입시킵니다. 결국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는 백인이고, 나머지 인종들에게는 한 자리씩 나눠준 것 같은 느낌이 강해서 완벽한 올바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어린 시절 티비에 나오는 히어로들을 보며 자신을 이입시키는 아이들에게 인종이나 성별의 동질함은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오죽하면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왔죠. "난 스파이더맨이 흑인일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이 멋있고 강력하다는 신호를 대중매체로부터 받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프라이드로 작동합니다. 완성도는 개판이지만 그럼에도 상치를 보면서 미국 내 아시안 키드들은 분명히 뿌듯해졌을 것입니다. 파랑눈과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만 어벤져스에 낄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이 마블에 우리의 자리도 있구나 하고.


정치적 올바름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누구도 함부로 소외당하지 않게끔, 누군가의 약자성과 소수자성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누구에게 괜한 금기를 안겨서 불편하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제까지 관행처럼 여겨지던 차별과 폭력을 멈추고 쉽게 놀림거리로 여겨지거나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그런 사람들을 동등하게 여기자는 것입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성의 확장이며 훨씬 더 큰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아마 저 파워레인저를 보면서 백인들 동네에서 살던 백인 남자애들은 파워레인저 놀이를 하기 위해 동양인 아이와 흑인 아이를 찾아서 팀을 꾸리고 싶어할지도 모르죠.


---


아무도 주장한 적 없는 피씨만능주의를 혼자 비약하고 반박하는 예상수님을 보면 좀 황당하면서도 그렇게 할 말이 없나 싶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별 다른 게 아니고, 그냥 누군가의 사회적 약자성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 게 어디있냐고요? 당장 이 게시판에서도 '조선족들'이라며 누군가의 국적 혹은 인종을 비웃는 글들을 바로 며칠전에 누가 씁니다. 정치적 올바름이 부재해서 모욕이 횡행하는 상황은 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예상수님의 태도를 적용해보죠. '누군 틀릴 수도 있으니 틀리게 놔두자'는 그 태도 말입니다. 그럼 게시판에는 '조선족 비하는 당연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예상수님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지 않을거라 주장하시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본인 생각대로 편리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인 펨코를 보세요. 혹은 디씨를 보세요.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가운데 타인의 약자성을 공격하는 글들은 아예 유행이 되고 일상이 됩니다. 누굴 좀 틀리다고 놔두면 안되겠냐고요. 지금 세상은 그런 관용에 의해 개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굉장히 정확하게 모욕을 당합니다. 


어줍짢은 정신분석을 저에게 들이밀기 전에 "관계"를 끝없이 강조하는 예상수님 본인의 상태를 자문해보길 바랍니다. 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이 정도 비판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그 고정된 세계관을 버리지 않는한 본인이 떠드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되긴 힘들 겁니다.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합니다.


"먼저, 저는 지난 몇년 간 백인 온건주의자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했다는 걸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유감스럽게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유를 향해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던 흑인들을 방해하는 것은 백인 시민들의 의회도, KKK단도 아닙니다. 바로 정의보다 "질서"에 더욱 심려를 기울이고, 정의가 실재하는 긍정적 평화보다 긍정적 평화의 긴장이 부재한 부정적 평화를 선호하는, 백인 온건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계속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동의하나, 즉각적 행동으로 옮기려는 그 수단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어버이가 타이르듯, 다른 이의 자유를 위한 계획표를 직접 짜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때가 오리라는 신화 같은 개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흑인에게 "더 용이한 때"를 기다리라며 흑인들을 가르치려합니다. 선의를 가진 이들의 텅빈 이해는 악의를 가진 이들의 확고한 오해보다 더 절망적입니다. 미적지근한 관용은 노골적인 거부보다 더 혼란스럽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510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46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898
119820 무릎팍 주진모, 신정환, 만들어진 신, 강아지 자랑.. [6] being 2010.09.09 5091
119819 기대되는 한국의 초저예산 SF 영화 <불청객>! [5] crumley 2010.09.09 2822
119818 "사람들은 왜 자기가 볼품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광고하고 다닐까?" [52] soboo 2010.09.09 6757
119817 청년 시절 일했던 직장 얘기. [9] 01410 2010.09.09 5617
119816 괜시리 생각난 볼품있는 명품족 한명. [30] philtrum 2010.09.09 8612
119815 초바낭. 어른들 말 들어 정말 나쁠 것 하나 없나요? [21] Maleta 2010.09.09 3500
119814 싫어하는 소재 [10] 스루패스 2010.09.09 3247
119813 광화문 세종대왕 상... [14] 셜록 2010.09.09 4098
119812 레이디 가가의 동물의 소중함 알리기(혐짤) [8] r2d2 2010.09.09 3490
119811 아침에 바낭] 녹차맛 아이스크림들 + 이틀연속 커플들과 노는는 꿈 [5] 가라 2010.09.09 2800
119810 Let the right one in 읽다가 영어질문! [2] dlraud 2010.09.09 1837
119809 [bap] '궁, 발레랑 노닐다', 운현궁 / 뮤지컬로 떠나는 세계여행 [2] bap 2010.09.09 2027
119808 [듀Nine] "소재"는 일본어 vs "재료"는 한국어? [5] 골퍼 2010.09.09 2393
119807 명품 소비를 천박하게 보는건 기본적으로 다른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산다는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요 [22] 폴라포 2010.09.09 3254
119806 여러 가지... [18] DJUNA 2010.09.09 3739
119805 시사회 양도(완료) [3] 거울에비친 2010.09.09 1536
119804 미수다를 보며,잡담들 메피스토 2010.09.09 1643
119803 [듀나in] HOTMAIL 계정 해지방법?! [4] kiwiphobic 2010.09.09 5099
119802 주진모 잘 생겼.... [13] 비밀의 청춘 2010.09.09 4448
119801 생애 처음으로 MRI를 찍었어요. [5] 흔들리는 갈대 2010.09.09 270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