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4 14:09
코로나 확진이라는 합법적 감금 상황이 오면 누구라도 끼니 걱정을 하게 됩니다. 저는 천만 다행으로 그 전에 햇반 잡곡밥을 시켜놓아서 유일하게 남은 걱정은 반찬이었는데,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부랴부랴 밑반찬과 미역국과 장조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덕에 음식들을 유통기한 내에 해치워야 하는 과제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자비없이 세끼 연속 미역국과 장조림을 먹었는데도 나중에는 상할 태세더라구요. 물에 빠진 고기는 참 쉽게 상합니다... 어찌됐든 저는 코로나 감금기간을 나름 집밥으로 따숩게 잘 보낸 편입니다.
후식용으로 두번 배달시킨 와플을 제외하면, 끼니를 위해서는 딱 두번 배달음식을 시켜먹었습니다. 한 번은 샌더스 대령님의 닭집에서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등등, 또 한번은 얼큰한 국물이 너무 땡겨서 동네 중국집에서 차돌박이 짬뽕을 시켜먹었습니다. 햄버거는 그럭저럭 먹을만 했는데 짬뽕을 시키면서는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배달음식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배달음식을 즐기시는 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만의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특히 한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원래도 국물에 말아놓은 밥은 사진으로 찍으면 그렇게 이쁘게 나오지 않지만, 배달음식 어플에 있는 리뷰 사진들은 그 역함(?)이 더 하더군요. 먹고 나면 맛있는 것과 별개로 이상하게 불쾌합니다.
왜 배달음식에 이렇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플라스틱 식기 때문인 듯 합니다. 사기 그릇에 비해 단순한 미감이 좋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플라스틱 식기에 담긴 그 합목적성이 식욕을 떨어트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먹을 음식을 담는 것보다 음식을 배달하는 것과 폐기하는 목적에 더 크게 치우쳐진 디자인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플라스틱 식기에 담긴 음식을 받으면 맛있게 드세요, 라기보다는 메뉴 주문을 처리했다, 는 느낌이 듭니다. 배달음식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맛있는 걸 주셔서 감사합니다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감정이 거의 휘발되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동네 음식점들이라고 대단한 정성과 친절을 마련해놓는 건 아니지만, 배달음식의 경우 제가 아주 짧게라도 맞닥트리는 사람은 요리한 사람이 아니라 배달하는 사람이니까요.
배달 자체에 대한 고객으로서의 목적도 상기하게 됩니다. 이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시켰다기보다는 나가기도 귀찮고 해먹기는 더 귀찮아서 배달음식을 시켰다는, 제 편의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저에게 배달음식은 먹고 싶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요리하기싫음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시켜먹는 음식들도 제가 아주 먹고 싶은 것들도 아닙니다. 요새는 뭔가 딱 먹고 싶은 게 크게 없고 오히려 뭘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아요. 그래서인지 한식 혹은 국물류의 배달음식이 저에게 오면 받자마자 제 식욕을 회의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정말 이게 먹고 싶긴 했던건가... 집에 있는 그릇에 음식을 옮기면서도 어쩐지 음식 같지 않다는 그 사치스러운 불만이 사라지질 않죠.
그에 반해 치킨이나 피자는 그런 거부감이 훨씬 덜합니다. 아마 종이박스로 포장된 부분이 플라스틱보다 뭔가 친환경적으로 느껴져서 그런지... 사실 버리는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목적도 똑같은데 아마 그런 음식들은 제가 사기그릇에 담겨져 내오는 것보다 애초부터 종이상자에 담겨져서 오는 걸 더 많이 먹었기 때문이겠죠. 결국 익숙함의 차이에서 오는 변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으로 치킨 같은 경우 저는 호프집이나 다른 곳에서 접시에 내어져 오는 걸 더 맛없게 먹은 경우가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이고, 아마 배달음식을 다른 이유로 즐기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치스럽거나 해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군요. 새삼 음식을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도의 문명적 혼합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미슐랭에 가서 보통 음식의 네배, 다섯배의 만족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만... 저는 햇반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것도 그대로 돌려서 잘 먹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의 이미지가 간편함을 위해 디자인된 용기를 무시하게 하는 건지...
2022.03.24 14:24
2022.03.24 17:15
2022.03.24 14:28
2022.03.24 17:16
2022.03.24 15:16
예전의 '그릇 찾으러 왔습니다'라는 외침이 그리워집니다. 앞으로 배달 음식 의존도는 더 커질 건데 그릇도 재활용이나 회수하는 좋은 방법이 나오면 좋겠어요. 또 비용문제는 생기겠지만요.
뜨거운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바로 담으면 안 좋다는 말 한참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말도 안 하네요. 어느 정도 선에서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참 애매합니다.
2022.03.24 17:16
2022.03.24 15:23
배달 앱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전화로 주문하고 식당 직원이 배달해주는 동네 중국집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릇(그래봤자 플라스틱이긴 매한가지지만)에 담아서 주고 회수해갔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이후로는 그런 집이 거의 없어진 듯 합니다.
제가 음식 배달을 이용하는 것은 일년에 한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인데, 그렇다고 매끼를 해먹는 것도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미리 계획된 경우에는 통을 들고 가서 포장을 해옵니다. 냄비나 밀폐용기 들고 가서 국을 받아오면 판매하는 쪽에서도 반가워 하면서 넉넉히 담아주시더라고요. ㅎㅎ
2022.03.24 16:33
2022.03.24 22:46
넵 밀키트는 써본 적 없네요. 밀키트 메뉴들 보면 그냥도 만들기 어렵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서 굳이 안 사게 되더라고요.
2022.03.24 17:18
2022.03.24 17:14
2022.03.24 17:19
2022.03.24 18:29
2022.03.25 19:45
확실히 빨간 국물은 예쁜 용기에 잘 담아내지 않으면 보기에 좋지 않죠. 한국계 쉐프 데이빗 창의 넷플릭스 시리즈 이름이 Ugly Delicious인데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저는 여러가지 이유로 식사의 절반 이상을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배달 플라스틱 용기 틈마다 묻은 빨간 기름기를 닦아낼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진 않아요. 이유가 있겠지만 용기 바닥은 왜 이렇게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건지. 건강상으로는 절대 안전해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일회용 비닐에 넣어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는 게 더 좋더라고요. 아예 레토르트처럼 팩 포장을 해서 비조리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분명히 할 일이 훨씬 많음에도 이쪽이 깔끔해서 좋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걸 다 떠나서 국물음식은 확실히 식당에서 뚝배기나 냄비에 담긴 채로 먹는 편이 훨씬 맛있어요 ㅎㅎ 짬뽕 같이 면 음식은 더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