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2 09:12
- 2021년작이에요. 런닝타임은 1시간 46분. 스포일러는 거의 없을 겁니다.
(제목 뜻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포스터입니다. 그냥 '영하'란 뜻인가봐요.)
- 처음엔 전형적인 '뭔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결말 떡밥이겠군?' 싶은 장면이 짧게 파파팍 지나가구요.
다음엔 근무지를 옮긴 경찰 아저씨가 나옵니다. 첫 업무는 범죄자 호송. 처음 만난 성격 안 맞아 보이는 파트너와 짝을 이뤄 한밤중에 낯선 길을 달리며 각양각색 범죄자들을 이 교도소에서 저 교도소로 옮겨야 하는데, 깊고 깊은 숲 속에서 갑자기 앞서 가던 호위차량이 사라져버리고. 멀리에서 총알이 날아들고. 홀로 범죄자들과 호송차에 남아 의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자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전혀 주인공처럼 안 생겨서 좋았던 주인공님. 심지 굳고 사명감 투철하지만 매우 현실적 능력치만 갖춘 게 매력(?) 포인트구요.)
- 전개 속도가 빠른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이 호송차를 몰고 출발하기까지 상당히 시간을 들여서 호송차 속 범죄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플래시백 이런 거 없이 그냥 감옥에서 나와 신체 검사 받고 차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며 캐릭터를 잡아 주죠.
왜 그랬는가... 는 이후의 전개를 보면 납득이 갑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거의 호송차 안으로 한정되고 특히 범죄자들은 거의 막판까지 차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데, 그동안 주인공과 범죄자들의 관계가 계속 요동을 쳐요. 외부의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그에 따라 주인공은 이들과 손을 잡았다가 제압했다가 제압을 당했다가... 등등 계속해서 이러저리 관계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 포인트이자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된 부분이었네요. 처음에 그렇게 캐릭터를 대략이라도 잡아 주지 않았으면 재미가 덜 했겠죠.
(주인공 못지 않게 평범한 인상의 범죄자 군단. 그래도 보다 보면 몇 놈은 정 듭니다. ㅋㅋ)
- 딱 봐도 굉장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호송차 한 대와 자동차 두 대 정도가 영화 속 재산 목록의 90%이고 클라이막스 전까진 여기서 거의 벗어나질 않아요. 스토리상 외부의 도움도 없기 때문에 배우들도 몇 안 되고. 배경도 그냥 산길, 호수, 텅 빈 마을의 빈 집 두어채 정도로 끝이네요. 이렇게 한정된 공간과 소품(?)들 속에서 '생각보다 다양하게' 계속해서 상황을 바꾸고 그에 따른 소소한 액션과 관계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뽑아내는 게 영화의 포인트입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그냥 막 재밌다기 보다, 아이고 안 좋은 살림에 머리 잘 썼네! 라는 재미가 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로 이런 관계지만 상황따라 이 중 몇명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풀었다 하고 그럽니다.)
- 그렇게 나름 쏠쏠한 재미를 즐기며 '괜찮네'라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클라이막스인데요.
이 부분은 좀 호불호가 갈릴... 아니, 그냥 아쉬운 느낌이 있습니다. ㅋㅋ 이유는 이미 제목에 적어 놓은 그대로에요. 결국 이 모든 살벌한 소동의 뒤에는 장대한 멜로드라마가 도사리고 있고, 클라이막스는 그 드라마를 대사로 줄줄줄 설명하고 격렬한 감정을 토로한 후 관객들과 주인공에게 거기에 동참을 요구하는 식으로 전개되거든요. 말이 안 되거나 확 깨는 느낌까진 없지만 그 전까지 나름 건조하게 잘 잡고 흘러가던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급변하니 일단 아쉽구요. 감정 폭발하고 설명 대사가 길어지다 보니 템포도 늘어지면서 맥이 좀 빠지구요. 또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나 그에 따르는 결과는 드라마를 위한 타협과 과장이 좀 심했다는 느낌.
(주로 보게 되는 풍경이 이렇다 보니 '노르딕 느와르'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 결론은, 큰 기대 없이 걍 킬링 타임용으로 틀어 놓고 가볍게 보기 좋을 정도의 소소한 오락 영화입니다.
스페인산 저렴이 버전 '콘에어'라고나 할까요. 나름 건조한 범조물인 척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짜 놓은 초중반부는 썩 괜찮았구요. K-드라마적인 마무리가 영 아쉽긴 하지만 뭐 전 그냥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여기저기 상 받은 훌륭하신 영화님들 보다가 해독(?)삼아 본 B급 영화라서 더 즐겁게 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역시 전 아쉽고 모자라도 이런 류의 영화들 보는 게 가장 즐겁더라는 거. 타고난 B급 인생인가 봅니다. ㅋㅋㅋ
2022.04.02 15:09
2022.04.02 15:36
저 그 라스트 콘서트 테마곡 마르고 닳도록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ㅋㅋㅋ '아다지오 콘체르토'!!! 으하하. 어려서 티비에서 보면서 눈물 콧물 다 흘렸던 추억의 영화에요. 정말 말씀대로 한국인도 범접 못할 수준의 신파였죠.
말씀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한국만 그러는 것 같았지만 사실 중국, 일본도 느낌만 조금 다르지 한국보다 못할 게 없는 신파 천국이었고. 또 넷플릭스 드라마들 덕에 남미쪽 작품들 보다보면 진짜로 신파 잘 없는 나라들이 특이한 건가... 라는 생각도 들구요.
제목의 K 뜻은 말씀하신 게 맞구요. 신파와 더불어 사건이 마무리되는 방식도 좀 많이 한국 스릴러들 비슷해서 붙여봤습니다. 개인적으론 한국 컨텐츠들 인기 덕에 이 영화 만든 사람들도 영향을 좀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또 따지고 보면 이게 다분히 홍콩 느와르식 엔딩이기도 해서 결국 원조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고, 재미로 붙여본 걸로 생각해주세요. 하하.
제목의 K-액션은 액션이 K 스타일이 아니고 마지막에 신파가 K 스탈이란 뜻이겠죠?
제가 예전에 넷플릭스 할란 코벤 시리즈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데 거기서 언급을 살짝 했습니다. 동일 작가의 작품이라 모두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 지역색 차이가 확 난다고요. 그 중에 스페인산 작품인 The Innocent에는 다른 나라(영국, 프랑스, 폴란드) 작품에 없는 눈물 콧물 다 쥐어짜는 신파가 찐하게 등장합니다.
남친님은 늘 앙글로 문화가 굉장히 차갑고 인정머리없고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데요. 넷플릭스 이전에 미국, 영국등 앙글로들의 영화/드라마 외에 다른 문화권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한국인들은 넘쳐나는 신파에 몸서리를 치며 '우리는 왜 저렇게 쿨하게 못만들까?'라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신세계로 여러 문화권의 작품들을 접하다보니 그게 K 드라마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거죠. 남미 출신의 남친님 말씀으로는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고 앙글로 애들이 이상한 거야' 라고 하시네요.
신파에 질린 한국인들은 건조하고 감정이 절제된 영미권 작품들이 신선하고 쿨하게 보이지만 반대로 또 걔네들은 자기들의 쿨함에 질려서 K 신파같은 게 신선하겠죠.
그러고보니 70년대 영화 '라스트 콘서트'가 생각나네요. 어우, 한국인들도 그 정도는 못 만들것 같은 진짜 메가톤급 신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