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9 14:44
- 아시다시피 나온지 얼마 안 됐죠. 아무 생각 없이 디즈니 플러스를 켰는데 올라와 있길래 당황을; 런닝타임은 2시간 36분. 스포일러... 하하하. 그래도 결말은 안 적을래요.
(라떼에 자고로 웨스트 사이드라고 하면 유승준이라든가 투팍이라든가...)
- 제가 뭐 다른 영화들 얘기할 땐 무슨 특별한 지식이 있어서 주절주절 떠드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그래도 뮤지컬, 그것도 고전 반열에 오른 뮤지컬 이야기를 하자니 평소보다도 더더욱 무식함의 한계에 부딪혀서요. 장황하게 떠들지 말고 그냥 짧게 적고 넘기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2022년에 이런 짤을 보면 자동으로 격돌 직전의 히어로 군단 같은 게 먼저 떠오릅니...)
- 스필버그가 이 작품을 통해 뭘 하고 싶었는지가 아주 분명하게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첫째로, 뮤지컬 무대 실황 녹화 같은 영상물이 아닌 진짜 뮤지컬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거겠죠. 시작부터 끝까지 야외 촬영 장면(혹은 그렇게 보이게 만든 장면)이 대부분이고 실내 장면들에도 빛과 그림자가 반짝반짝하며 '영화'의 질감을 부여합니다. 뮤지컬 특유의 비현실적 군무 장면들이 그런 탁 트이고 빛이 환한 배경에서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함께 펼쳐지니 뮤지컬 별로 안 좋아하는 저같은 사람은 더 즐겁게 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두 번째는 아마도 시대에 격하게 뒤떨어진 많은 부분들을 현대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싶었던 거겠구요. 캐스팅도 설정상 인종에 맞추려고 나름 노력을 한 것 같고. 여성을 다루고 표현하는 태도도 많이 업데이트 됐구요. (하지만 기둥 스토리는 냅두고 원래 넘버들도 다 넣어야 하니 사랑에 목숨 거는 철부지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 그러는 와중에 남자 주인공을 안셀 엘고트가 연기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뭐 스감독님이 그거 알고 캐스팅한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겠구요. ㅋㅋ
(탁 트인 야외에서 춤을 추니 시원하고 좋지 아니합니까?)
- 생각해보면 스필버그는 여전히 80~90년대식 화면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그게 이 양반의 내공으로 승화가 되어서 전혀 촌스러운 느낌이 안 들어서 그렇지 뭔가 '옛스럽다'는 느낌이 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게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로 안 좋아하는 표현이고 근래에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소환되는 단어지만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왕, 오랜만에 보는 정통 '씨네마' 느낌이네."
그리고 스필버그에게 이런 얘길 하는 게 참 의미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역시 영화를 너무 잘 만듭니다.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 연출만 보고 있어도 즐거워요. 거기에다가 뮤지컬 영화라 그런지 유난히 음향에도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었고. 참으로 즐겁고 배부른 시청각 체험이었습니다. 두 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ㅋㅋ
(이 짤만 놓고 보면 그냥 옛날 영화 같지 않나요. ㅋㅋ)
- 다만 뭐랄까... 저처럼 뮤지컬 덕후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너무 낡아빠진 기둥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급전개가 자꾸 거슬립니다. 그리고 그걸 뮤지컬적 허용!!!! 으로 납득하고 넘어가더라도 한 가지 치명적이었던 게... 주인공 커플이 넘나 무매력인 것입니다. ㅠㅜ 조연 캐릭터들은 매력적이고 재밌는 녀석들이 많은데, 희한하게 주인공 커플만 등장하면 시큰둥해져요. 정통 로맨스를 많이 안 만들며 살아온 스필버그 할배의 한계인 것인지. 아님 그냥 원작의 로맨스 자체가 요즘 세상에 안 맞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걍 화학 작용이 전혀 없는 배우들을 잘못 뽑아 놓은 것인지... 아마도 모두 다 조금씩은 이유가 되겠지만 전 마지막 가설로 많이 기울더군요. 둘이 참 안 맞아요. 격하게 안 어울린다기보단 그냥 보기엔 나쁘진 않은데 별 느낌이 없습니다. 배우들 각자의 탓은 아닐 거에요. 둘 다 서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과 있을 땐 괜찮거든요.
어쩌면 스감독이 이 둘의 연애보다 다른 쪽에 더 힘을 기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그런 흔적들도 많이 보이잖아요. 마지막의 그 짧고 소박한 마무리를 보세요. 차라리 '아메리카'나 권총 빼앗기 장면에 몇 배로 노력과 열정과 돈을 투자한 것 같은 느낌이라. ㅋㅋㅋ
(예쁜 애랑 잘 생긴 애 붙여 놓는다고 자동으로 로맨틱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사례로 길이 남을 커플.)
- 짧게 적는다고 해 놓고 또 길어지네요. 이럼 안 되니 이 문단으로 마무리하겠어요.
보이고 들리는 거의 모든 것이 최상급으로 만들어진 럭셔리 '시네마' 입니다. 이 영화를 재미 없게 볼 순 있어도 완성도를 깔 순 없을 것이다! 라는 느낌?
하지만 원작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많지 않은 관객일 경우엔 뭔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에 생각보다 귀에 확 꽂히는 곡이 몇 없는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요.
근데 원작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많은 분이라면 지금껏 안 보고 계실 리가 없겠고. 하물며 저에게 추천 같은 거 받을 필요도 없겠죠. ㅋㅋㅋ
걍 저는 스필버그 빠인 데다가 앞서 말한 '럭셔리 시네마'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맘에 안 드는 부분들은 간단히 즈려밟고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이 정도 완성도라면 스필버그가 뮤지컬 하나 더 만들어도 괜찮겠단 생각도 듭니다만. 애초에 전 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으니 얼른 다른 영화 만들어 주세요 감독님. 제발 만수무강하시구요.
(이런 자연광 느낌 참 좋아합니다만. 종종 마이클 베이의 인장이 눈에 띄어서 혼자 웃었습니다.)
+ 반드시 극장에서 볼 거야!!! 라고 외치고 다닌 주제에 개봉 날짜를 깜빡해서 극장에서 못 봤습니다. ㅋㅋㅋ 물론 제 잘못이지만 참담한 흥행 성적으로 광속으로 내려가버린 탓도 있다구요. 월드와이드 수입을 봐도 그렇고 어지간한 감독이면 한동안 일거리 걱정 해야할만한 성적이지만... 뭐 스감독님인데요. 괜찮으시겠죠. 본인은 못내 아쉬우시겠지만 그래도 비평 성적은 좋았으니 그걸로 위안 삼으시길.
다음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볼게요!!
++ 여주인공을 보면서 계속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위니 쿠퍼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2022.03.19 14:57
2022.03.19 16:1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vod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렇죠. ㅋㅋ 흥행이야 뭐, 스감독님 이름이 흥행 보증 수표였던 것도 꽤 옛날이기도 하고. 또 '고전 뮤지컬'이란 걸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극장 가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냥 실제 뮤지컬을 보고 말지! 라는 느낌?
위니 쿠퍼 왜요. ㅋㅋㅋㅋㅋ 예쁘잖습니까!!
2022.03.19 15:10
저역시 뮤지컬에 취미가 없음에도 이거는 무조건 재밌고 볼만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믿고 보는 스필버그 아니겠습니까. 근데 벌써 디플에 올라왔다니 놀랍군요. 요.
2022.03.19 16:14
재미... 쪽으로 말하면 많이 애매하구요. 그냥 눈 호강 귀 호강 쪽으로 접근하시는 게 정확할 겁니다. 이야기가 너무 낡아서 감정 이입되는 것도 별로 없고 그래요. ㅋㅋ 저도 상상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켰다가 이게 메인 배너에 딱 뜨길래 당황했어요.
2022.03.19 15:17
언젠가 재상영도 해주긴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무튼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데, 그냥 주말 영화로 집에서 이번에 봐야겠네요. '씨네마' 한 번 보고 싶습니다.
2022.03.19 16:14
되도록 큰 화면에서 소리도 가능한한 키워 놓고 보시면 적어도 눈과 귀는 확실히 호강하는 경험 하실 겁니다. 이야기의 재미는 책임 못 집니다만. ㅋㅋㅋ 재상영 해주면 그땐 정말 극장 가서 보고 싶네요. 이미 코로나도 걸려놨겠다!! (쿨럭;)
2022.03.19 15:48
안셀 엘고트는 정말 그 스캔들을 억지로 머리에서 지우고 보려고 해도 하필 여기서 실제 나이가 미성년자에 가까운 레이첼 지글러랑 커플링이라 너무 크리피 하더군요. 최소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때 케이시 애플렉처럼 그걸 다 뚫을만큼 연기를 잘하던가 로맨스물 남주다운 매력을 팍팍 뿜어내던가 둘 중 하나라도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안되더라구요.
이미 원작 뮤지컬 만들 당시에도 한물 갔다는 소리를 듣는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가져다가 쓰는데 이런 고전적인 설정으로 먹히려면 특별한 연출없이 남주랑 여주가 서로 쳐다만 봐도 애절한 감정이 철철 넘치는 그런 수준의 케미가 나와줘야 먹힌다고 보는데 레이첼 지글러는 I feel pretty 같은 솔로넘버를 보면 충분히 자기 역할 잘 소화해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안셀이랑만 붙여놓으면... 안셀 엘고트가 그렇다고 솔로에서라도 빛이나냐하면 또 그것도 아니구요. 그냥 무난한 설정의 주인공을 너무 무난하게만 소화해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오는 씬마다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마이클 파이스트가 더 빛이 났어요. 아리아나 데보스는 그냥 자체발광이었구요.
표현하신대로 정말 고급 씨네마인데 남주 캐스팅 미스 하나로 남녀주인공 러브라인이 죽는데다가 작품 밖 스캔들 때문에 보는 마음도 불편하고 저에게는 안타까운 작품이 됐습니다.
p.s.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의 주인공 친구로 나왔던 탈리아 라이더는 제가 극장에서 매의 눈으로 훑었는데 전혀 못찾았습니다. 일단 대사는 없는 건 확실하고 역시 거의 엑스트라급 비중이었던 걸로 ㅋ...
2022.03.19 16:20
맞아요. 안셀 이 분은 원래 그냥 로맨스가 안 되는 분인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외모도 그 모든 걸 초월해서 매력을 뿜뿜할만큼 잘 생겨 버린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선배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남자 주인공 역 배우는 에러라는 평이 자자하지 않았습니까? 원작 덕후 스필버그님께서 원전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일부러 고르고 고른 캐스팅일 수도 있... 겠다고 생각해봐요 우리. 하하.
그리고 아리아나 드보스는 뭐, 그냥 장면을 씹어 드시더군요. 사실 남자 쪽도 토니보단 리프 역할 배우가 훠얼씬 배우 같고 캐릭터 같고 폼도 났구요. 이래저래 주인공들보단 조연들 보는 재미가 훨씬 큰 영화였네요.
+ 탈리아 라이더 찾아보셨군요. ㅋㅋㅋ 사실 전 개봉 전부터 이미 열심히 검색해봤는데요. '테사'라는 이름도 버젓이 붙어 있는 역할이고 여기저기 이 영화 캐스팅 관련해서 인터뷰도 많이 했던데... 실상은 말씀대로 엑스트라급이었나봐요. 그냥 이 사진 하나만 건졌습니다.
2022.03.19 19:33
2022.03.20 10:53
미술, 의상, 미장센 같은 면에선 그야말로 가능한 최상의 퀄리티를 쭉 유지하기 때문에 볼거리 측면에선 확실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50년대 미국 분위기를 좋아하셔야 진짜로 즐거우실 듯. ㅋㅋ 배우들 이름은 저도 못 외워요. 심지어 얼굴도 못 외워서 요즘엔 영화 보고 나서 캐스팅 검색하다 매번 놀라는 게 일입니다. '이게 또 그 사람이었어?' 하고요. 하하.
어라? 이게 디플에 떴군요!!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보고 싶어 다시 신청하나마나 그랬었는데 이 두 개만 보더라도 한달 구독료 본전은 건질 것 같습니다. 흥행성적은 참 의외네요. 그래도 스감독인데.
그래도 로이배티님 평이 좋으니 저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위니 쿠퍼...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