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8 20:27
- 2018년작입니다. 에피소드 여덟개에 편당 25~35분 정도가 보통이구요. 다음 시즌 떡밥 없이 딱 끝나요. 스포일러 없을 거구요.
(제목 참 심플하고 좋습니다. 드라마 내용도 잘 반영하구요.)
- 준과 오스카는 나이 50대에 접어든 부부입니다. 애는 없고 걍 둘이 살아요. 준은 정체불명(?)의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고 오스카는 치과 의사.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둘의 사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드라마는 마치 픽사 '업'의 도입부 비슷한 느낌으로 둘이 지금껏 살아온 길을 보여주는데... 나름 훈훈하고 사랑하는 부부인 건 맞지만 문제점이 보입니다. 일단 너무나도 변화 없는 규칙적인 루틴의 반복이고, 둘 다 서로에게 불만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털어놓지 못하고 양쪽 다 그냥 참으면서 살고 있어요. 어쨌든 사랑하니까!!!
그러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드디어 준이 용기를 내서 그 루틴을 깨보기로 합니다. 의외로 남편도 쉽게 오케이를 하네요? 그래서 늘 가던 산장에 가서 낚시를 하는 대신 스키를 배우러 가기로 합의를 보고 여행을 떠나죠. 그리고 그 곳에서 그만...
(에디 팔코도 좋아한다는 스키 여행!!! 이라며 찾아온 이 곳에서 둘은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을...)
- 근데 제목에 이미 적어 놔 버렸죠. 네. 어찌저찌해서 둘은 빠르게 이승 삶을 정리하고 내세에서 재회합니다. 근데 이 내세란 곳이 좀 괴상해요. 사실 그냥 작가 편할대로 근데 그걸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시간 낭비일 것 같고, 암튼 이 곳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다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핵심 설정입니다. 여전한 반복, 여전한 권태, 여전한 익숙함 속에서 이번엔 드라마 제목대로 '영원히' 그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이 내세란 드라마를 차별화하는 나름의 재미 아이템인 동시에 아주 널럴한 사고 실험인 겁니다. 니들이 만약 끝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결혼이란 제도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니들이 아둥바둥 노력하며 이 제도 안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현세에서의 결혼이란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죠.
(두 캐릭터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장면입니다. 남자가 잘못했어요. <-)
- 일단 되게 차분한 코미디입니다. 계속해서 웃겨주긴 하는데 절대로 오버하지 않아요. 큰 한 방 없이 소소하게 일상 밀착류의 웃긴 상황을 설정하고 숙련된 배우들이 거기에 맞춰 절제된 연기로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주는 거죠. 나름 좀 센 개그가 출동할 때도 배우든 연출이든 음악이든 다들 늘 차분합니다. 이런 류의 코미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보실 거에요.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요. 뻔한 칭찬이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ㅋㅋ 폴 토마스 앤더슨과 함께 사신다는 마야 루돌프, 그리고 알고 보니 조상이 친일파 나치 부역 조선인이었다는(...) 프레드 아미센 둘 다 아주 좋은 배우들이고 또 역할에도 찰떡같이 잘 어울리구요. 이 둘의 균열을 확 키워 버리는 이웃집 팜므 파탈 아줌마 캐서린 키너도 역시 본인 짬밥다운 좋은 연기 보여주고요. 각본도 좋지만 배우들이 잘 살려낸 덕도 꽤 많이 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되게 자연스러운 느낌이면서도 포스가 넘치시는 캐서린 키너님.)
-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드라마는 둘의 결혼 생활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이 둘은 사실 아주 괜찮은 부부에요. 둘 다 좋은 사람이고 서로에게도 잘 맞아요. 참 잘 만나서 잘 살아온 부부인데, 그래도 어차피 타인들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거죠. 서로에게 100% 솔직하지 못했다... 는 게 둘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등장하긴 하는데, 아니 세상 누가 그렇게 100% 솔직하게 산답니까. 그랬다면 오히려 진작에 깨졌겠죠. 그리고 이들이 삶이 영원으로 확장되면서 결국 수십년 살아온 세월이 '진작에'가 되어 버리는 거구요. 나름 신선하면서 적절한 설정이고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완 관계 없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는 내세 주민들 중 한 분. 10대 때 죽어서 50년째 내세 생활중인 대선배님... 인데 사고는 10대 그대로. ㅋㅋ)
- 다만 문제는 뭐냐면요.
일단 마무리가 약합니다. 제 느낌엔 질문은 멋지게 던져 놨는데 작가 본인들도 답을 모르는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막판에 가면 뭔가 좀 쌩뚱맞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는데, 그 부분이 좀 별로였어요. 제게 별로 와닿지 않는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 시각에서 생각하는 '영적인 무언가'가 등장하는데 그게 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단 느낌이었고. 또 결말은 상당히 쌩뚱맞게 나이브하구요. 스포일러라서 말은 못하겠지만 정말 '진심입니까 닝겐? 이게 그동안 탐구해 온 답인가요?'라는 생각이 드는 좀 무책임한 결론으로 맺음되거든요. 내내 재밌게 보다가 마지막 두 에피소드에서 갑자기 맥이 빠지는... 뭐 그런 느낌이었네요.
('왓치맨'의 그 엽기적 천재 박사님이 넘나 러블리한 캐릭터로 쌩뚱 맞게 등장해 주십니다.)
- 그래서 뭐... 결론은요.
어쨌거나 배우들, 특히 부부, 그리고 사실은 원탑 주인공인 마야 루돌프의 캐릭터가 좋고 연기도 좋아서 한 번 가볍게 볼만했다는 느낌이었어요. 전 이 쪽으로 영 무식해서 이제 처음 알게 됐는데 SNL로 이름 날리셨던 분이라고. 막판에 본인 특기 살리는 장면들도 한 번 나오구요.
준비된 답이 허접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나름 예리한 맛이 있어서 가볍게 즐기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알아서 생각해봐도 괜찮겠구요.
결정적으로... 쌩뚱맞지만 에피소드 6이 참 좋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그동안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는 인물들이 나와서 거의 상관 없는 이야기를 에피소드 내내 보여주는데, 그게 참 괜찮은 로맨스였어요. 본편보다 더 재밌게 봤고 그래서 이 드라마 보기 싫으신 분은 에피소드 6번만 한 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 ㅋㅋ 30여분짜리 달콤 쌉싸름한 단편 로맨스물 하나 보신다고 생각하심 됩니다. ㅋㅋ
뭐 그렇습니다. 뒷심이 약한 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본 시간이 아까운 드라마는 아니었어요. 괜찮습니다. 소재와 배우들에 끌리는 부분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보시길. 어차피 영화 두 편 볼 시간이면 다 보는 짧은 시리즈니까요.
+ 내일 저녁엔 이런 글 올릴 기분이 아닐 것 같아서(?) 좀 급하게 대충 적어 올립니다. 내일 이 시간에 제가 뭘 하고 있을까요 과연... ㅋㅋㅋ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떻게 되든 개표 방송은 안 볼 거라는 거?
++ 피터 웰러와 줄리아 오몬드가 카메오로 나옵니다. 와! 반가웠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너무 오랜만에 뵌 분들이라 못 알아봤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피터 웰러는 참 피터 웰러 같은 느낌으로 나왔군요. 저만 못알아본 듯. ㅋㅋㅋ
+++ 유난히 동양인들이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입니다. 위에서 말한 6번 에피소드의 주인공도 동양인 배우고요. 그리고 그 와중에 '한지영'이란 이름의 배우도 잠깐 큰 의미 없는 역으로 지나가요. 그렇습니다. 전 아직도 이런 걸 찾으며 즐거워하는 국뽕러... (쿨럭;)
++++ 드라마 제목 때문인지 자꾸 이 노래 생각이 나더라구요.
다만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둘이서 '영원히'라는 게 참 무시무시하고 철 없는 소리로 들린다는 문제가... ㅋ
2022.03.08 21:02
2022.03.08 21:29
마야 루돌프는 이 드라마를 보면 재능과 에너지가 넘치는 코미디언... 이라는 느낌이라 폴 토마스 앤더슨과 20년 넘게 커플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영원히 당신만을~ 이야 뭐 젊음의 패기로 이해가 되긴 하죠. 이제 나이 먹으니 '니들이 뭘 모르는데 말야~' 라고 궁시렁거리고 싶지만 다행히도 젊을 때 그런 얘기 하는 양반들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므로 잘 참고 삽니다. ㅋㅋㅋ
2022.03.08 21:28
체육관 있는 중고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밤새 개표작업하고 그랬죠 컵라면 야식 먹으면서.
2022.03.08 21:30
요즘도 종사 요원 희망 받긴 합니다. 근데 전 그냥 하루라도 더 놀고 싶어서 한 번도 공문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
2022.03.08 22:05
맞아요. 후반이 좀 흐릿한 감이 있지요. 그래도 관조적이고 태연한 코미디가 썩 마음에 들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시리즈였어요.
두 snl졸업생들도 극에 맞게 톤다운 잘해서 연기해준 것 같아요 ㅎㅎ 둘다 재능이 엄청난 분들인데 말이에요. ㅋ
프레드 아미센은 음악 코미디쪽으로 아주 잘했었지요. 마야도 자기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꽤 잘하는 편이고요. 그 디바들 흉내내는 스케치가 기억이나요.ㅋㅋ
프레드가 "전설적인 펑크밴드" 비자로스의 이안러비시 역할 했던 스케치 떨구고갑니다 ㅎㅎ
2022.03.08 22:38
네, 이런 스타일 코미디가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서 더 좋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올려주신 영상 보니 배리 아저씨도 나오네요. ㅋㅋㅋ 재밌게 봤습니다.
2022.03.08 22:37
2022.03.08 22:40
아... 이걸 분명히 해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돈이 나가고 있었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라도 해지하려고 켰다가 얼떨결에 이것저것 보고 있습니다. ㅋㅋ 근데 별 거 없어서 금방 해지할 것 같구요.
전 웨이브 한국 드라마는 아예 옛날 것들이 보고 싶은데, 에피소드 수가 어마어마한 게 많아서 손도 못 대고 포기했습니다. 하필 제가 볼까 했던 것들이 죄다 장수 드라마였던 듯. ㅋㅋ
2022.03.08 22:45
2022.03.08 23:32
네 전 그 에피소드가 지난 몇 년간 본 로맨스들 중에 가장 좋았어요. 물론 아시다시피 제가 로맨스를 거의 안 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 암튼 그 에피소드 좋았다는 분을 만나니 매우 기쁘네요. 홍 차우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연기도 너무 섬세하게 잘 해서 깜짝 놀랐구요.
2022.03.08 23:39
2022.03.09 00:16
아무래도 환타지물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구요. 아마존도 넷플릭스도.
줄리아 오몬드는 정말 알아볼 수가 없는 수준입니다. 리즈 시절이 완전 젊을 때였는데 이제 세월이 워낙 흘러서... 하하.
업로드 시즌2는 어차피 11일에 나온다고 하니 한국에선 12일에나 볼 수 있을 거고, 며칠 여유 두고 결제하셔도 될 것 같아요.
2022.03.09 01:00
제가 아마존 프라임 쪽을 놓은지가 최근 좀 되서 몰랐던 작품이네요. 소재도 괜찮지만 일단 캐스팅이 완전 제 스타일입니다. 마야 루돌프 너무 재밌고 좋죠. 주연으로 같이 나오는 프레드 아민슨도 SNL 출신일 겁니다 아마도.... 나중에 꼭 시도해봐야겠네요.
캐서린 키너는 언제봐도 믿음직한 분이시죠. 겟아웃에서 소름끼치던 연기도 기억나고(사실 그 가족이 다 소름끼쳤지만ㅋ) 왓치맨 천재박사님도 그렇고 다 호감형 배우들만 썼네요.
2022.03.09 08:48
네 나중에 한 번 보세요. 결말 좀 허망할 거다... 라고 미리 생각하고 보면 더 나을 거에요. 글에도 적었듯이 뭐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괜찮았구요. ㅋㅋ
캐서린 키너는 개인적으로 젊을 때보다 요즘이 더 인상적인 것 같아요. 멋지게 나이 먹으신 듯.
2022.03.09 07:36
2022.03.09 08:50
그냥 에피소드 6만 보셔도 돼요. ㅋㅋ 본문에도 적었듯이 99% 독립적인 이야기라서 그냥 단편 로맨스라고 생각하고 봐도 되거든요. 아예 본격 로맨스 앤솔로지였던 '모던 러브' 에피소드들보다 훨씬 좋게 봤어요.
2022.03.09 11:49
와 무섭네요.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한다니...
인간이 동물처럼 1년만에 다 성장해서 독립한다면 오래 함께하는 게 미덕일 리가 없을 텐데...
결혼했다 이혼하고 재혼하는 건 귀찮으니까 그냥 동거하다 헤어지든가 따로 살면서 연애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뭐 연애도 안 해도 괜찮구요.
2022.03.09 14:01
그렇죠. '한 평생'도 긴 시간이지만 '영원'에 맞짱을 띄워 놓으면 한 없이 하찮아지는지라. 한 평생도 그렇게 고난이도라는데 영원은 말 할 것도 없겠죠.
진짜 영원까지 살게 되면 연애도 귀찮아서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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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 보입니다.
어제 질문 드린 작가 필립 케이 딕이 54년 살면서 다섯 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는 것도 생각나는 글이네요.
저는 젊을 때도 노래 가사에 있는 '영원히 당신만을 -' 어쩌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만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 역시 뭣보다도 게으름 때문에 불가능한 거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 일인가 싶고.
마야 루돌프, 남편 아픈 걸 은근 기뻐하여 영화 '팬텀 스레드'의 발상을 제공했다는 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