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6 17:44
- 재작년 영화지만 개봉은 작년에 했죠. 런닝타임은 108분. 장르는 환타지 액션 스릴러... 정도 됩니다. 스포일러 없게 할 게요.
(개인적으로 요 폰트는 한국 영화 제목에서 좀 금지시켰으면 합니다. 그냥 제 취향이 그래요. ㅋㅋ)
- suv 한 대가 사고로 멈춰 있고 총상을 입은 남자가 차 옆에서 헤롱거리고 있습니다. 그 틈을 타 블랙박스를 훔쳐가는 노숙자와 뭐라뭐라 대화를 한 후 경찰서. 사람이 총을 맞고 피를 흘리는데 참으로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던 담당 경찰이 '그거 총상 맞으면 조사 좀 받으셔야 할 거에요~ 기다리셈~' 하고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남자는 경찰서를 빠져 나가는데. 음.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뭐 암튼 이런 영화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자기 옷 주머니 속의 물건들을 힌트로 이리저리 헤매는데... 갑자기 세상이 헤롱헤롱해지더니 슥! 하고 다른 장소에 다른 몸으로 앉아 있는 주인공. 이게 대체 뭐꼬!! 하고 헤매고 있노라니 예정된 수순으로 정체 불명의 남자들과 여자 몇 명이 이 사람을 공격하구요. 당연히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반응을 해서 슥슥 위기를 피해나가구요. 뭐... 그러면서 이 상황의 진상을 찾아 떠나는 개고생 이야깁니다. 아, 주인공이 12시간마다 한 번씩 본인 의지와 전혀 별개로 몸을 갈아타게 된다는 걸 얘기 안 했군요.
(개인적으론 하이킥에서 농담입니다~ 라면서 사람 약올릴 때가 가장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 연기를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냥 좀 부족하달까...)
- 그러니까 참 말도 안 되는 설정입니다만. 말도 안 되는 대신 그만큼 재밌게 써먹을 구석이 많은 설정이기도 하죠. 뭔가 예전엔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 핵심 설정이 그럴싸하게 설명이 안 되면 짜게 식는 습관이 있었는데. 요즘엔 좀 변했습니다. 굳이 설명 잘 해내지 못해도 좋으니 재밌게 잘 써먹어서 보는 동안 즐겁게만 해줘... 뭐 이런 식이에요. ㅋㅋ
일단 일정 시간을 두고 강제로 전환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들어갈지 자기가 모른다는 것. 이 두 가지만 생각해봐도 얼마든지 스릴 있고 아이러니한 상황, 살 떨리는 상황부터 웃기는 상황까지 잔뜩 만들어낼 수 있을 거잖아요. 거기에다가 자기 자신의 정체를 찾는 탐정 놀이까지 곁들였으니 어지간하면 재미 없기도 힘든 설정이고 그래서 재미란 게 있습니다. 네, 재밌어요. 다만 그만큼 아쉬운 것들도 잔뜩이었네요.
(윤계상이 계속 윤계상이 아닌 내용의 영화지만 이런 식으로 윤계상은 계속 나옵니다.)
- 일단 가장 아쉬웠던 건 이 '유체 이탈' 컨셉이 기대만큼 잘 활용되진 않았다는 겁니다.
분명히 이걸 바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긴 하는데, 좀 문제가 있어요. 가장 큰 아쉬움은 주인공이 몸을 갈아타는 대상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겁니다. 정체불명의 어떤 프로페셔널 폭력 집단이 적으로 등장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이 집단의 멤버들 몸만 사용해요. 그러니까 대체로 다 비슷하게 거칠고 불쾌한 인상의 아저씨들(...)로만 계속해서 갈아탄다는 겁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아저씨들'이 아니라, '다 비슷하다'는 거구요. 노인 몸도 들어가고 어린애 몸도 들어가고 여자에게도 들어가고 하면서 좀 다양한 대상들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그때 그때 그 신체 조건에 맞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면 재밌었을 텐데, 그냥 쭉 다 싸움 잘 하는 험상궂은 아저씨들입니다. 이러니 설정의 재미가 많이 죽죠.
특히나 초반에, 주인공이 뭣 때문에 이런 꼴인지 아예 감도 안 잡힌 시기의 갈아타기는 더해요. 관객에게 정보를 던져주며 스토리 진도 빼기에 급급한데, 그러다 보니 '지금 어떤 사람의 몸인가'가 훨씬 덜 중요해지고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연기하는 걸 거의 본 적 없었던 임지연씨.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캐릭터가 워낙 밋밋해서 뭐라 평하기도 애매하네요. 그냥 예뻤습니다.)
-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전개를 했어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긴 합니다. 이 영화는 의외로 액션의 비중이 되게 커요. 얼마나 크냐면, 몸 갈아타기 놀이의 비중보단 확실히 큽니다. ㅋㅋ 이게 그냥 단점은 아닙니다. 왜냐면 액션의 퀄리티가 나름 꽤 괜찮거든요. 제이슨 본식 주변 사물 이용 빠른 근접 격투로 나가다가 중반을 넘어가면 '건카타'라 불리는 그 권총 들고 근접 격투 장르로 넘어가는데 어느 쪽이든 퀄이 꽤 준수합니다. 볼만해요. 덧붙여서 두어번 정도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들도 꽤 잘 찍었습니다. 그냥 의무적으로 자동차가 부앙부앙하면서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다 나중엔 크게 폭발하고 멈춰선다. 이렇게 이어 붙이는 수준을 넘어서 나름 박진감 있게, 또 아이디어도 있게 재밌게 잘 찍어 놨어요.
하지만 애초에 설정으로 먹어주는 '컨셉 영화' 아닙니까. 영화 제목이 '유체이탈자'인데 정작 유체이탈은 좀 평범하게 다루면서 다른 게 더 비중이 커지면 어색하죠. 특히 막판에 가면 대략 30분 가까이를 남겨 놓고 유체 이탈 없이 액션만 와장창 이어지는데 아무리 액션이 보기 좋다 해도 이건 좀... 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구요.
(알고 보니 인생의 현자였던 우리 노숙자님. 핫도그를 바라보는 윤계상의 표정이 코믹해서 좋습니다.)
- 다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인공의 기억 상실 설정을 빼 버리면 어땠을까. 차라리 그냥 초반에 진상을 보여주고, 주인공이 적들의 정체를 아는 상태에서 그들의 몸으로 갈아타고 갈아타고 하면서 뭔가 첩보물스럽게 전개를 하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쓰는 게 더 이야기가 복잡해져서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구요. 또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애초에 기억상실이란 설정이 '유체이탈' 컨셉의 빈곤함을 덮으려는 트릭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그랬네요.
- 암튼 제 결론은 대략 이렇습니다.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기대보다 덜 활용되긴 했지만 이 '몸을 옮겨다닌다'는 컨셉 자체의 매력이 있다 보니 나쁘지 않았구요.
또 말씀드렸듯이 양질의 액션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볼 거리도 준수한 편이구요.
이야기와 캐릭터 자체는 좀 빈약한 편이지만 박용우의 빌런 연기는 꽤 보는 재미가 있고, 임지연은 그냥 매력 있는 편이었고, 또 어쨌거나 멈춤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전개 때문에 보는 동안 시간은 편안하게 잘 흘러갑니다.
큰 기대 없이 무료 내지는 저렴한 값으로 감상할 수 있다면 킬링타임용으론 괜찮은 장르물이었어요. 특히 한국산 장르물이었기 때문에 가산점 살짝 줘서 '괜찮았다'고 마무리하렵니다. ㅋㅋ
+ 막판에 주인공의 규칙적인 유체 이탈에 대한 설명이 제시됩니다. 물론 말도 안 됩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전 이미 이런 부분에 있어선 많이 관대해져서... ㅋㅋ
++ 그런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의 의식이 거기 머물면서 억눌리는 것인지 아님 둘의 영혼이 '교체'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교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영 이상해지는 거라...
+++ 막판에 아주 크고 튼튼한 차가 나오는데
검색을 해보니 허머 H2? 라는 모델인가 보네요. 전 차에 관심은 없지만 걍 액션 영화에서 보니 폼나더라구요.
그냥 아주 비싸고 연비도 안 좋겠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ㅋㅋ
++++ 뻘소리지만. 얜 확진됐다는 놈이 뭐하는겨? 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ㅋㅋ 게시판 글 리젠이 잘 안 되다 보니 게시판 도배가 될까봐 쟁여 놓은 뻘글들이 여럿 있어서요. 아마 증상 올라와서 헤롱거리는 와중에도 새 글은 올라갈 겁니다(...)
2022.03.16 18:01
2022.03.16 19:07
헐리웃은 일단 아이디어가 그럴싸해 보이면 광속으로 채가고 보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한국 영화판이 그쪽에서 관심 갖고 주목할만한 곳으로 잘 성장한 덕이겠습니다만. ㅋㅋ 만약 만들어진다면 액션보단 다른 쪽으로, 유체이탈 아이디어 같은 쪽으로 좀 더 파보면 괜찮은 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2022.03.16 18:30
저는 기억상실이 관객에게 추리를 위한 긴장감과 집중을 요하게 되어서 오히려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몸을 갈아타는 대상이 무작위가 될 이유가 별로 없지 않았나 싶어요.
규칙이 없고, 스토리를 이어가는 데에도(클라이막스와 해결을 위한) 그 접근에 있어서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주인공에 너무 유리한 조건이지 않나 싶어요.
2022.03.16 19:11
기억상실이 흥미를 끌고 집중을 시키는 건 맞지만 추리 쪽까지 끌고 가기엔 시나리오가 너무 약했던 것 같아요. 정신 없이 갈아타는 초반 전개 때문에 잘 덮이지만 사실 주인공이 자기 정체랑 사건의 진상을 알아가는 과정은 되게 싱겁게 되어 있죠. 몸을 갈아탄다, 보이는 적을 두들겨 팬다, 힌트를 떨군다. 대략 이런 느낌이라 게임 구경하는 느낌도 좀 들었구요. 사실 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궁금했던 게 '어쩌다 저렇게 됐다고 둘러댈까?' 였는데 그게 결국 그냥 작가 편한 설정이라... ㅋㅋ
그래도 재밌게 보긴 했어요. 어느 정도 재밌게 봤다 보니 더 아쉽단 소릴 많이 하게 되네요.
2022.03.16 19:37
2022.03.16 19:52
폰트 공격!!!
ㅋㅋㅋ 분명 누군가 모아 놓은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검색해보니 정말로 있네요. 벌써 8년 묵은 자료 같지만요.
저 푸르딩딩 색감도 처음 나왔을 땐 나름 참신했는데요. 계속 흔하게 접하다 보니 이젠 뭔가 게으른 느낌이 들고 그런 감이 있지요.
2022.03.16 20:12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결국 여기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2년 전만 해도 참신한 시도였지요.
2022.03.16 21:21
2022.03.16 23:46
그러고보면 이 포스터에서 처음 이런 영화 포스터 타이포를 봤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저 개인적으론 이 영화를 생각할 때면 자동으로 이 곡이 함께 떠오릅니다.
어찌보면 정말 파멸적 개판(...)으로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에 참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곡만 떼어 놓고 보면 아주 서정적이라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괴상하게 잘 어울렸던. ㅋㅋ
2022.03.16 21:18
2022.03.16 21:33
로이배티님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라이언 고슬링을 보십시오!!
2022.03.16 23:46
아아니 이게 뭡니까. ㅋㅋㅋㅋ 내용도 웃기고 라이언 고슬링 이런 연기 하는 것도 의외로 되게 웃기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2022.03.16 22:41
'소스 코드' 어제 봤는데 묘한 지점이 겹치는 것 같네요. 제이크 질렌할의 정신이 타인의 몸에 들어갔는데 제이크 질렌할로 계속 나오던.ㅎㅎ 딴 얘깁니다만 저는 던칸 존스의 '더 문'이 이해하기도 영상도 나았어요. '소스 코드'는 양자역학이 어찌저찌됐다 하는데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마지막 부분도.
2022.03.16 23:49
전 '소스 코드'는 복잡한 건 다 치우고 그냥 타임루프 로맨스로 봤습니다. 제 한계가 거기까지라. ㅋㅋㅋ 그렇게 볼 때 알차게 잘 만든 소품이었어요. 뭣보다 결말이 참 좋았구요.
헐리웃 리메이크 된다는 것 같더군요.
그런 영화가 많았지만 막상 리메이크가 이뤄진 게 몇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오겜 이후론 분위기가 좀 달라져서 그간 계약만 했던 것들 중에도 리메이크가 나오는 것들이 있지않을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