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8 23:23
- 나온지 얼마 안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구요. 에피소드 8개인데 편당 25분 정도 밖에 안 해서 사실상 영화 두 편 볼 분량 정도. 장르는 뭐라 말하기 난감하지만 일단 스릴러인 건 맞구요. 스포일러 없도록 적겠습니다.
(이 포스터 이미지의 허접함은 의도된 것일까요 아닐까요. 그 또한 미스테리.)
- '안나'라는 여인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다다다다 뭘 자르고 다져서 요리를 하고 있구요. 딸을 목청껏 부르며 얼른 학교 가자 그러구요. 학교 앞에서 옆집 여자를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데... 그러고 나서야 우리의 주인공이 잠옷 바람이라는 걸 보여주죠. 잠시 후 알게 됩니다만 이 양반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요.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복용하며 버티고 있는데 의사가 절대로 안 된다며 '심각한 환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까지 해 준 술을, 그냥 물 대용으로 하루 종일 들이키고 있거든요.
암튼 그 와중에 맞은 편 집에 아빠와 어린 딸, 둘로 구성된 가족이 이사를 오구요. 남편과 헤어진 후 고독에 몸부림치며 살던 우리의 주인공은 딱 봐도 훈훈한 비주얼의 앞집 아저씨에게 마음이 가겠죠. 그리고 당연히 둘은 잘 될 기미를 보이고, 그렇게 잘 될 것처럼 보이는 순간부터 그 아저씨에겐 뭔가 수상한 구석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하겠습니다.
- 제목이 웃기죠. 라노벨 제목인가 싶을 정도로 쓸 데 없이 긴 문장 형태의 제목인데... 놀랍게도 나름 원제를 충실하게 번역한 케이스라는 게 반전입니다. 원제가 'The Woman in the House Across the Street from the Girl in the Window'에요. 너무 길어서 해외에서도 각자 맘대로 줄여서 칭하는 모양이네요.
시트콤에나 주로 쓰이는 25분짜리 짧은 에피소드 구성이라는 점도 특이하구요. 덕택에 한 시즌을 다 봐도 200분 정도. 보통 영화 두 편 볼 시간이면 다 보고도 좀 남죠. 그래서 하루만에 다 봤습니다. 사실 이 괴상한 제목과 짧은 시간에 낚여서 봤어요. ㅋㅋㅋ
(제목 값을 하느라고 정말 끊임 없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창 밖을 봅니다.)
- 핵심 컨셉을 말하자면 정신 이상자 버전의 '이창'을 의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이 맞은 편 그 훈남 아저씨네 집 창으로 살인으로 의심되는 현장을 목격하거든요. 그리고 주인공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아무도 안 믿어주죠. 그래서 혼자서 탐정 놀이를 하며 진실을 밝히려다가 각양각색의 위기를 맞게 되고... 그런 얘깁니다. 더불어서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마구 활용해서 환상 장면을 와장창 집어 넣어 보는 사람 헷갈리게 하구요. 근데...
- 이 드라마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 하자면, '엉망진창'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환상 장면들은 너무 격하게 자주 나오고 나올 때마다 과하게 드라마틱해서 괴상하고 싱겁게 웃겨요. 반전에 집착하다 보니 계속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인상적이지도 않은 국면 전환이 튀어나와서 캐릭터들을 다 개연성 말아 먹는 비현실적 인간들로 만들구요. 당연히 주인공에게도 전혀 감정 이입이 안 되는데, 드라마는 계속해서 이 주인공의 아픔을 되게 진지하게 궁서체로 강조합니다. 이 역시 강조가 지나쳐서 슬쩍 헛웃음이 나오구요.
(앞집에 이사온 훈남 아저씨. 약간 '너의 모든 것' 주인공의 보급형 느낌도 있구요.)
- 근데 이 정도면 그냥 평범하게 못 만든 드라마 같잖아요? 아닙니다. 평범하게 못 만들었다기엔 나름 튀는 괴상함 못만듦이 풍성한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져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합니다. 근데 전화를 받는 상대는 FBI의 범죄 심리 전문가로서 주인공이 전화를 걸었을 때 아마도 사이코 살인마일 인물과 면담 중이에요. 근데 면담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전화로 계속 대화를 합니다. 그동안 그 살인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어요. 그대로 장면이 한참을 이어지구요. 그래서 전화 받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마주 앉아 있는 그 양반이 계속 보이는데, 당연히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굳이 상황을 그렇게... ㅋㅋㅋㅋ
진짜 걸작(?)인 건 주인공의 트라우마 설정이에요.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보실 분들의 재미를 위해 설명하진 않겠구요. 암튼 그 트라우마가 정말정말 슬프고 비극적이어야 하는데, 상황이 너무 황당하게 말도 안 되면서 쓸 데 없이 격하게 자극적이어서 정말 1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오히려 이건 분명히 노린 개그여야 하는데 개그라기엔 또 너무 끔찍...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게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기조입니다. 끊임 없이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물론 웃으면 된다고 생각하시겠죠.)
- 이 드라마의 멍청함과 모자람에 대해선 몇 문단을 더 떠들어도 부족할 정도지만 얼른 '더 와이어'를 다 봐야 하기 때문에 걍 평소보다 빨리 정리하겠습니다.
괴작 마니아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정상적인 작품을 원하는 분들께는 '부디 피하시라'는 한 마디만 드리면 충분하겠구요.
끊임 없이 '이건 의도한 개그인가 못 만들어서 웃기는 건가'를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네 시간이 다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뜨는 드라마에요.
혹시라도 관심이 가신다면 '나는 정말 이런 드라마를 원하는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고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ㅋㅋㅋㅋ
+ 제가 예전에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캐서롤'이란 요리에 대해 몇 자 적었다가 친절한 유저분들의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요.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캐서롤 스릴러'라고 불러줘도 될만한 캐서롤 성애 드라마 되겠습니다. 첫 장면부터 주인공이 캐서롤을 요리하는 장면이고 이 양반은 어딜 가든 캐서롤을 한 판 해서 커다란 캐서롤 그릇에 들고 다녀요. 이것도 제 미스테리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의 이 캐서롤 집착증은 의도한 유머인가 아닌가...;
(정말로 이 양반은 캐서롤과 와인 밖에 먹지 않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캐서롤, 누구 선물할 때도 캐서롤. ㅠㅜ)
++ 이런 얘기까지 적으면 추천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래서 보시고 저 욕하실까봐 적을까 말까 망설였습니다만.
이 드라마의 클라이막스는 나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물건이었습니다. 진상이 밝혀지고 진범과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인데... 진상 그 자체는 물론이고 이어지는 난투극까지 정말 넘나 어이가 없어서 당연히 환상일 거라 생각하고 봤어요. 근데 진짜였어... 어흑. ㅠㅜ
+++ 근데 이 글을 적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드네요. 사실 이 드라마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는 '할리퀸 로맨스'를 흉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제가 이 장르의 책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냥 전형적으로 알려져들 있는 할리퀸 로맨스의 조건에 여러가지로 부합합니다. 평범한 여성이 주인공이고, 이런저런 종류의 훈남들과 엮이고, 갸들이랑 야한 장면들 나오고. 캐릭터들은 다 얄팍하고 스토리는 뭔가 대리만족스런 방향으로 흘러가구요. 뭐... 아님 말구요. ㅋ
++++ 마지막에 꽤 큰 인물께서 카메오로 등장하십니다. 좀 쌩뚱맞아서 이 시리즈 제작이랑 무슨 관계라도 있나? 싶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2022.02.09 00:37
2022.02.09 09:30
아래 Lunagazer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을 보면 결국 그 트라우마 얘기도 클라이막스도 농담이었다는 건데... 그게 농담이 너무 과하고 또 진지해서 농담이라고 눈치를 못 채버린 것 같아요. 정확히는 농담이라는 확신을 못 가졌다고 해야 하나. ㅋㅋㅋ
2022.02.09 17:50
좀 비교하기 죄송합니다만 결말은 앨러리 퀸이나 크리스티 여사의 모작품이 떠오르기도했어요. ㅋㅋ 최근에 본 배리의 어떤 에피소드도 떠오르고.
2022.02.09 00:53
은근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길래 호기심에 봤는데....정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K드라마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었구나. ㅎㅎㅎㅎ
어렸을 때부터 응원해 오던 크리스틴 벨의 열연 때문에 보긴 했는데 진짜 당황스럽더라고요. 이게 뭔지... 쓸데없이 남자들 훌렁훌렁 벗겨서 응응 장면 넣는 거 보고 저는 크리스틴 벨 본인이 제작자인줄 알았네요.
그리고 그 아저씨는 뭔 우편함을 몇날 며칠동안 쪼물딱 거리고 있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 아니 그게 무슨 고사양 IT 장착된 첨단 복합 물건이라고...
2022.02.09 09:33
그 무한 우편함 수리 때문에 '아 이거 그냥 아예 개그인가...' 라는 의심을 하긴 했는데 계속 헷갈리더라구요.
사실 이게 애초에 장르가 코미디로 되어 있긴 합니다. 아래 Lunagazer님께서 설명해주신 걸 봐도 그게 다 컨셉이었던 게 맞는 것 같은데... 문화적 차이인지 드라마 자체의 문제인지 너무 안 농담 같아서 그만. ㅋㅋㅋ
2022.02.09 17:48
그분이 마인드헌터에서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마 켐퍼역을 했던 분이라 더 노골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ㅎㅎ
2022.02.09 05:15
2022.02.09 09:36
네 남자 캐릭터는 대략 그런 느낌 맞아요. ㅋㅋ 심지어 나중에 한 명 더 나와서 서로의 부족함을 잠깐 채워줍니다.
원래부터 장르가 의도된 못만듦으로 웃기는 코미디라고 하네요. 그걸 모르고 봐서 제가 이런 소감을 적게된 것 같습니다. 근데... 정말로 헷갈려요 이 드라마. ㅠㅜ
2022.02.09 07:16
내내 정색하고 농담하는 사람과 블라인드 데이트 하는 기분이 드는 시리즈였지요 ㅋㅋ 이거 실은 총알탄사나이류 패러디 코미디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꽤 웃기긴 합니다. 제목도 우먼인윈도나 걸온더트레인같은 영화들 같은 느낌을 죽죽늘려놨지요. 나오는 캐릭터나 플롯 전부 의도적으로 이런류 영화의 전형성과 핍진성의 결여를 비웃는 것이 목적입니다. 문제는 연출의 톤인데 다소 실험적으로 무서운영화류의 과장을 아주 톤다운해놓아서 미묘한 경계에 맞추어 놓았어요. 이게 크게 호불호를 만든 것 같습니다. 크리스틴벨의 과격 섹스신을 보세요. 이것도 실은 코미디를 의도한겁니다. 근데 보통 패러디영화들은 이런장면에서 과장을 통해 에로틱을 쫙빼고 코미디를 강화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냥 못만든 영화들 흉내를 진지하게 내버리잖아요. 관객도 눈치못챌정도로요. 크리스틴벨은 이장면 때문에 팬들에게 사과도 했어요 ㅋㅋ 저는 중반이후부터는 낄낄대면서 보기는했지만 어쨌든 실험은 실패인 것 같긴합니다. 의도를 설명해야 하는 농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2022.02.09 09:38
아하 그런 거였군요. 다 보고 난 후에도 이런 반전이 있었다니. ㅠㅜ
작정한 개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여럿 있어서 보면서 내내 의심(?)은 했는데, 또 말씀하신대로 너무 진지하게 적당히 못 만든 느낌이 드는 부분들이 막 섞여 있어서 잘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Lunagazer님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해봐도 '못 만든 영화 흉내를 의도한 코미디 영화인데 많은 부분을 실제로 못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2022.02.09 10:17
동감입니다. 이런 메타코미디는 천재들이나 하는 것인데 만드신 분들이 본인들의 능력을 과신한 것이 아닌가.. 저도 웃으며 봤다고는 썼지만 아유 웃겨 까르르 보다는 헐 이게 모야 ㅋ 가 훨씬 많았어요. 특히 그 마지막 카메오 장면에서요 ㅋㅋ 거기서는 살짝 욕이 튀어나올뻔했습니다 ㅎㅎ
2022.02.09 08:21
저 캐서롤말인데요 오트밀 죽같이 너무 맛없어보이던데.....
2022.02.09 09:42
한 번도 실제로 먹어본 적도 없고 실물 음식을 구경해본 적도 없어서... ㅋㅋㅋ 근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맨날 어디 크게 안 좋은 일 생기고 밥 챙겨 먹을 경황 없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많이들 가져다 주는 걸 보면 간편하게 한 끼 때우는 용도의 인간 사료(...) 같은 포지션의 음식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전에 설명을 읽어보니 대충 아무 재료나 본인 맘대로 때려 박아도 되는 요리라고 하더라구요. 만드는 사람 & 가족 좋아하는 재료를 메인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 & 가족들끼리 맛있게 먹는 음식인 듯.
2022.02.09 10:31
그거 자꾸 깨먹으면서 만들어서 나르는 것도 살짝 웃겼어요. 근데 그릇이 예쁘지 않았나요. 엉뚱하게 드라마보고 뽐뿌질을 당해서 며칠째 후보들을 놓고 고민중입니다 ㅎㅎ
2022.02.09 13:21
중간 중간 웃긴 장면도 있긴 했어요. 예를 들면 옆집 남자의 여친이랑 같이 꿍꿍이를 벌이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은 거의 다 웃겼던 것 같네요. 처음 만난 여자(주인공)한테 자기 죄를 갑자기 줄줄줄줄 왜 읊는 건데요.. ㅋㅋ 그리고 둘이 갑자기 자는 것도 되게 뜬금 없었어요. 남자가 좀 핫하긴 했지만.. 다음 날 앞치마만 입은 모습을 옆집 남자가 보게 되는 것도 웃겼네요.
주인공 트라우마의 이유 정말 심했죠. 그 정도면 다시는 남편 안보고 싶을 것 같은데 아니더라고요?
결말은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xxx가 무슨 힘이 그렇게 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