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봤던 홍자매 드라마 중 최고네요. 논란의 엔딩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봤습니다. 하지만 제겐 문제될 게 없었던 게, 그런 엔딩이 홍길동 이야기에는 내심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보기도 전에 그 결말이 막연히 마음에 들었죠.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재밌게 보았어요. 그 영화의 결말 역시 비슷합니다. 다만 그쪽은 상당히 허무주의적이라 쾌도 홍길동은 어떨지 염려 반 호기심 반이었지만요. 근데 잘 만들었네요. 멋진 엔딩이었습니다. 


드라마의 퓨전 스타일은 유머와 색다른 무협패션 간지를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 같더군요.  유머는 조잡하고 미술이나 의상도 기대 이하입니다만. 그래도 탄탄한 서사를 가진 각각의 캐릭터와 좋은 각본이 뒷받침되니 그 시도가 조잡한들 크게 문제가 되진 않네요. 홍자매가 제대로 칼갈았구나 하는 느낌.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떨어져나간 시청자도 많았다던데 저는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정말 재밌고,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주조연 캐릭터들이 정말 좋아요. 특히 장근석 캐릭터는 서브 남주가 아니라 공동 주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어요. 또 주연보다는 근석찡 성유리와의 달달 씬이 더 재밌고 좋았답니다. 강지환의 경우에는... 제가 사실 이 배우도 잘 몰랐습니다. 처음 봤어요. 그래서 첫 에피를 보고 배우 정보를 찾아보다가 성폭력 사건으로 활동 정지 상태인 걸 알고는 본격적으로 보기도 전에 마음이 짜게 식긴 했어요. 아, 이래서 배우들이 이미지 관리를 하는가 보다란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죠. 그래도 워낙 작품이 좋다 보니 또 빠져들어서 보게 되었네요.


성유리도 나쁘진 않았어요. 아니지, 박신혜가 아동에 가깝게 그려진 것에 비하면 한결 나았다고 해야겠군요. 또야? 또또 '맑고 착한 해바라기 캐릭터'라는 게 살짝 짜증났지만 외모빨 말고도 개성이 좀더 뚜렷하고 저 나름의 생각과 결단이라는 걸 하는 인물입니다. 다만 여기서도 눈치없는 인물로 나와요. 저런 눈치를 가지고 어떻게 길거리에서 떠돌이 장사치를 한다는 건지. 캐릭터의 일관성이 깨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삼각관계를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사실 여주보다는 서브 여주 캐릭터가 아주 좋네요.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그 개성을 '홍길동전'이라는 메타적인 극적 장치로 연결시킨 것도 아주 영리한 활용이었습니다. 근데 눈치없는 순진무구 여주와 영리하고 약아빠진 대립 인물이 홍자매 공식이라도 되는가 봅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에 한해선 불평을 할 순 없겠네요. 


오래전 드라마라서인지 요즘 드라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제가 한드를 잘 안봐서이기도 하겠지만) 중견배우들이 다수 눈에 띠었네요. 홍길동의 아버지로 나오는 길용우가 초반 산만하고 가볍게 떠있는 드라마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줍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또다른 주제 측면에서 이 배우의 존재감이 상당하네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외 왕 역할 배우도 괜찮았구요. 애초 주요 캐릭터들이 허투루 쓰여지지가 않았어서. 


쓰레기 결말이라고 회자되면서 작품 평가가 많이 깎이는 것 같던데 부당합니다 부당해.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못하는 서자로서의 설움과 한에서 더 나아가 활빈당을 조직하고 쾌도로서 활동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매끄럽고, 신분제와 기득권 타파라는 원전의 주제를 드라마적으로 아주 잘 구성했어요. 후반부 이데올로그들의 대결로 치닫는 것도 좋고요. 결말은 영화 판의 미로가 떠올랐습니다. 비극의 파토스를 주는 동시에 꿈과 희망이 있는 결말이었다고 말하겠어요. 다만 딱 하나 사소한 아쉬움, 맨 마지막의 현대 씬은 삽입하지 않는 것이 더 여운있고 좋았을 텐데요. 기껏 거기까지 결말을 밀어붙여놓고 그런 걸 슬쩍 끼워넣으면 좀 없어보입니.. 


선거 결과때문에 좀 우울했지만 많은 위로가 됐고, 작가와 작품에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이게 싸움의 끝은 아닐테니까요. 그리고 근석찡은 좋은 드라마좀 많이 찍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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