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구스 레이크'와 잡담

2022.01.31 23:06

thoma 조회 수: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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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오 이난 감독의 2019년 영화입니다.

역시 범죄 느와르 영화에는 '비'가 빠지면 안 돼죠. 첫 장면부터 비가 쏟아져서 마음에 딱 들었어요.

제목에도 들어가고 영화 배경이기도 한 호수 때문에 저 포스터가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고 사투를 벌이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네요.ㅎ(일반 보트는 많이 띄우는데 오리배는 등장 안 함) 

보면서 떠올랐던 것 몇 가지만 써 봅니다. 

영화 속 중국은 범죄 조직들도 회의하고 경찰도 회의하고 시장 상인들도 밤에 회의하고, 모임의 의미는 둘째치고 사람들이 어쨋든 모임을 갖고 활발하게 의논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우울한 톤인데 경찰들이 등장하는 장면만 살짝 웃겨요. 길거리에서도 반장이 모이라고 하니 열 명 이상의 경찰들이 헬멧 쓴 머리를 밀착시키면서 반장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웃기려는 장면은 아니었을 텐데 조금 웃겼고 사건 해결했다고 범인 시신 옆에 우루루 서서 단체 사진 촬영하는 것도 실소가 나오더군요. 

가게와 가게, 다가구 주택의 세대 사이가 완벽하게 차단되지 않고 통하게 되어 있어서 천이나 주렴으로 경계지어진 그 사이사이를 통과해 도주하거나 추격해 다니는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촬영이 많았습니다. 오래 전에 본 중국 무협 영화들에서 방과 방 사이의 커튼이나 가림천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던 장면들이 기억 났습니다. 일렁이는 빛과 펄럭거리는 천의 색상으로 미술 효과도 내고 대결의 묘미도 살리던 장면들 말이죠. 가림천과 빛과 바람과 대결자들로 아름답게 처리한 장면들요. 이 영화가 그런 무협 영화 정도로 천이나 주렴을 활용해 찍은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중국 특화된 촬영 기법 아닐까 멋대로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이 진흙탕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계륜미가 맡은 인물의 막판 고난은 불필요한 지점까지 표현하지 않았나 해서 불만이 좀 남았어요. 최근 영화들에선 다양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여 잘 안 나오는 장면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거북했습니다. 그 장면에 수배자가 나타나 돕도록 해서 결말의 연대에 개연성을 더 부여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그걸 감안해도 지나친 것 같았습니다. 

뜻밖의 사고가 없었다면 계속 폭력을 과시하는 걸로 약한 사람들 등이나 쳐먹고 사는 시시껍절한 깡패일 뿐인데 죽을 궁지에 몰렸다 해서 관객 입장에서 더불어 절박해지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그런 이입을 의도하지 않는 면도 크게 작용했겠죠. 유구한 역사를 가지는 이 장르 속의 참을성 없는 허세와 찌질함, 난폭함으로 박터지게 죽고 죽이는 인간들은 뒷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와중에 누가 살아남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예전만큼 범죄 느와르 종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더군요. 시대가 변했고, 변한 세계에 이 장르가 맞지 않는 것인지 그저 제가 나이 들며 변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사무라이'는 말할 것도 없고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까지도 보고 곱씹으며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진지하게 폼잡으려 드는 범죄자 영화들에 마음이 떠나는 걸 느낍니다. 모르죠.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 정도로 특별하게 말을 걸어올 영화가 있다면 또 홀려서 볼지도요. 

눈치보는 사진 한 장 올리고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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