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7 10:58
평소 없던 행복이 찾아왔을 때,
마냥 좋아하기 이전에 불안감이 슥, 자리잡아요.
제 경우엔
오랜만에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마음이 분홍분홍해질 때,
오래 우울했는데 어느 날부터 몸도 마음도 식습관도 건강해져서 내가 나 자신이 보기 좋을 때,
그럴 때 불안함을 느껴요. 이 행복이 곧 끝날 수 있다는.
(쓰고보니, 일상을 흔드는 '오랜만'이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호오..)
짐작컨데,
1. 정말로 그 끝이 왔을 때 낙차 때문에 너무 힘들까봐 미리, 너무 행복하진 말아야지, 라고 낙차를 조절하려는 (어리석은) 마음,
같기도 하구요.
2. 세상일은,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상대의 변심에 따라 그르쳐질 수도 있으니까,
혼자 빙구처럼 헤헤거리다가 바보되지 않으려고 역시 또 미리 방어하는 것도 같고요.
3. 뜻밖의 일을 겪고 우울했던 적이 있어요. 그 때 인생이 많이 휘말리고 망가졌었어요. 그 어두운 바닥을 겪고 나니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정말 한 순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발 한 번 삐끗, 에도 그 구렁텅이로 다시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 불안. (왜냐면 그 일도 정말 갑자기 어느 순간 푹 꺾이며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우울할 때 했던 행동들 (폭식이라든가) 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데
언젠가 한 번 그 '조심'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하고 나니
그렇게 '조심'하며 지키려고 했던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그 상태도 '균형'은 아니었구나,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게 균형일리 없어' 라는)
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개복치같은 인간이 된 데에 나름나름의 고만고만한 사건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믿었던 애인이 몹시 바람둥이였던 거나, 늘 내가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느낌이 들었던 첫사랑의 기억이나, (첫사랑이라니..부끄럽군요)
위에 얘기했던 우울증의 시간이나.
축제, 파티! 같은 기쁜 D-Day 도 참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와아. 그게 끝날 거라는 게 너무 견디기 힘들어요.ㅎㅎ (월드컵...축제...크리스마스...으악)
2017.07.17 11:06
2017.07.17 15:39
2017.07.17 13:22
불안한 감정도 분명 습관입니다 그것 또한 긍정과 부정 사이의 사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마음이 떠날까 불안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하면 그런 마음의 시간이 또 있으면 좋겠네요.
2017.07.17 15:43
2017.07.17 14:35
2017.07.17 15:36
2017.07.18 13:14
김영하 작가 신간에 글쓴님의 심리와 비슷한 내용이 나오네요. 꽤나 보편적인 심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췌)
행복감의 토로를 후회처럼 말하는 능력이 인아에게는 있었다. 그럴 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마치 과분한 행운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어서 서진은 늘 헷갈리곤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는 "여기 안 왔어야 하는데..." 라고 말하고 서진이 왜냐고 물으면 "지나간 날들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니까"라고 답하는 사람이었다. 관계에 대한 불안이 심한 서진으로서는 그녀의 후회하는 듯한 말투와 행복한 표정 사이의 불일치가 더 달콤했다. 그 달콤함을 더 만끽하고 싶어 서진은 어떤 대답이 나올지 짐작하면서도 이렇게 묻곤 했다. "나 만난 거 후회하니?" "후회해. 너를 안 만났다면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고, 다들 살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했을 거고, 다 참았을 거고, 참다가 그냥 죽었을 거고, 그럼 별로 억울할 것도 없었을 거고..."
2017.07.19 13:33
반가운 글귀네요. 위 인물과 비슷한 심리로..전 아주 맛있는 맛집은 안 가려고 해요;; 그러고나면 지금껏 평소에 먹던 것들이 성에 차지 않을 게 저어되어서..;
2017.07.18 16:56
반대로 이 행복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걸 알면 담담하게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유가 그런 행복과 평온을 말하는 것이겠죠. 대부분의 중생들은 그게 안 되니까 어정쩡하게 과거와 미래를 곁눈질하면서 현재의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고요.
2017.07.19 13:34
불교에선 대자유라는 말을 쓰는군요. 일희일비를 너무 잘 하는 것도 제 성정이에요. 님 닉네임 보니 괜히 생각이 들어서.. 허허.
2017.07.19 17:52
지금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라면 현재를 즐기시라는 말 외에는,,,, 불안감이 말처럼 없어졌으면 한다고 없어지는건 아니잖아요.
하는 일이나 취미에 집중하다보면 불안할 틈이 없지 않을까요. 전 요즘 기쁜 일 자체가 별로 없어서, "불안"할 정도로 좋은 시간이
부럽군요.
불안함이 완전히 없는 삶이 가능하긴 할까요... 결국 살아가면서 내가 어떻게 해도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하나씩 둘 씩 숫자와 덩치를 늘려가고 있는 걸 알아가면서 느껴야 하는 불안함도 늘어나잖아요. 외면하면 결국 본문에 쓰신 것처럼 낙차...에 더 큰 좌절을 겪게 될 게 빤히 보이니 마냥 나몰라라 할 수도 없고. ㅜㅠ
암튼, 불안함은 제 디폴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디폴트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