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어가 왜이리 넘쳐나는 거죠

2010.09.14 00:15

무밍 조회 수:3048

꼭 듀게가 아니라 어디서든 느끼는 건데, 점점 우리나라- 아니 제가 외국에 대해 잘 알진 못해요. 하지만 간접경험등을 통해 본 편린들만 봤을 때-에서는 전반적으로 '싫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너무 당연하고, 당당하고, 어떤 힘을 휘두르는 것 같은 행위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예전에 시트콤 프렌즈를 보다 좀 생소했던 것 챈들러가 개를 싫어한단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왜냐면 일반적으로 개란 ‘좋아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챈들러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자 모두 놀라며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죠. 싫어하는 사람도 물론 존중받아야 해요.
하지만 분명 “난 개 싫어” 라고 아무 의식 없이 말하는 우리나라의 동물보호수준은 모두 아시는 대로입니다. 전 이 문제가 서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장면이 연출될 만큼 생명들- 아기, 동물, 식물이나 어떤 일반론적으로 아름답고 보호해야 할 것들에 대해 혐오를 너무나 당당하게 표시하는 것이 뜨악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이게 갈수록 심해져서, 개를 키운다는 사람 앞에서 아주 시크한척 “글쎄, 난 개 싫어해.”라고 말하거나 옆을 지나가는 애들을 보며 얼굴 찌푸리고 “애들은 질색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오히려 개를 키우는 사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싫다는 사람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가끔 봐요.

왜냐면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동물이나 아이를 보호하고 싶으니까요.
이 이야기도 듀게에서 본 것 같은데 저출산 이야기가 주제였던가요?

닉은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나라 같은 유아 혐오 분위기가 팽배한 곳에서 무슨 출산 장려? 웃기는 소리다”라는 내용의 답글을 남기신 분이 있었어요. 전 굉장히 공감했었구요.

어디서나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 당당하게 배척해도 괜찮은 생물체 취급을 해도 사람들이 일말의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을 못 느끼니까요.


노인에 대해서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존중을 요구하고, 단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잘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그리고 “전 늙은이들이 싫어요”라는 말을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보면 분명 아이를 싫어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건 취향 문제가 아니라 예의 문제일 뿐입니다.

사회적으로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니까, 그런 사회에서 성장했으니까 어른들이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겁니다.
전 뭔가가 싫다, 혐오스럽다, 보기 싫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쉬운 행위가 되어가고 있는 게 무서워요. 그런 부정적 감정에 부딪혀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안으로만 꽁꽁 싸매게 되고, 커뮤니티에서 블로그로, 블로그에서조차도 자의식 과잉 같다, 누가 관심 가진다고~ 같은 반응에 부딪혀서 결국은 혼자 마음속에만 꽁꽁 싸매게 되고... 굳이 말하자면 일본에 많다는 폐쇄형 히키코모리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부정적 감정에 부딪혀 점점 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난 그거 싫어’ ‘보기 싫어’ ‘그런게 왜 좋아?’ 같은 반응이 나오는 데 대해 어떤 마음의 거리낌도 없이 일반화된다면 누구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겠죠. 전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하구요.
물론 싫을 수 있어요. 보기 싫고 듣기 싫은데 참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어떤 폭력성이 느껴질 정도로 누군가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는 행위까지 꼭 가야만 하느냐는 거죠.
물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분이나 일 면면이 ‘애 보기 싫으니까 글 지워’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죠.

제가 말하고 싶은 게 꼭 이번에 듀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것만도 아니구요. 그냥 이번 일 때문에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걸 쓰고 싶었을뿐....
단지 가수 A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타인에게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반려라면 적어도 그런 부정어를 다이렉트하게 내뱉을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갈수록 그런 것에 대해 무심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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