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4 07:50
밤늦게까지 친구랑 놀다가 04시즈음 헤어지고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약 8개의 지하철역을 지나야 하는 거리지만
마침 늘 신고 다니던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가방에는 아이팟이 이었죠.
선선하니 내가 딱 좋아하는 기온과 피곤하면 언제든지 택시를 탈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좋았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딱히 오늘 할 일이 없다는 것! 뭐 어제도 그러했고 모레도 그럴 테지만~
그렇게 구불구불 골목을 걷다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공원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엔 공군사관학교였고, 또 예전엔 액션스쿨이 있었고, 기상청 옆에 있는 커다란 공원.
좀 피곤하지만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이사 간 이후로 참 오랜만이거든요. 화장실이 가고 싶기도 했네요.
공원이 꽤 커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정말 많이도 바뀌었네요.
전에도 멋졌지만 지금도 아름다운, 오랜만에 옛 연인을 만난 느낌입니다.
계단에 앉아 공원중앙의 대운동장을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그렇게 일사분란 움직이는 사람 떼를 보고 있으면 왠지 무섭습니다.
대부분 노인들이네요. 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 게 사실인가 봅니다.
서른이 넘으면 배가 나온다고 하더니 내 배도 정말 나왔고, 그럼 나도 노인이 되면 새벽잠이 없어지려나?
에이, 말도 안 돼. 내가? 잠을?? 그런데 일사분란이란 말이 맞는 말인가???
그렇게 리모델링된 공원과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해가 뜰 때즈음 공원을 나섭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집으로 걷다보니 청년들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네요.
한-참 졸릴 나이에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이른 시각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생양치, LiveWhiteHand(날백수)스러운 생각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인형뽑기기계를 발견하고 뭐가 있나 다가가봅니다.
아- 이런! 말로만 듣던 랍스타뽑기기계를 드디어 라이브로 보게 되다니!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랍스타를 뚫어져라 봅니다.
기계 안 수조안에는 집게가 테이핑 되어있는 커다란 랍스타 네 마리가 맥아리없게 웅크리고 있네요.
그렇게 보고 있자니 랍스타들이 너무 가엾어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라고하면 거짓말이지만,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지금까지 천오백여곡을 랜덤으로 듣던 것을 멈추고 기분이 좋아질 만한 곡을 억지로 찾아 듣습니다.
내 선곡이 꽝인 것인지 불쌍한 랍스타들을 보고 내가 너무 감상적으로 변한 것인지 우야둥 기분은 여전히 나쁩니다.
좋디좋았던 나의 산책 막판에 이렇게 기분을 잡치니 얼마 전에 게시판에서 본 영화-황해관련 글이 떠오릅니다.
정확히는 그 글에 달렸던 댓글이 떠올랐네요.
영화 제작 현장이란 곳에서는 과정이 나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만고땡이란다. 이것은 나쁘다. 고쳐야 된다.
그럼 과정은 좋았으나 결과가 나쁘다면? 그럼 그 사람은 영화하지 말아야지. 재능이 없네~ 대충 이런 댓글이었던 거 같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집에 도착. 씻고 자야지.
평소 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닌데, 불현듯 일기가 쓰고 싶어져서, 그런데 당연히 일기장이 없어서 나도 바이트낭비란 거 해봅니다.
자- 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