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이 쓴 글

2022.02.10 17:37

Kaffesaurus 조회 수:410

퇴근길 버스안에서 박완서님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울었다. 만두박사 아들도 없는 데 만두는 왜 빚냐 하시면서도 만두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의 생명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쓰신 글을 읽고 운다.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을 깨운다. 그러면 언제나 둘중 하나가 생각나는데 아빠 장례하러 가던 버스안에서 업드려 우시던 엄마, 아니면 아빠 영정사진 앞에 앉으셔서 우시던 할아버지다. 그 슬픔이 너무 커서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딸이 아내보다 못한가보다. 그래도 씹을 것도 없는 냉면은 뭐 그리 먹느냐고 투덜거리던 매년 여름의 아빠 (엄마의 냉면이 너무 유명해서 여름이면 냉면먹으로 오시는 친구들 친척들, 여름 내내 냉면이었다), 날것은 전혀 안드시던 아빠 (동생은 매번 자기 회 안먹는다는 말 앞에 아빠 닮아서 라고 붙인다)는 기억한다. 살아계셨을 때 내가 아빠한테 해드린건 계란 후라이 뿐이었던 거 같다. 새삼스래 딸이 해준 음식한번 못먹고 새상을 떠난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태어나면 누군가와 헤어져야만 한다. 싸우고 양쪽이 다 선명하게 이제 끝이구나 지각하며 헤어질 수도, 아무 특별한 이유없이 무심해져서 사라질수도 있다. 네가 없는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이미 네가 없는 미래를 살고 있다. 아무 어려움 없이. 그런데도 죽음이 주는 아픔은 이렇게 다른 건 아마 그 명료성 때문이리라. 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날 동생한테 전화해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당황한 동생이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왔다. 순간 죽음이야말로 오직 한 해석이 가능한, 혹은 해석이 불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란 직업적 생각이 훅 지나갔다. 


'한말씀만 하소서' 기도 하면서 그 한말씀을 안해주시는 것 같은 신에게 화를 낸다. 그렇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것 안에는 그 한말씀에 대한 믿음이 전재한다. 


아버지 돌아가신뒤 나를 위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 사셨을면 한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여름에 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엄마는 생선이랑 감자를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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