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4 15:01
- 이게 그렇게 화제가 됐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이미 2019, 3년 전입니다. ㅋㅋ 에피소드 다섯개, 편당 한 시간 정도에요. 스포일러는... 실화잖아요.
(넷플릭스 대비 상당히 성의가 넘치는 HBO 포스터 이미지.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카피로 적어 놓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 실화... 지만 도입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체르노빌 사건 2년 후의 어느 날로 시작합니다. 먼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아저씨가 집에서 뭘 열심히 녹음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진실과 거짓, 거짓의 댓가 등등에 대해 이야기한 후 그동안 녹음해 놓은 테이프 여러개를 밖으로 들고 나가서 감시의 눈을 피해 숨겨놔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선 고양이에게 밥을 와장창 주고, 스스로 목을 매답니다.
다음은 체르노빌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바로 그 순간으로 점프합니다. 집에 있다가 우연히 폭발 장면을 목격하고, 직업이 하필 소방관인 남편을 현장으로 떠나보내고 불안해 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고. 다음엔 발전소 현장인데 뭐 당연히 엉망진창이겠죠. 책임자는 뻔한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 무의미한 지시를 내리며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구요. 정신 줄 놓은 책임자보단 그래도 상황 판단이 되는 부하들도 윗사람의 강력한 지시에 죽을 줄 알면서도 무의미한 뻘짓을 하러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닙니다. 그 외에도 뭐 쏟아지는 방사능 낙진을 보며 예쁘다고 좋아서 춤을 추는 불구경 남녀노소라든가, '불이 났는데 왜 환자가 아무도 안 실려옴?'이라고 궁금해하는 인근 병원 의사라든가. 사건 발생 당시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보이다가...
그 다음 날, 첫 장면에서 자살한 아저씨에게 전화가 걸려오죠. 체르노빌 관련해서 의사 결정 내려야 하는데 니가 자문이다. 뭐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당장 튀어와라.
이후로는 요 과학자 아저씨가 방금 전화한 싸가지 아저씨랑 짝이 되어 어떻게든 이 대재앙을 수습하고 또 그 원인을 밝혀내고 덧붙여 재발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고생의 기록입니다. 결말은 이미 처음에 제시됐구요.
(여기 가운뎃 분이 바로 드라마 속 대재앙들 원인의 현신을 맡고 계십니다.)
- 역사적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실존 인물이며 대부분의 사건 내용들이 실제 그대로 재현되어 있지만 장르는 호러입니다. 드립도 아니고 딱히 비유적 표현도 아닙니다. 근 몇 년간 본 중 영화, 드라마들 중 당당히 상위권에 올라가는 무시무시한 호러물이에요.
일단 1화의 체르노빌 폭발 직후 상황 연출이 정말 압도적입니다. 이게 실화라고는 하지만 그 사건 자체가 인류 역사상 아마도 1위, 어떻게 봐도 2위 이하로 내려갈 일이 없을 법한 무시무시한 사건이잖아요. 미칠 듯이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 속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어떤 상황 속으로 걸어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차례로 죽음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모습 자체도 무시무시한데, 그걸 또 압도적인 비주얼과 연출로 파워업 해서 한 회 내내 보여줘요. 요즘 사람들이 그냥 아무 데나 '코스믹 호러'라는 표현을 갖다 붙이고 좋아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이 드라마 1화를 보고 있노라니 저도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졌습니다. 이게 코스믹 호러가 아니면 뭐가 코스믹 호러겠어요. 러브크래프트 해산물들보다 몇 배는 무섭고, 공포스러우며, 압도적으로 절망적입니다.
그리고 1화가 끝나갈 때쯤에 등장하는 할배 한 분이 이 공포감에 결정타를 날리며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 주시죠. 그나마 좀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대책 회의에서, 한 사람이 제안한 주민 즉시 대피 안을 듣고난 후 구석에 앉아 있던 화석 비주얼의 할배가 일어나 주절주절 뭐라 말하다가 이렇게 선언하거든요. "이 도시는 봉쇄. 외부와의 연락 차단.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 걸 철저히 차단한다. 우리 국가의 영광을 위해!!!"
(호러씬입니다. 다들 즐겁게 춤을 추는 가운데 화면의 저 허연 게 눈이 아니라 방사능 낙진이라서...;)
- 이후 대략 3화까지 이어지는 사태 수습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수습을 가로막는 건 거의 저런 할배들입니다만.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 과학자 아저씨와 관료 콤비는 최선을 다 해 할 수 있는 일을 해가며 어찌저찌 가능한 선에서의 할 일을 다 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좀 멋진 재난 극복기... 같은 전개가 됩니다만. 여기서도 역시 호러 분위기는 여전한 게, 방사능 피폭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기도 하고. 또 사태 수습을 위해 계속해서 그 죽음의 현장에 사람들이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지붕의 흑연 제거조나 물탱크의 물을 제거하기 위해 투입되는 원전 노동자 3인조의 모습 같은 게 대표적이죠. 마치 '메트로' 같은 게임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인데, 이 쪽이 훨씬 압도적으로 긴장되고 무서운 장면들이었어요.
하지만 역시 가장 의미 심장했던 건 광부들 투입 대목이었죠. 극중에선 100명만 나오는데 마지막에 흘러가는 에필로그를 보면 총 400여명이 투입된 모양이고. 들어가면 거의 살아나오기 힘들 일에 제대로 된 안내도 없이, 끽해야 몇 달 월급 정도 밖에 안 될 보상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몰아 넣는 모습이 참...
웃기는 게. 결국 그 선택들 자체는 옳았다는 겁니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죠. 외국에서 가져 온 로봇들도 방사능 때문에 역할을 못 했고. 결국 사람을 투입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던 건 맞고. 그래서 더 갑갑하고. 근데 그 와중에 정부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시켜대는 데다가 보상은 하찮고 또 그러면서 자기들 책임은 다 부정하려고 하니...
(인민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캐릭터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작품의 기조가 감동보단 상황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 대체로 담백하게 보여집니다.)
- 마지막 4화와 5화는 긴장감이나 공포감은 조금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갑갑함이 채우네요. 왜냐면 여기서부턴 이제 진실 파악과 폭로 파트라서요. 5화는 한 에피소드의 거의 전부가 재판 장면입니다. 주인공 3인방(과학자, 관료, 그리고 서포트 과학자)이 하나씩 증언을 하며 체르노빌에 일어났던 일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소련의 총체적 부실과 문제점, 그리고 거짓을 반영한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나가고. 법정 장면들과 교차 편집으로 사고 직전 체르노빌의 상황이 보여지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형식인데, 사실 서두에서 보여줬어야할 장면을 빼다가 이렇게 클라이맥스에 써먹으니 지루해지기 쉬웠을 마지막화, 특히 법정 장면의 긴장감도 살아나고 씁쓸함도 배가 되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실제 영상들과 자막으로 드라마와 현실과의 차이점, 인물들의 후일담 들려주는 것도 적절했구요. 초반의 강렬함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깔끔하게 맺는 마무리였네요.
(증인으로 나와 원자로 작동 원리 교양반 수업 중인 주인공 아저씨. 캐릭터와 어울리기도 하고, 시청자들 보라는 것 같기도 해서 좀 웃겼... ㅋㅋ)
- 음... 그러니까 그냥 되게 잘 만든 드라마입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들면서 사실의 변형은 최소화하면서도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살려낼 방법을 잘 찾아냈어요. 그러니까 각본을 되게 잘 썼단 얘기죠. 사실 큰 그림을 볼 때 굳이 콕 찝어서 등장시켰어야 했나? 싶은 그 소방관 부부 이야기도 다 보고 나면 큰 그림만 보여주다 보면 놓치게 되는 실제 피해자들의 충격과 감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적절했구요. 그냥 시간 흐름대로 전개되지 않고 현재, 과거, 미래를 오가는 구성도 흥미 유발은 물론이고 체르노빌 사건의 실체를 더욱 빡치는 느낌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하게 '당시 소련이 이렇게 개판이었고 그래서 망했다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고민해볼만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적절했구요. 또 보다보면 의외로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잔혹한 볼거리는 최대한 억제하고 자제하는 태도가 보여서 더 좋았습니다. 대신 필요할 땐 아주 확실하게
(안 중요하면서 되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 좋은 연기 보여주신 제시 버클리)
- 이렇게 '그냥 다 좋았습니다.' 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굳이 더 칭찬하고 싶은 건 역시 배우들이었네요.
일단 가장 좋았던 건 스텔란 스카스가드였어요. 사실 맡은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보니 덕을 본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걸 이렇게 멋지게 살려낸 건 배우 공로로 봐야죠. 처음엔 그저 다른 놈들과 똑같은 무식하고 무자비하게 꽉 막힌 '높은 분들' 중 하나였다가, 현장에 가서 충격을 먹고는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결국엔 주인공을 강력하게 서포트하며 마지막 증언 장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변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였구요. 그걸 특유의 카리스마로 잘 살려준 것 같았습니다. 다 보고 검색해 보니 주인공 과학자에 비해 정보가 적어서 대부분 만들어내다시피 한 캐릭터라던데, 왠지 너무 멋지다 싶었죠. <- 암튼 맨날 아주 나쁜 놈 아니면 알고 보니 나쁜 놈(특히 라스 폰 트리에 영화들에서 ㅋㅋ) 하는 것만 보다가 여기서 이렇게 멋진 역할 하시는 걸 보니 더더욱 멋짐과 동시에 아들 놈들은 평생 아빠 못 따라가겠다 싶었구요.
(간지 폭풍!!!)
당연히 주인공 과학자 역의 자레드 해리스도 좋았어요. 이게 전형적인 주인공이자 영웅 포지션의 캐릭터인데. 이야기 흐름을 잘 보면 처음엔 걍 과학자라는 버릇 탓에 멋모르고 한 마디 했다가 등 떠밀려 목숨 내버리는 일에 끌려가고. 그 후로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결국 거짓말 해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계획을 만들어내며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또 마지막에도 사실은 이미 포기하고 거짓말을 결심했지만 그동안 적립한 죄책감 + 과학자의 자존심으로 역시 등 떠밀리듯 크게 한 번 지른 후 무너져가는. 말하자면 되게 소시민&소심인 히어로거든요. 그래서 대체로 과장 없이 소소하고 디테일한 연기로 인물의 고통과 심리 변화를 표현하는데 그 역시 좋았습니다.
(평범한 과학 덕후로 살고 싶었던 비극적 영웅님)
그리고 네임드 여배우가 둘이 나오죠.
사실 에밀리 왓슨의 과학자 캐릭터는 에... 뭐랄까. 확실히 연기는 좋았는데 캐릭터가 좀 요상했어요 제겐. 나름 정의감 넘치고 사명감 있고 뭐 다 좋은데, 되게 활약하는 듯 하면서도 요상하게 진짜 위험한 일, 진짜 부담스러운 일은 다 주인공에게 떠넘겨 버리는 인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뭘까 저 양반은... 이라고 생각했는데 에필로그의 자막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완벽하게 만들어낸 픽션 캐릭터라고. ㅋㅋㅋ 극중에서 이 분이 하신 일은 사실은 '그 외의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했던 역할들을 합친 거라고 설명이 붙던데. 그렇죠. 그렇게 만들어낸 가공의 캐릭터가 막 희생하고 큰 일을 하는 전개를 넣을 수는 없었을 테니.
(왠지 좀 캐릭터가 지나치게 하는 일 많으면서도 묘하게 얄밉다 했습니다. ㅋㅋ)
제시 버클리의 '소방관 아내' 캐릭터는 좋았습니다. 위에서 이미 말 했듯이 큰 그림에선 별 중요성이 없는 역할이고 그래서 다른 주인공들과도 완전히 따로 노는 좀 쌩뚱맞은 포지션의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평범한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로서 성실하고 믿음직스럽게 연기해서 충분히 정서적 울림을 줬던 것 같아요.
- 얼른 '더 와이어'를 마저 봐야 해서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걸 '재미'라고 표현하면 참 요상합니다만. 어쨌든 재미와 교훈과 감동까지, 좋은 각본과 연기와 연출로 잘 버무려낸 훌륭한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초반부터 중반까지 이어지는 꿈도 희망도 없는 아포칼립스풍 호러 전개가 압도적이었어요. 아무래도 정통극보단 호러를 좋아하는 제 취향 때문이겠지만요. ㅋㅋ 혹시 진지한 사회물 안 좋아해서 이걸 안 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보세요. 이런 호러 흔치 않습니다.
암튼 아직도 안 보신 분들 있다면 그냥 보세요. 2019년에 그렇게 크게 화제를 일으킨 이유가 다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뭣보다 짧구요. (쿨럭;)
+ 생각해보면 '다이하드5'는 정말 무례함이 극을 넘어 무시무시함에 도달한 문제작이었군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도 마지막에 체르노빌이 나오는데 거기서 벌어지는 일이란 게...; 러시아에서도 개봉은 했을 텐데. 그 동네 사람들 소감이 궁금해집니다.
2022.02.04 15:35
2022.02.04 16:21
근데 전 이게 그렇게 소련 욕하는 드라마 같지는 않더라구요. 그냥 관료주의에 찌든 사회라면 대략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물론 그 소재와 정도가 워낙 최악이긴 합니다)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봤고. 또 소련 정부의 오판 내지는 의도적 잘못에 대한 내용들은 대체로 사실에 근거해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결정적으로 상부 관료 몇몇이 엄청 빌런짓을 하긴 해도 수습에 동원되고 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다수의 소련 민중들은 대부분 훌륭함을 넘어 거의 영웅적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아무래도 주인공이다 보니 주인공에게 버프를 집중해주긴 하는데(확실히 현실보다 미화된 캐릭터더라구요. ㅋㅋ), 그 외의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열정적이어서. 전형적인 '보탬 안 되는 지배층 vs 영웅적 민중들' 이야기에 가깝구나... 라고 생각하며 봤어요.
물론 제 소감은 그냥 제 소감일 뿐이구요. 하하;
2022.02.04 20:50
그 자발적 영웅들은 참 씁쓸하더군요. 과연 저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소련 욕한다기 보다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MSG를 많이 뿌린 느낌이었다는...제 소감일 뿐이었슴돠...하하;;;
2022.02.04 16:30
2022.02.04 16:37
고르바쵸프가 나중에 회고록 같은 걸 쓰면서 이 사건이 소련 해체에 큰 영향을 줬다고 그랬더군요. 발전소랑 피해 입은 일대 수습하느라 몇 달간 쏟아 부은 돈이 1년 예산급이었다나 뭐 그랬나봐요. 그리고 사건 후 몇 년 안 되어서 소련은 흘러간 역사가 된.
2022.02.04 16:27
2022.02.04 16:37
사실 이기는 픽션이 별로 없다는 옛말이...
2022.02.04 16:27
저는 1회 보고 포기했습니다. 숨쉬기가 힘들어 지더군요. (진짜로).
스웨덴에서 체르노빌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아마 스웨덴 기상국 같은 곳이 외부에서 체르노빌 사건을 지각한 첫 기관중 하나일거에요. 스웨덴 대기에 갑자기 방사선 물질이 많이 발견되어서. 북부 지방 가축들은 몇년간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유산이 보통보다 높았다고 하더군요.
2022.02.04 16:43
맞아요 극중에도 그 부분이 나옵니다. 외부에 정보 통제하고 꼭꼭 숨기려고 했는데 스웨덴과 몇 나라들이 방사능 물질 때문에 눈치 채고 따져왔다고. 그래서 미국 위성에 사진 찍히고 어쩔 수 없이 외부에 공개하고... 실제 사건 내용을 보면 훨씬 더 커 질 수 있었던 일을 사람 목숨을 마구 던져 넣는 만행(?)으로 빠르게 해결한 거라고 하는데. 이걸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무시무시합니다.
2022.02.04 16:52
참고로 이 영화로 에미 상을 두 개 받은 제작자/각본가 크레이그 마진은 토드 필립스의 행오버 속편들 각본 맡은 경력이 있었지요. 같은 해에 한 쪽은 [체르노빌]을 내놓았고 다른 쪽이 [조커]를 내놓은 걸 생각하면...
아, 그리고 두 작품 다 근래에 갑자기 확 상승한 아이슬랜드 여성 작곡가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가 맡았습니다. 전자로 에미와 그래미 상을 받고 나서 금세 후자로 골든 글로브, BAFTA, 그리고 오스카, 그리고 또 그래미를 휩쓸었지요. [체르노빌]의 사운드 디자인에 가까운 스코어 제작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에서 며칠 동안 음향 수집을 하기도 했지요.
참고로,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기도 한 <Vichnaya Pamyat>는 실제 그 동네 추모 성가랍니다.
2022.02.04 19:41
결론은 '행오버' 시리즈는 명감독의 산실이다... 는 아니겠죠. ㅋㅋㅋ
음악도 인상적이었고 뭐냐 그 방사능 계측기? 음향을 적재적소에 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짜 감독님 본격 호러 한 편 꼭 만드셔야...
2022.02.04 20:53
조커는 정말 불쾌하고 어수선하고 이상한 영화였지요. 대개 이런 영화들은 창의적이기라도한데 이건 뭐...
2022.02.04 16:56
베리 키오간이 후처리반으로 투입되는 4화도 나름 인상적이었는데요. 뒤늦게 소개된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가축이나 반려동물까지 가차없이 살처분하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를 다시 곱씹어볼 기회를 주었달까요.
2022.02.04 19:42
그 분을 분명히 어디선가 봤는데!! 하고 찾아보니 '킬링 마이 디어'였더라구요.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연기 톤은 비슷했던 것 같구요. 그 쪽에서도 이 쪽에서도 인상적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제가 개를 좋아해서 그것도 되게 보기 힘든 장면이었어요. ㅠㅜ
2022.02.04 17:36
그냥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라는 문장만으로는 확실히 체감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아주 온몸의 감각이 얼얼한 수준으로 체감시켜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표현하신대로 엄청난 역대급 호러물입니다.
2화였나 초반에 윗대가리들이 긴급회의랍시고 모여서 서로 하는 말들을 듣다가 너무 빡치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잠깐 정지시키고 바람 쐬면서 진정해야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
주인공을 연기한 명배우 3인방은 역시나 믿음직스러웠고 확실히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캐릭터는 처음부터 좋은 캐릭터인 것과는 별개로 기시감이 들었는데 마지막에 자막으로 설명나오는 부분에서 아 역시 그랬구나 했습니다. 윗분 댓글에서 언급했듯이 베리 키오건도 인상적이었고 제시 버클리라는 배우이자 만능 엔터테이너를 처음 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네요. 이 작품 이후로 영화 쪽에서 대활약 중이죠.
2022.02.04 19:48
정말로 1화 끝나갈 때 쯤 제 생각은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호러 드라마가 있었다니!' 였습니다. 공포 영화스러운 호러도 있고, 꽉 막힌 시스템이 권위주의로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벌이며 사람들 사지로 몰아넣는 모습에서 오는 호러도 있었구요. 말씀하신 회의 장면도 사실 빡침도 빡침이지만 무서운 장면이었어요. 우리 나라라고 저런 일 없으란 법이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제시 버클리는 제가 본 게 많지 않은데 이걸 보고 찾아보니 '파고' 시즌 4에도 나왔더라구요. 이 시리즈 은근히 고퀄 배우 모음집이네요. 허허.
2022.02.04 23:51
아직 영화계에서도 나름 잘나가는 배우들이 대거 TV 시리즈에 출연하는 유행(?)을 선도했던 작품 중 하나가 파고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이름에 무게감이 있었던 빌리 밥 손튼과 한창 주가 높이던 마틴 프리먼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었죠.
당시 막 오스카 수상하고 위상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매튜 맥커니히와 우디 해럴슨이 출연한 트루 디텍티브도 있었고 몇년 뒤 니콜 키드먼, 리즈 위더스푼의 투톱에 로라 던 등이 가세한 빅 리틀 라이즈도 상당한 충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젠 스트리밍 오리지널 시리즈 바닥이 커지면서 대작 영화급 감독, 배우들을 기용하는 일은 대수도 아니게 됐죠.
2022.02.04 19:26
2022.02.04 19:49
네. 뭐 막말로 5공 때 한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을 테니까요. 지금의 한국은 그 정도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예전에 원전에서 떨어뜨린 연료봉(!)을 거의 열 시간 동안 혼자서 집게로 집어 치웠다는 원전 노동자 뉴스가 뇌리를 스치며... (쿨럭;)
다이하드는 뭐. 그냥 슬플 뿐입니다. 시리즈 팬이었는데요. ㅠㅜ
2022.02.05 05:01
전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청와대에 있고 세월호 침몰이 아니라 월성 원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청와대에서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2022.02.04 19:32
2022.02.04 19:50
전 블랙호크다운은 화딱지 난다기 보단 되게 피곤했습니다. ㅋㅋ 극장에서 당시 새로 도입된 사운드 시스템과 함께 완전 몰입해서 보긴 했는데 다 보고 극장을 나오니 삭신이 쑤시고 결리는 느낌이었던.
2022.02.04 20:48
쓰신 글을 읽다 보니 보고 나서의 감동이 기억납니다.
앞 부분을 볼 땐 특정 국가를 이렇게 엿먹여도 될까 싶을 정도였는데 계속 보다 보니 드라마가 짚어 주는 이 국가의 기반인 인민들에 대한 존중에 뭉클했습니다.
역사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기반의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느 근처인가 생각해 보게 되는 드라마였어요. 만든 분들께 경의를.
2022.02.04 20:58
소련정부와 시스템의 무능은 지적하면서 인민들의 영웅적희생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미국이 러시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엿먹임이 아닐까요ㅎㅎ 역사가 하지 못한 부분을 해냈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는 조금 건조하게 사실만 전달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련이 바보 짓을 한 건 맞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바보로 만들어서 시청자들이 열받게 만들고 과학자가 절대선인 것처럼 묘사해서 나중엔 '이게 원전 위험성 영화인지 냉전 시대 미국 선전영화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말씀하신 (묘하게 얄미운) 픽션 캐릭터도 마찬가지로요. 다큐가 아니란 점은 이해하지만 양념을 지나치게 친 맛집같은 느낌?
그래서 전 이 작품의 유명세와 언급하신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높게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