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 먼저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이해해주세요.)

연휴 기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가을날의 재회'라는 이름으로 무성영화 <선라이즈>부터 90년대 에릭 로메르의 계절 이야기 시리즈까지 영화사에 남는 걸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 기획전은 10월 21일까지 계속된다. 이 기획전에서 일본의 거장 나루세 미키오의 네 편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 이번에 상영되는 <흐트러진 구름>, <산의 소리>, <만국>, <부운>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이 글을 읽고 <흐트러진 구름>을 한 명이라도 보러 갈 수 있도록 정보를 주기 위해서이다. 나도 예전에 영화 시작 1시간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서 상영 소식을 알고 영화를 본 행운을 누린 적이 있다. 이 글을 보고 그런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흐트러진 구름>은 오늘 오후 2시와 10월 8일 저녁 7시에 상영된다. 이 영화를 봄으로써 연휴를 멋지게 마감할 수 있을 걸로 생각된다.

나루세 미키오의 유작이자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흐트러진 구름>에 대한 나의 애정을 간단하게 얘기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일단 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부분에서 나오는 동영상이 바로 <흐트러진 구름>이다. 얼마 전에 작성했던 '지금 이 순간 영화 베스트 10' 리스트에도 이 영화를 포함시켰다. 나는 이 영화를 필름으로만 8번 봤고 DVD로도 한번 봐서 총 9번 정도를 봤으나 이번에도 보러 갈 생각이다. 그 정도로 미치도록 사랑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나 아직 다 못 써서 못 올리고 있다. <흐트러진 구름>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한 편이자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멜로드라마 중의 한 편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가장 위대한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해본 적이 있다. 나루세 특유의 간결하고 미묘한 화법을 통해 이 영화는 거의 추상화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무성영화 시기에 영화를 시작한 감독답게 나루세는 이 영화에서 그가 무성영화 시기부터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쿨레쇼프 효과의 극단적인 실험작이라고 할 만큼 '얼굴'(특히 여주인공 유미코의 얼굴)의 반응과 효과에 주목한다. 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와 같은 '얼굴'에 관한 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사 없이 진행되는 시퀀스에서도 나루세의 천의무봉의 솜씨를 볼 수 있다. 그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나루세는 그가 영화의 대가임을 입증한다. 내가 이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영화만큼 세련된 화법을 가진 작품을 지금껏 몇 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면 볼수록 이 영화의 모던한 감각에 감탄하게 된다. 이 영화보다 30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화양연화>가 생각날 정도이니까 말 다 했다. 실제로 왕가위는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에 대한 애정을 밝힌 적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흐트러진 구름>도 <화양연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쪽이다. 히치콕의 서스펜스에 열광하는 나로서는 '서스펜스 멜로'라고 부를 만한 <흐트러진 구름>에 열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남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서로 가까이 가고 싶으나 가까이 갈 수 없는 그 인간적인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꽂히는 작품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흐트러진 구름>은 그런 작품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이 영화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소문은 있었으나 <흐트러진 구름>이 아직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으로 출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 빨리 출시되어서 이 위대한 걸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흐트러진 구름>이 상영될 때마다 알릴 것이고 언제까지나 이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로 남을 것이다.
P.S: '가을날의 재회' 전체 상영작과 상영작 소개를 보실 분들은 다음 링크로 가서 보세요.
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780&star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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