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는 사실은 케이블 드라마죠. 그래도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기도 하고 세 드라마가 미묘한 공통점이 있어서 제 안에서 왠지 한통속으로 엮여집니다. 구경이를 빼면 OTT 붐을 타고 야심차게 쿠팡플레이, 애플TV에서 오리지널로 런칭했습니다. <구경이>는 이영애, <어느날>은 김수현과 차승원, <닥터브레인>은 김지운과 이선균. 오리지널 OTT 드라마들은 제법 수위도 있는 편입니다. 셋다 출발은 썩 괜찮은데 끝에서 망가지는 경향이 있고 이런 면에서 닥터브레인이 고만고만한 가운데 일관성을 유지하는 편이긴 합니다. 한국발 장르물이 나와준다는 건 반가운 일이고 다들 취향만 맞으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끝까지 볼 수 있어요.



개인적인 애착이 가는 건 <구경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1년에 본 것 중 가장 즐겁게 보기는 했어요. 이영애님이 탐정으로 나온다고 해서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애니메이션 인트로에 슈게이징 주제곡이라니 정신이 확 들더군요. 연쇄살인범이 나오지만 적당히 유치하고 가벼운 분위기도 좋구요. 여성 세 명이 주연인 드라마이면서 동성애 코드가 강하게 들어 있어서 취향이 너무 분명한 게 실패 요인이지 않나 싶네요.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방식이나 개그도 주류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것 같구요. 이영애라는 이름값에 비해 처참하게 망했는데 주류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애매하고 미묘하게 불편감을 주는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공중파보다는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이런 게 케이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어요. 


작법상으로는 셋 중 가장 세련되지 않았나 싶고 초반에 잘 설정한 분위기를 비교적 잘 유지하는 편입니다. 분위기가 <보건교사 안은영>과 되게 비슷한 면이 있는데 잘 회자 되지 않는 건 아쉽네요. 전 안은영보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각본이 중후반 즈음부터 급격하게 각종 밑밥들을 소화하지 못하는 게 티가 나다가 최종화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모습이어서 아쉽습니다. 


여기서 연기로 이득을 본 건 이영애가 아니라 20대 초반의 여성 연쇄살인범 역할을 맡은 김혜준이에요. 이영애보다도 김혜준이 나올 때 드라마가 생기가 있고, 비인기 드라마지만 그래도 끝까지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이 배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이 분 나오는 건 적어도 1화 정도는 챙겨 보게 될 것 같아요.



<어느날>은 전체적인 완성도는 셋 중 제일 높지 않나 싶어요. 소재는 어쩌면 평범하기는 한데 전반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린 준수한 장르물이었습니다. 오리지널 OTT 드라마라는 걸 강조하려고 그런 거 같은데 1화에서 뜬금없는 섹스신이 민망하기 짝이 없었긴 해요. 이 드라마도 마지막 두 편에서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흐름 자체가 나쁘기 보다는 두 화 정도 더 남은 걸 압축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장르적인 밀도면에서는 한국발 OTT 드라마 중에 손에 꼽을만 하지 않은가 싶었네요. 영국 드라마가 원작이고 쿠팡 플레이에서 서비스 되고 있구요. 웨이브에도 더나이트오브로 리메이크작이 서비스 되고 있네요. 


이 드라마에서는 차승원님의 연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최근의 마실장이나 싱크홀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계속 등장하시는데 캐릭터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잡지 않으셨나 싶네요. 반복성이 있기는 해도 소화력이 아주 좋구요. 연기력으로는 지금이 절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김수현은 한국 최고의 찐따 연기 장인이 아닌가 싶어요. 찐따에 있어서 이만한 리얼리티를 구현한 연기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 대 때려주고 싶더라구요.



<닥터브레인>은 어쩌면 김지운이라는 이름 때문에 제일 기대를 받을 수 있었던 물건인 것 같네요. 무려 '애플'TV 오리지널이구요. 이걸 못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래도 저는 끝까지 보기는 좀 괴로운 그런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정서가 너무 2000년대 것이에요. 이야기 흐름이나 세트, 곳곳에 깜짝 출연하는 배우들 까지 과거 김지운이나 박찬욱이 맹활약 하던 시절의 정서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게 그 때는 되게 신선하고 멋져 보였는데 이걸 요즘에 보려니 너무 힘들었네요.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대사였구요.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앞세우고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척 하면서 과학 무지렁이인 제가 보기에도 말이 안되는 설정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것도 딱 그 시절 갬성이죠. 어쩌면 변하지 않는 김지운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저랑 김지운은 예전부터 미묘하게 잘 안 맞긴 했어요. 마지막화에서는 중반을 넘겨 스킵스킵하며 내용만 확인했네요. 마지막 장면까지 일관되게 지루했어요. 감독과 제작사 이름값을 생각하면 좀 너무 아쉽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캐스팅 실패가 큰 원인이 아닌가 싶구요. 이선균은 괜찮았는데 조연들은 늘 하던 걸 하거나 새롭긴한데 소화를 못하거나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랬습니다. 그래도 감안하면 자체적인 완결성은 제일 갖추고 있지 않은가 싶고 올드한 갬성을 감안하면 몰입감이 나쁘지 않은 구석이 있어서 끝까지 볼 수는 있었습니다.



쓰다보니 역시 재밌게 본 순서대로 써졌네요. 과연 한국 OTT 오리지널 드라마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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