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5 02:17
저 팀장 짤리고 인사이동 당했습니다. ㅠ.ㅠ
이게 좌천이냐 피신이냐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네요.
3주전쯤 고참 부장이 우리팀으로 올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분도 좀 사연이 있는데, 하여튼 제 입장에서는 고참 부장이 팀원으로 올리도 없을뿐더러 팀원으로 오면 더 힘들어질테니 내가 팀원으로 강등당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연말에 본사 갔더니 이미 소문이 났더군요.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건 직속상사인 부사장이 워낙에 괴팍한 사람이라 '야.. 가팀장이 뭘 잘못했다고 팀장을 갈아치우냐' 라는 소리들을 들었다는거..
그런데, 인사발령이 떴는데.. 제가 아에 다른 팀으로 이동이더군요.
5년전에 하던 업무로 복귀입니다. 웃기는건 저는 전혀 들은적이 없는데, 공장의 몇몇은 제가 복귀할걸 미리 들었다고 하더군요.
1월 1일부 발령인데 31일에 인사발령이 떴고, 뜨자마자 주말 지나고 회의 하자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원래 회사에서 스페셜리스트 취급을 받는 업무를 오래 오래 했었고, 이 업무가 회사의 철저한 비주류라 승진도 잘 안되고 고과도 평범하게 중간만 주는... 얇고 길게 가는 포지션이었습니다. 사실 뜯어보면 별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저 업무는 어려운거야.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라는 생각을 하는지라... 평가를 하는 관리자들도 '얘가 무슨 일을 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일을 잘하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빵꾸는 안내는 것 같네' 정도 밖에 평가를 못했었습니다.
이 업무를 벗어나려고 7년을 노력을 해도 못 벗어나다가 우연히 기회가 되었을때 탈출했지요.
제가 팀 이동을 한다고 회사바낭글을 썼을때도 댓글에 '이동하는 부서도 주류가 아닌것 같은데, 이동하지 말고 거기서 길게 가는게 낫지 않냐..' 라고 달렸던게 기억 납니다.
제가 부서이동을 한 사이에 '그분'이 퇴사를 했고, 업무를 이어 받았던 후배도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해버려서 공장에 이 업무를 하는 사람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끔 공장 후배들이 업무 물어보려 오기도 했었습니다만..
대충 돌아가는 상황 보니, 부사장이 저를 맘에 안들어서 방출시켰고, 제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자 공장에서 옳타쿠나 하고 채왔구나 싶습니다.
공장 입장에서는 공장장보다 고참인 정년 몇년 안남아 일 벌리고 싶지 않아 하는 팀장을 제가 이전에 일하던 팀으로 보내고, 공장에서 할줄 아는 사람이 없는 업무 '전문가(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저를 데려왔으니 남는 장사였나 봅니다. 정작 저는 방출당하고 트레이드 시장에 올라갔다가 팔렸다는걸 전혀 몰랐.... (...)
하여튼, 저는 1월 1일 시무식 끝나자마자 현업 여기저기서 기다렸다고 검토해달라, 해달라 하는 업무를 들고 옵니다. 하.... 이것들이 나 5년만에 복귀라고..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확인을 좀 해야 일을 하지 않겠니..?
아니 발령은 1월 1일자인데 31일에 인사발령 뜨자마자 팀장이 전화해서 업무분장하게 잠깐 보자고 하더니 이 업무를 할줄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애들한테 나눠줬는데 애들이 할줄을 모르더라 라고 하소연을 합니까.. 다들 제가 기분이 안 좋을거라는건 안중에 없는 듯.. 바라는 건 많고..
뭐... 제가 이렇게 강등/이동 당한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다양합니다.
이전 부서에 옮겨온 차장은 속마음은 어떻든 겉으로는 '하.. 왜 나를 부사장 밑으로 끌어들이고 전)팀장님은 탈출해요~~ 너무해요요~ ' 하고 있고요.
예전 제가 신입시절 지도사원이었던 선배 부장님은 '잘왔어.. 지금 회사 분위기에서 그 부사장 밑에서 팀장 해봐야 욕만 먹고 스트레스만 받지.. 여기서 조용히 있는게 나을거야' 라고 위로를 해주시고..
연구소에서 스마트 팩토리, AI, 빅데이터 하는 후배들은 '아이고 부장님.. 지금까지 공장에 카운터파트가 없었는데 와주셔서 든든합니다.' 라고 하고요..
(아니 근데 내가 일에서 손뗀지가 5년인데 무슨 빅데이터고 AI야... 그게 뭐니..?)
제가 예전에 썼던, 폭탄같은 팀원은 '봐라.. 팀장이 그렇게 FM 대로 하려다가 쫒겨났다. 회사는 FM 보다는 나처럼 불법/탈법을 저지르더라도 결과를 빨리 내는 것을 원한다' 라고 받아들이네요. 하하하... 사실 이 친구 말이 맞습니다. 저는 인사팀이랑 부사장한테 "얘 여기 있다가 큰 사고 친다. 다른 업무로 빼던가, 이 친구가 하는 업무방식이 옳다고 보면 제가 여기에 관리자로 있으면 안된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를 뺏으니 이 친구말이 맞는거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큰 사고 터트릴 것 같은데, 사고 터지기 전에 탈출해서 다행일지도.....
이틀 지났는데 기분은 참 X 같은데...
복귀하고 보니 담당자가 없어 업무 프로세스가 완전히 무너져 있어서 이거 다시 세우는 것도 일이다 싶고..
폭탄같은 팀원과 괴팍한 부사장에게서 이제 스트레스 안 받겠구나... 라는 장점이 있겠지만.
이전에는 기획업무라 업무 스케줄을 제가 조정할 수 있었고, 퇴근하면 연락 안왔지만 지금은 공장에서 24시간 365일 전화 오겠구나... 라는 단점이 생겼네요.
자리 옮기자 마다 이틀간 정신없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다가.. '에잇 나 내일 쉴래!' 하고 연차 냈는데...
내일은 오랫만에 구직사이트 이력서나 업데이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가 내일 아빠 쉰다고 좋아해서 틈이 날까 모르겠지만.
2022.01.05 06:25
2022.01.05 17:00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이라 주말에 어디 멀리 간다고 해도 불안불안해 하는 분들이라 교육이나 연수기회를 받아줄지 모르겠네요. ㅎㅎ
2022.01.05 12:59
2022.01.05 17:00
제가 팀장일때 사인한거 들이대면서 책임지라고 하진 않겠죠..
2022.01.05 13:52
누가 머래도 저는 가라팀장님 편입니닷!
2022.01.05 17:00
감사합니다.
2022.01.05 16:34
지금 당장은 기분 나쁘시겠지만, 장기적으로 지금 조직에 오래 계실 전망으로 보면 괜찮은 게 아닐까 싶네요. 물론 저야 글만 보고 드는 생각이라 한계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화이팅입니다!
2022.01.05 17:01
지금이야 당장 괜찮겠지만... 몇년후에 윗분들 나가시고 후배들이 파트장, 팀장으로 오게 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네요.
2022.01.05 16:54
가라님의 업무를 개인이 아닌 팀으로 하는 것에 대해 준비를 해보세요.
스스로 체급을 키우는 것도 지금 연차에 해볼만한 도전일 것 같아요.
이력서 업데이트도 하신다니, 안되면 말구 정신을 가지고요.
5년간 다른 사람이 어떻게든 그 업무를 채워나갔으니,
가라님의 부재시에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팀으로 하는 업무라면 해치우기도 쉽지않죠.
팀장의 경험도 있으니, 팀장에 적격이구요.
2022.01.05 17:03
이 업무가 원래 팀이었다가 파트로 쪼그라들고 다시 파트도 없어지고 다른 파트랑 통합된 역사가 있습니다.
윗분들이 가늘고 길게 가면서 밥그릇 챙길 욕심에 사람이 나가도 충원 안받고 계속 인원은 줄어들어도 괜찮다고 하니 조직이 없어지더군요.
지금 회사가 생각하는 적정 인원은 딱 2명 입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죠. 이번 이동이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게 될 겁니다.
이번 이동이 좋은 일이 될 수 있는 판은 이미 벌여져 있는 것 같은데요. 가라 님이 뼈를 갈아넣으셔야 되겠지만...
맡은 직책이 팀장으로 불리느냐 아니냐 보다는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느냐가 실제 지위를 결정하죠.
회사에서 좌초한 부서를 구하려고 가라 님을 특파한 것 같은데 잘 구해내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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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빅데이타나 AI 관련해서 잘 모르겠다 싶으면 회사에 연수 및 강의 보내달라고 해서 회삿돈으로 미래산업기술을 익히면
가라 님의 개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닐까요? (안 보내주면 강사를 초빙하거나 책이라도 사달라고 하시고..)
제가 인사권자라면 이동한 부서에서 가라 님이 어떻게 해 나가시는지 관심을 갖고 볼 것 같아요.
(평가자 입장에서는 올린 사람보다 내린 사람이 마음에 걸리는 법이라...)
연차는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것 같은데... 결석이나 지각은 그 사람의 의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거라서요.
이런 상황에서 의욕이 생기긴 힘들겠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과를 보여주면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