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21:02
2020년. 남궁선 감독작이고 왓챠에서 봤어요.
미혼의 직장 여성이 생각지 못한 임신을 함. 여기엔 우리 모두 상상할 수 있는 기본값 내용이 있습니다.
평이 좋아서 그 뻔하기 쉬운 내용을 어떻게 다루었나 호기심이 있었는데 왓챠에 올라와 바로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멀쩡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감당을 못하는 남친은 직장 잡고 조금 경력이 생기면 미래에게 '왜 나를 나쁜 사람 만들지?'라고 한 직장 상사처럼 될 것 같고, 더 나이 들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면 '인간의 문제는 생각이 많은 것이고 돼지처럼 생각 없이 사는 게 좋다.'라고 말하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될 것만 같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본인이 아무리 그 사람들을 싫어한다 해도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힐 때 도움 받기도 하면서 별 생각없이 살다보면 자기 주변에 있는 자기가 봐온 사람처럼 살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이 남친은 보호 속에서 의존적으로 자란 평범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으니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미래라고 다르기는 어렵습니다. 제목이 십 개월의 미래,이지만 사실상 아이를 키우게 되면 십 년의 미래, 이십 년의 미래가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미래는 '몇 달 전과 나는 똑같은 나인데 사람들은 똑같이 안 본다'라고 합니다. 개인이 아닌 존재로서의 나를 최초로 받아들여야만 하니 충격이겠지만 이 최초의 충격이 지나면 이제 그의 세상은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몸이 익어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익혀버리듯 미래의 삶도 그가 봐온 주변의 삶에 영향을 받고 비슷해지기 쉬워요. 스쳐지나는 중학생이 미래의 배를 보고 놀리다가 욕을 먹자 '아줌마 애기는 나처럼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본인을 소재로 악담(?)을 하는데 마치 막연히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현실을 일깨우러 저승에서 온 사자와 같았습니다.(이거 좀 한 해 마지막 날과 어울리는 멘트네요)
영화는 '십 개월'로 국한하여 경력과 인간 관계와 몸의 수난이라는 공격에 직격탄을 맞는 여성의 위치. 여자라면 당연시 되고 기본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취급 받는 이 수난을 2021년 바로 이웃에 살 것 같은 젊고 미래가 있는 미래라는 여성을 통해 확인사살시키는 영화였습니다.
미혼 여성의 임신으로 발생하게 되는 온갖 상황들을 과장 없이 적절하게 표현합니다만 그 적절함이란 것이 당사자에게는 지축이 기운 듯한 괴이한 현실입니다. 몸에 극심한 변화가 오는데 세상은 임신 주체의 영혼까지도 바꿔야 한다는 압력을 줍니다. 이 문제를 깊게 파는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건드려가며 심각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2021년 톤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미혼이시라면 호러물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인생의 보물이죠. 이 영화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2021.12.31 21:07
2021.12.31 21:21
큰 무리수 두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서 교훈적이지만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주인공이 연기나 외모가 다 좋았습니다. 잘 하는 배우가 많네요.
2021.12.31 21:12
올해 극장에서 본 유일한 한국영화였어요. 사실 올해는 한국영화를 많이 안 챙겨봤는데... 그래도 이 영화를 보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과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도 봐야겠네요.
2021.12.31 21:24
잘 보셨어요.ㅎ
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봤고(추천드립니다.) '나는 -'은 웨이브에 있어서 조만간 보려고요.
2022.01.01 01:17
다른 영화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람이 현실성 0%의 위험한 사상의 영화라고 열변을 토하던데 참 그 글 보면서 애쓴다 싶었습니다 ㅎㅎ
분명히 웃겨야하는 상황인데 보다보면 웃음이 나오다가 다시 쏙 들어가죠. 주인공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새 직장 면접보러가는 씬에서 면접관 중의 한 명으로 감독님이 카메오 출연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 장면도 진짜 웃픕니다. 그게 여기서는 문제가 안될꺼라고 생각하셨나요? 하면서 다들 어색하게 하하하 하다가 "아 X발 지금 뭐하는 거냐"하고 주인공 혼자 한숨쉬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편집 흐름이 참 좋았어요. 직후에 말씀하신 그 중학생 씬이 이어지죠.
최성은 배우는 참 좋은 신인을 발견했구나 하면서 검색해보니까 시동이라는 영화에도 나왔었더라구요. 앞으로 활약 기대됩니다. 친구 역할로 나온 유이든 배우도 참 간지나고 진짜 좋았어요.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로 나온 백현진 씨는 배우가 본업이 아니라는게 참 신기합니다. 마지막 출산하는 씬에서 "아니야! 그렇게하면 다시 들어가버려!" 대사처리가 너무 대단해서 VOD로 몇번 돌려봤습니다.
thoma님 감상글들도 항상 잘 보고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22.01.01 10:42
임신을 치워야 할 문제로 생각하는 직장이나 전직장 후배, 중학생 등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참 비우호적임을 자연스러운 소재와 타이밍으로 잘 드러낸 것 같습니다.
최성은도 잘 하지만 유이든 배우 매력 있었어요. 둘이 같이 나오는 장면이 제일 편안하고 좋았어요.
백현진 배우는 연기하는 걸 재밌어하는 게 얼굴에서 느껴져요.ㅎ
부족하고 편향된, 개인적 인상 위주의 짧은 감상인데 LadyBird 님의 관련 지식 풍부한 관심 댓글에 감사드려요.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생기는 새해되시길 바랄게요.
2022.01.01 10:48
백현진씨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서도 아주 강력한 연기 보여주시는데요. 여기서 또 만나뵙고 반가웠... 는데 처음만 나오는 게 아니라 출산씬까지 나오는군요. ㅋㅋㅋㅋ 캐릭터 하나 잡으시고 그 연기로 다방면에서 써먹는 것 같지만 그게 워낙 압도적이네요. 김창완씨 이래로 오랜만에 뮤지션 출신 연기파(?) 배우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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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원래 보던 영화 마무리하고 티비 끄려다 확인해보니 이것도 올라와 있길래 시작 부분 20분 정도만 보다 출근이 두려워서 껐어요. 시작 부분만 보면 아주 교훈적이면서도 경쾌한 코미디 느낌이더군요.
주인공 역할 하신 분을 최근에 드라마로 보고 연기도 괜찮은데 매력 있으시다... 했는데. 이 영화에서 더 반짝반짝하시더군요. 금방 메이저(?)로 올라가서 로맨스물 주인공 하셔도 손색이 없으실 것 같았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