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슬슬 '작년'이라고 쓰면 헷갈릴 것 같아서, 2020년 영화이고 런닝타임은 88분.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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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영화 내용과 1도 관계 없는 카피'의 사례 12766번으로 기록될 포스터네요)



 - 첫장면에서 영화가 좀 의외의 방식으로 긴장 시키는데요. 뭐 별 건 아니지만 나름 신기하니 여기서 설명은 생략하고요. 

 첫 장면을 넘어가면 바로 밑도 끝도 없이 두 남자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뭐 하는 놈들인지, 어떤 관계인지도 몰라요. 안 알랴줌. 암튼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밑도 끝도 없이 일을 부탁해요. 몇 개월 전에 엄마는 실종되고 아빠는 자살해버린 조카가 있는데, 가서 며칠만 봐달랍니다. 애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누가 돌봐줘야 하는데 자기가 시간이 안 된다고. 사실은 돌봐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고 안 치게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네요. 수당은 하루 200달러! 내키지 않지만 거절하기엔 넘나 큰 돈이기에 일단 수락하는 우리의 주인공입니다.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친구 차를 타고 도착을 해 보니, 소녀가 있다는 그 집은 작은 무인도에 있는 유일한 집이에요. 왜 미리 말 안 했냐며 자긴 수영을 못 한다며 버럭버럭 화를 내는 주인공을 기어코 데려가는 친구놈. 그래서 집에 도착하니 이번엔 또 무슨 쇠사슬이 달린 조끼 같은 걸 들이밉니다. 애가 피해망상이 있어서 이걸 입고 있어야 안심한대요. 쇠사슬 끝이 집 지하실에 달려 있는데, 사슬이 엄청 길어서 집을 다 돌아다닐 수 있지만 절대 여자애 방엔 못 들어간답니다. 여자애 안심 차원이라며 입으라지만 매우 상식적인 우리의 주인공은 거부하구요. 그랬더니 방구석에 처박혀서 두 눈 가리고 혼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애를 보여주며 감정에 호소하는 수상한 친구놈. 주인공은 결국 수락하고 조끼를 입습니다. 친구는 바로 떠나고 단둘이 남죠.


 하지만 당연히 바로 괴상한 상황이 시작됩니다. 뭣보다도 일단 여자애가 수상해요. 그렇게 부들부들 떨다가도 갑자기 무심 시크한 표정으로 석궁을 들고 튀어나와서 마치 당장 쏴버릴 것 같은 포스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 놓고. 말을 걸어봐도 대화가 잘 안 되는데 계속 긴장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뭔가 수상하다 싶어 그 집을 뒤져보던 주인공은 그러다 지하실에 있는 수상한 구멍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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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구멍이거든요.)



 - 올레티비 (제겐 무료) vod로 새로 올라온 것들 훑어보다 왠지 괴작의 기운이 솔솔 풍겨서 봤어요. 고를 때부터 별 생각이 없었으니 (호러다! 설정 재밌어 보인다!! 런닝타임 짧다!!!) 정말 아무 기대가 없었는데, 덕택에 상당히 재밌게 봤네요. 참고로 진짜로 괴작은 아닙니다. 괴작스럽게 만든 수작?


 일단 초저예산, 극저예산 영화입니다. 본문에 적어 놓은 캐릭터들에다가 잠깐 나오는 사람들까지 포함해도 배우는 5명으로 마무리. 공간 배경은 주인공네 집과 여자애네 집 두 군데로 끝. 주인공네 집은 그냥 흔한 아파트이고 여자애네 집은 폐가에요. 어째서, 어떻게 이런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폐가구요. cg 같은 게 필요할 장면은 아예 없고 소품도 그 조끼랑 석궁이랑 토끼 인형 하나로 끝. 얼마나 제작비를 아끼고 싶었으면 이틀 밤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식사 장면도 안 나옵니다. ㅋㅋㅋ 나중에 사람들이 좀 다치긴 하지만 그 역시 분장 비용은 최소화되구요.


 ...심지어 시나리오 자체도 절감(?)을 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 분량도 짧은데 설명도 많이 부족해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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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들여다 봅니다.)



 - 이걸 잘 쓴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나? 싶지만 그래도 상당히 영리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쓴 양반이 직접 연출까지 한 덕이겠죠.


 앞서 말 했듯이 설명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얘들은 뭔지, 어떤 관계인지, 이놈에 집구석 사연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게 범죄 스릴러인지 초자연 서바이벌 호러인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략적으로라도 설명 되어야 마땅한 정보들 중 실제로 주어지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남아요. 앞뒤 다 자르고 그냥 런닝 타임 안에서 벌어지는 그 상황에만 집중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컨셉에는 맞습니다. 애초에 주인공 본인부터가 이 상황이 뭔지 모르면서 개고생하는 상황이고, 본인도 영문을 몰라서 미칠 것 같으며 마지막에도 모든 걸 다 알게 되는 건 아니니 관객들이 주인공 심정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셈이죠. 게다가 나중에 보면 주인공도 정신 건강이 그리 좋은 놈이 아닌 듯 하고... 해서 결말이 좀 앞뒤가 안 맞아도 그러려니 하게 돼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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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영화에요. 제가 '낯설어서 좋았다'고 느꼈던 부분들 중 상당수는 아마 감독 능력 외에도 이런 흔치 않은 원산지의 영향이 컸겠죠.)



 -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살려내는 연출이 꽤 그럴싸합니다.

  '괴상하고 낯설다!'에 올인을 하는 연출인데요. 그게 꽤 적절해서 보다보면 전형적인 장르물을 보고 있단 기분이 드는 장면이 별로 없어요.


 일단 배경이 되는 그 집도, 주인공과 그 집 소녀도 모두 비주얼부터 전형적이지가 않습니다. 그 집은 폐허에 귀신 나오게 생기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다지 무서워 보이려고 열심히 꾸며 놓은 느낌은 아니구요. 주인공은 그 수염부터가 범상하지 않으시고(...) 소녀는 너무 예쁘지도 않고 되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느낌으로 생겨서 괴상한 짓을 하니 더 괴상하구요. 


 대부분의 장면들이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은 채 느릿느릿 정적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런데 일단 그림을 잡아내는 구도가 일반 장르물보단 살짝 아트하우스 무비 풍이구요. 중요한 장면들엔 클로즈업을 적극적으로 쓰는데 이게 늘 각도가 이상하든 구도가 괴상하든 해서 역시 튀는 느낌을 줘요.


 재밌는 건 이런 특성들이 결국 한 가지 결론으로 수렴한다는 거죠. "돈이 없었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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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몇 푼 안 들이고 쏠쏠하게 써먹는 저 괴상한 아이템. 사슬 조끼!)



 - 특히 도입부와 전반부까지가 좋습니다. 계속해서 낯설고 어색하고 괴상한 장면들로 떡밥을 던져대는 전반부는 상당히 몰입해서 잘 봤어요. 분위기도 되게 잘 잡히구요.

 중반 이후론 그게 약해지긴 하는데... 아무래도 중반을 넘어가면 이것저것 설명도 제시해야 하고 액션도 들어가야 하니 덜 특이해질 수밖에 없죠. 특이한 분위기라고 해도 보다 보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기도 하구요. 그래도 마지막에도 나름 한 방을 남겨둔 게 있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잘 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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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가난하다 보니 이런 소품을 봐도 감독 본인 내지는 스탭 중 누군가가 그냥 그려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 말하자면 극도의 가난함을 아트하우스 스타일로 위장하다가 그 위장이 너무 훌륭해서 그만 승화(?)되어 버린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구멍 투성이 각본을 '불가해함'으로 위장하고, 멀쩡한 장르물 퀄리티에 못미치는 프로덕션 디자인을 낯설고 독특함으로 포장하고, 인물들의 대사를 거의 쳐내버려서 각본도 편하게 쓰고, NG도 줄이면서 그걸 또 미스테리어스하고 적막한 분위기로 만들어내구요. 이거 사실은 다 돈 없어서 그런 거지!!! 라는 게 빤히 보이지만 그걸 이렇게 적절하게 살려내니 오히려 감탄스럽더라구요. 호러 장면 연출 감각도 괜찮구요. 깜놀 장면 몇 개나 압박감 주는 장면 몇 개는 나름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위기 독특한 호러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면 나중에 (공짜가 된다든가...) 한 번 시도해보세요. 전 아주 즐겁게 잘 봤습니다.




 +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녀석은 바로 요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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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진짜 잘 만들었어요 이 인형. ㅋㅋㅋ 보고 있으면 정말 괴상한 느낌이고, 워낙 인상이 강력해서 마지막에 이 토끼놈이 거대화되어 다 잡아 먹고 꺼억~ 하며 끝나 버렸어도 놀라지 않았을 겁니다. 하하. 어디서 적당한 가격에 팔면 하나 사고 싶네요.



 ++ 글에 올릴 짤들 줍줍하다가 느낀 건데, 뭔가 1인칭 호러 게임 같은 느낌이 강하기도 하네요. 바이오 하자드 같은 거 말고 인디 호러 게임 말이죠. 나름 퍼즐(?)도 풀고 길도 찾고 단서도 찾고 그럽니다. 시점도 1인칭 시점 비슷한 게 많았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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