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 저주'라니 참 정겹지 않습니까. 원제는 그냥 Relic 이고 작년에 나온 영화에요. 런닝타임은 89분. 스포일러 없게 적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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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스튜디오 가족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포스터네요)



 - 스산한 단독 주택의 모습이 나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마저 음침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기분 나쁘게 돋보이는 도자기 병 같은 게 보이구요. 2층의 욕실에 틀어 놓은 물이 욕조를 넘쳐서 계단으로 흐르고 있어요. 그리고 씻을 생각이었는지 나체 상태로 뒷모습만 보이며 멍하니 서 있는 노인의 모습... 을 보여주다가 장면 전환.

 모녀가 등장합니다. 아까 그 노인의 딸과 손녀죠. 할머니의 이웃 주민들이 몇 주째 할머니가 안 보인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연락 받고 출동했습니다만. 집에는 아무도 없구요. 여기저기 붙어 있는 할머니 본인이 쓴 메모들.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는 집 꼬라지. 결국 경찰에 신고도 하고, 근방의 숲을 수색도 해 보지만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옵니다. 어딜 가서 뭐 하다 왔는지 기억을 못하는지 일부러 숨기는지 암튼 답을 안 하구요. 굉장히 멀쩡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당연히 뭔가 예전과 다르겠죠. 집구석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뭔가 정상이 아닌 일들이 소소하게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하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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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다!!!!)



 - 은유라는 표현을 쓰기도 뭐할 정도로 굉장히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 저도 그냥 대놓고 얘길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 전체가 그냥 '늙음'에 대한 비유입니다. 늙고, 늙어서 병들고, 늙어서 주변에 폐를 끼치고, 늙어서 치매가 오는 것. 그것을 호러의 틀을 빌어 불가사의한 사건들처럼 보여주는 이야기이구요. 주인공이 할머니가 아니라 딸과 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늙어가는 가족을 바라보고 챙겨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에 이입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덕택에 노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 공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거죠. 지금 내 곁에서 멀쩡하게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겪을 일이고, 동시에 내가 겪을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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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이들은 안 늙을 줄 아니~ 인생 금방이야.)



 - 90분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시간들 중 60분 정도가 아주 천천히, 그다지 큰 일 없이 흘러가는 영화입니다. 요즘 이런 식의 전개가 유행인가봐요. 당연히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니고 계속해서 불길하고 불쾌한 떡밥들을 던지죠. 얼핏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은근히 구석구석에 곰팡이들이 숨어 있는 집의 모습이라든가. 할머니가 자식 손주에게 숨기는 신체 일부분의 괴상한 상태라든가. 덤으로 이 집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으스스하게 풀어내는데,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며 영화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와 나름 적절하게 연결됩니다. 근데...


 솔직히 좀 많이 느리긴 했습니다. ㅋㅋㅋ 지루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짧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럼 또 런닝타임이 너무 짧아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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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이런 내용입니다. "엄마 거기서 뭐 해요?" ㅋㅋㅋ)



 - 대신에 마지막 20여분은 화끈합니다. 호러 영화를 스스로 선택해서 보는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장면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요. 긴장되고 불쾌하며 애간장 타고 무섭습니다. 특히나 이게 참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서 더 그래요. 비유이긴 해도 어쨌든 이것이 늙음과 그걸 마주하게된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걸 다 눈치채고 이 클라이맥스를 맞게 되는데. 우린 모두 알고 있잖습니까. 이건 그냥 답이 없다는 것. 피할 수도 없고 이겨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화끈함이 지나간 후에 던져지는 결말은... 딱 목격하는 순간엔 상당히 의외입니다만. 금방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상당히 성숙한 결말이었어요. 주어진 문제를 회피하지도 않고, 미화하거나 순화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답을 제시하는 결말이었다고나 할까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살짝 보여주는 매우 장르적인 클리셰 조차도 영화의 주제와 어울리게 활용해내는 걸 보며 조금 감탄하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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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에 보이는 옛날 사진들이 슬픕니다.)



 - 슬슬 잠이 와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관람 여부를 선택함에 앞서서 일단 이 영화가 상당한 슬로우 스타터라는 걸 감안하시는 게 좋습니다. 나름 꾸준히 미스테리와 스릴 장면들을 던져주긴 하지만 그래도 거의 한 시간 정도가 별다른 진척 없이 느릿하게 흘러가니 보시는 분 성향에 따라선 좀 지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막판 30분 정도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또 그런 호러 장면들의 거의 전부가 영화의 주제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식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더 재미(?)있기도 했구요.

 20대 손녀의 입장과 50 가까운 딸의 입장, 그리고 팔순 할매 입장까지 참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 이입할 수 있도록 영리하게 짜여진 이야기였고 주제를 다루는 진지한 태도도 좋았습니다. 제가 대략 저 딸과 비슷한 나이인지라 그 양반 심정에 이입해서 부들부들, 안타까움을 느끼며 잘 봤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느 동네 이야기인진 안 나오지만 대충 멜버른까지 차를 몰고 당일치기로 이것저것 업무도 보고 올 수 있는 곳이니 일단 나라는 호주겠죠. 실제로 호주 영화이고 에밀리 모티머를 빼고 할머니와 손녀역의 배우들은 다 호주 사람입니다. 배우들 셋 다 좋았어요. 연기도 좋았고, 애초에 각본이 세 캐릭터를 각자 연령대에 맞게 잘 표현해준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이 영화는 그 내용 특성상 캐릭터 개개인의 개성보단 '연령대 대표'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서요.



 ++ 극중의 할머니 나이 대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조금 궁금했습니다. 보고 나서 많이 우울해질 것 같기도 하고. 전 절대로 두 번 보지는 않으려구요. 특히 나이 한참 더 먹고 나선 절대로 안 볼 겁니다. ㅋㅋㅋㅋ



 +++ 주인공들이 몽땅 여자죠. 네, 감독도 여성 감독입니다. 요즘 호러판에서 호평 받고 화제되는 영화들 중에 최소 절반 이상이 여성 감독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세상을 다 맞이하게 되는군요. 근데 기분 탓이 아니라 확실히 뭔가 다릅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더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다르다'는 겁니다. 덕택에 좀 더 다양한 느낌의 호러들을 볼 수 있게된 것 같아 좋아요. 이 영화의 감독은 이게 데뷔작이라는데, 역시 앞날이 촉망되는 감독님 되시겠습니다.



 ++++ 사실 제목의 그 '유물'은 좀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원제는 중의적 해석을 의도해서 붙여 놓은 듯 하고. 고로 번역제가 더 뻘해지는 감이 있는데... 아예 창작해내지 않는 이상엔 적절한 번역제 붙이기가 어려웠을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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