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이트(Seoulite←서울+­ite)라는 말을 아세요?

무려 서울 사람을 이르는 대명사라는군요.

찾아보니 국립국어원에도 등재된 공식 단어인데 문제는 어째 이게 입에 붙지 않는단거죠.

굳이 서울 사람, 서울 시민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조건은 이러합니다.

 

1. 발음이 자연스러울 것 

2. 조합 할 접미사가 한국어일 것

3. 자연스럽게 생성된 말일 것

 

이 세가지를 고려해볼 때 서울러나 서울라이트는 역시 부적합하고 원래 부르던 말을 사용하는게 가장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서울인, 서울놈같은 말들은 짧아서 부르기도 편하고 친숙해서 좋죠. 이런 괜찮은 단어들을 두고 왜 서울라이트라는 요상한 말을 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사람을 서울깍쟁이라 부르기를 좋아해요. 

서울깍쟁이는 본디 타지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어감도 귀엽고, 중립적이기보다는 다소 놀림조의 정감있는 뜻도 좋죠. 외국사람에겐 발음이 어렵고 좀 생소한 것 조차도 힙한 느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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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사리'는 아주 아름다운 단어입니다.jpg)


그렇다면 이런 '서울깍쟁이'들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백인들, 그러니까 미국 중산층 힙스터들의 특징을 재치있게 그려내 화제가 된 'Stuff White People Like'라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고요.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그것처럼 서울깍쟁이들의 특징들,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냉면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 긱스 '짝사랑' 중"

 

 

우리 서울깍쟁이들은 냉면을 사랑합니다. 

습하고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즈음이면 트위터며 페이스북에는 직접 찍은 냉면 사진에 ​'#냉면 #냉면먹부림 #냉면은사랑입니다' 같은 태그들만 잔뜩 붙어 있는 포스팅이 무더기로 올라오기 시작하죠.

바로 서울에 여름이 온 것입니다!

 

이 때를 대비하여 서울깍쟁이들은 맛있는 냉면집의 리스트를 외워두어야 합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흔히 퍼져있는 육쌈냉면 스타일의 체인점이나 초장을 발라 내오는 끔찍한 중국집 냉면, 면보다는 떡에 가까운 배달 냉면들은 우리 서울 식도락가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을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서울 시내 유명 냉면 맛집들의 냉면 한 그릇 가격이 만원을 훌쩍 넘는 다는 사실은 우리 서울깍쟁이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저 냉면 맛집을 아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들 사이에도 분명 계급 격차는 존재하기 때문이죠.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점을 아는 것은 평민, 평양냉면은 물냉면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 유명하다는 점을 아는 것은 6두품입니다.

같은 평양냉면 집이라도 우래옥과 을지면옥 간의 맛 차이를 알면 진골, 같은 봉피양이라도 강남본점과 방이점, 도곡점의 맛 차이까지 알면 성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냉면은 역시 평양냉면이지'란 말도 빼먹지 말아야 하고요.

 

정작 냉면의 원조 지방은 함흥이나 평양과 같이 그들이 평생 한번 가보지도 못한 곳이지만, 서울깍쟁이들은 자신들이 그 미묘한 맛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원조'냉면만을 고집합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깊은 맛으로 흔히 묘사되는 '원조 냉면'에 대해 그들이 모르는 사실은 조미료는 1900년대 초에 일본에서 개발되어 이미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평양 냉면집을 중심으로 크게 히트쳤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구전되어온 '원조'의 맛이 사실 조미료 맛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2. 제주도에 정착하기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 '제주도의 푸른밤' 중"

 

 

서울깍쟁이들은 가끔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출퇴근길의 2호선 지옥철에서 한참을 시달리다 도착한 강남역에서 쏟아지는 인파에 새로 산 탐스 슈즈를 밟히고, 주린배를 움켜쥔 채 겨우 찾아간 맛집에는 줄이 끝없이 늘어서있습니다.

27번이 적힌 대기표를 받는 순간 그들은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이야기할 겁니다. "난 언젠가 서울을 떠날거야"

하지만 불행히도 한동안 서울깍쟁이들에게 서울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어보였죠.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서울깍쟁이들은 서울을 떠나겠다는 공허한 다짐 뒤에 제주도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기 시작했는데, 기억하건데 이같은 '제주도붐'은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둘 제주도로 떠나고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이효리의 블로그를 보고 제주도 이주를 희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끔 장필순이나 최성원을 언급하는 사람은 있지만요. (이들은 노래 '제주도의 푸른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성시경의 리메이크 버전보다 최성원의 원곡이 훨씬 더 좋다는 평을 빼놓지 않는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서울깍쟁이들에게 제주도는 일상을 구원해줄 낭만과 여유의 땅입니다.

그들이 꿈꾸는 제주도에서의 삶이란, 향긋한 원목으로 내부를 마무리한 빈티지 풍의 펜션 또는 카페를 운영하고 넓은 앞마당 한켠의 아기자기한 유기농 텃밭에 상추며 고추며 오이를 심어 먹으며 ​거실 한쪽 전체의 통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이국적인 바닷길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상상하게 되면 '우리 ㅇㅇ이(반려동물 이름) 키우기에도 너무 좋겠다!'란 말 또한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고요.​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은 이중섭이 그랬 듯 제주도의 한 나직한 다락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업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뉴욕 구겐하임에 걸릴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반면 제주도 정착에는 섬 특유의 척박한 생활기반, 배타적인 문화, 불편한 대중교통,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서울깍쟁이들의 제주판타지를 깰 수는 없어보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은 진심으로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기때문이죠.

"제주도로 떠나고싶어!"​는 그들이 대도시가 가진 단점을 마주할때마다 욕설대신 내뱉는 습관적인 감탄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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