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틱, 틱... 봄! 보고 왔습니다.

2021.11.24 19:16

Sonny 조회 수: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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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뮤지컬을 잘 몰라서 이 이야기가 조너선 라슨이라는 유명한 뮤지컬 제작자의 이야기인 것도 모르고 봤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이 인물을 소개는 하지만요. 렌트라는 뮤지컬도 잘 모르고 봐서 이 인물을 이 영화로 다시 만난다는 그런 감흥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뮤지컬을 좋아하고 그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훨씬 더 큰 애상을 가지고 이 영화에 몰입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런 걸 모르는 채로도 저는 충분히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단 배우 이야기. 영화를 보다보면 이 배우 정말 좋은 배우구나, 라는 감흥이 올 때가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그런 걸 좀 느꼈습니다. 배우가 천가지 얼굴을 가지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론처럼 퍼져있지만 정말 좋은 배우는 자신의 연기 영역에서도 늘 같은 듯 새롭게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죠. 앤드류 가필드는 기본적으로 선량하면서도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는 이미지가 좀 박혀있는데, 그게 이 영화에서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그가 연기하는 조너선 라슨은 어떻게든 좋은 뮤지컬을 써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경제적, 사회적 시궁창에 박혀있고 그가 모든 것을 걸고 덤비는 뮤지컬 작품은 딱히 성공하리라는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앤드류 가필드는 그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바쁘게 쏘다니며 남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떄로는 상처도 주고 후회도 하면서 열정을 계속 태웁니다. 


뮤지컬 영화라면 당연히 춤과 노래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텐데, 앤드류 가필드는 아주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이 배우가 이렇게 목청이 좋았나 싶었는데 노래를 열심히 잘하더라고요. 헝클어진 머리스타일처럼 사방팔방 들쑤시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는데 그게 또 이 영화와 잘 어울립니다. 저는 가끔 보면 앤드류 가필드가 디즈니 세계에서 어른이 되서 탈락해버린 왕자님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배우가 연기하는 순진무구함, 그게 현실과 부딪힐 때의 파열음이 노래로도 이렇게 승화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틱, 틱... 봄! 이라는 이 영화는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뮤지컬의 전체적인 컨셉은 비루하고 초라한 자신이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나갈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아주 환상적이거나 현실과 유리된 세계를 그리는 대신 조너선 라슨이라는 한 인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라라 랜드>도 가난한 남자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결국 그 음악적인 요소들은 L.A라는 세계가 얼마나 낭만적인지를 그리는 부수적인 요소였다면 <틱, 틱... 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너선 라슨이라는 한 인간의 궁상떠는 이야기입니다. 노래가 안나와! 돈이 없어! 또 망하면 어떡하지! 왜 친구들은 죽어나가는거야! 이 가난한 청년에게는 도무지 돌파구가 안보이고 그는 이제 곧있으면 서른이 되버린다면서 초조한 심정으로 자신의 늙음과 이루지 못한 꿈을 계속 울부짖습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경쾌하죠. 울고 싶은 그 마음을 신나는 리듬과 멜로디로 승화시켰으니까요.


그래서 영화도 엄청 바쁘게 인물과 사건 사이를 오갑니다. 조너선 라슨이라는 인물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곁에 있는 성소수자 친구들의 이야기로 훅 넘어가나 싶으면 그의 연인이 던지는 꿈과 현실 사이의 질문에 봉착하고 이내 다시 무대로 돌아옵니다. 조너선 라슨이 연기하는 무대에서 조너선 라슨의 무대바깥 현실로 영화가 계속 널뛰기를 하면서 보는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지만 그게 이 영화의 주제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조너선 라슨은 정말로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거든요. 머릿 속에서 매번 폭탄이 터질 것 같다며 자신의 인생을 자조하는 인간이 하는 일은 또 더럽게 바쁘고 해치워야할 과제도 많다면 영화도 그렇게 흘러가게 되겠죠. 이 영화의 제목은 아주 커다란 폭발 앞에서 긴장하게 만들지만 사실 영화 속에서 자잘한 폭발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사건의 에너지와 그걸 또 노래와 춤으로 만든 공연의 에너지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지지리 못나 빠진 인간의 이야기도 흥이 넘쳐요.


그는 시한 폭탄 같은 삶을 살았고 성대한 축포의 앞에서 갑자기 멈춰버렸습니다. 언제나 성실하게, 희망을 가지고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이 고전적인 메시지가 진부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사랑과 열정의 메시지는 음악적으로 늘 부드럽고 장엄하게 울려퍼질 것 같지만 그게 또 우리네 청년의 빈곤한 삶과 결합하면 짜증스러움과 시시함이 결합되면서 또 다른 매력이 생깁니다. 최소한 어느 2030도 이 영화를 밍숭밍숭하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영화의 힘이기도 하지만 조너선 라슨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조너선 라슨처럼 살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의 현실과도 겹쳐서 그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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