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말미에 정부 모 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서류들이 있었습니다. 두 차례 수장을 찾아가 충분히 설명했고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제 요구에 동의해주셨습니다. 어젯밤 11시까지 서류 파일을 보내주겠노라 약속했는데, 저녁 6시쯤 ' 취소합니다"라는 일방적인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통보라는 형식은 소명 의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을 바꾼 이유는 당연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은 원리 원칙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착된 직업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이 말하는 '공정'은 개인이나 조직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요청하는 것의 의미, 이유, 결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공정함의 의미는 따로 있죠.  바로 자신이 그 자리에서 낯선 청원에 갈등하지 않고 상관에게 욕 먹지 않도록 결정을 내리는 것.
그들의 '공정'은 합리적인 거나 창의성에 관심없이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응시하는 자세입니다. 그 존재이유를 두 글자로 줄여서 '공정'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만큼 그들을 많이 겪어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번복의 답을 받고 나니 온몸에서 진땀이 나며 덜덜 떨리고 구토가 일어서 몹시 괴로웠습니다. 어젯밤 11시까지 서류가 마감돼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동의했으면서 아, 이럴 수가 있나요. 그대로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며칠 못자던 잠을 푹 잔 것은 신기합니다. 저 스스로 의식을 기절시켰던가 봅니다. - - 

저를 상대한 그 2급 공무원에게 보내려고 이런 메모를 작성했습니다만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관례를 고수하는 공무원 분들의 고집에 어떠 의미로는 감탄합니다만, 당신들이 자족하는 불꽃은 회색빛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저는 사적인 도움을 구하러 간 민원인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그 부서를 방문해서 설명했고 **님이 납득해서 동의하셨잖습니까. 한국의 법 규정에 어긋나지 않고 한국의 이익에도 적합성이 있다는 인정을 하셨잖아요. 
처음 해보시는 결정이란 느낌은 받았습니다.  누구나 창의적인 결정은 치명적인 실수가 아닐까 불안하기 마련이죠. 공직의 세계에서는 더 그러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동의하고 약속한  건 실천하셔야 하는 겁니다.'

사흘 연휴가 끝나면 찾아가서 그와 대면하고 해명을 듣고 난 후 이런 제 감상을 전할 겁니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고 다 맞는 방법이 있는 거잖아요. 그 때를 놓치면 어떤 것도 영원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91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96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0237
117481 오리엔트 특급 살인 (1974) [4] catgotmy 2021.10.20 351
117480 막내와의 카톡 15 (허튼소리) [5] 어디로갈까 2021.10.20 487
117479 이노래 좋지 않나요 [2] 가끔영화 2021.10.20 283
117478 태국영화 량종은 반은 나홍진의 의지로 곡성을 이어가려 했겠죠 [1] 가끔영화 2021.10.19 621
117477 [영화바낭] 대니 보일의 시작, '쉘로우 그레이브'를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21.10.19 809
117476 [넷플릭스] '마이 네임' 이야기가 아직 없는 건..... [12] S.S.S. 2021.10.19 1194
117475 [넷플릭스]조용한 희망 Maid-교과서로 기억될.. (스포주의) [5] 애니하우 2021.10.19 807
117474 장장의 쇼팽콩쿨이 드디어 결승전 시작했어요 (유튜브 라이브) [4] tom_of 2021.10.19 426
117473 뒤늦게 스퀴드 게임 감상중인 [6] googs 2021.10.19 696
117472 “사장님” 이라는 호칭 [17] 남산교장 2021.10.18 1094
117471 장화 홍련 볼 수 있는 곳 아시는 분? [6] 티미리 2021.10.18 471
117470 이런 새가 있네요 [2] 가끔영화 2021.10.18 348
117469 [넷플릭스바낭] 닐 블롬캄프의 소소한 프로젝트, '오츠 스튜디오'를 봤습니다 [10] 로이배티 2021.10.18 756
117468 [EBS2 클래스e] 권오현의 <초격차 경영>, 서울국제작가축제 <인공지능과 유토피아> [1] underground 2021.10.18 333
117467 '데드링거(1988)' 봤어요. [12] thoma 2021.10.18 788
117466 [영화바낭] 시간 여행물인 듯 아닌 듯 SF 소품 '타임 랩스'를 봤습니다 로이배티 2021.10.18 483
117465 청춘낙서 (1973) [1] catgotmy 2021.10.17 321
117464 영화 더킹(개인적으로 짧았으나 기억에 남는 배우들) [1] 왜냐하면 2021.10.17 715
117463 [넷플릭스바낭] 싸이코패스 로맨스 '너의 모든 것' 시즌 3을 끝냈습니다 [8] 로이배티 2021.10.17 876
117462 더 배트맨 새 예고편 [5] 예상수 2021.10.17 65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