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영웅 이야기

2010.10.05 15:27

미재 조회 수:3295

제가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어딘가에다가 한 번 써봐야지 생각하기만 십여년 째인데, 오늘 그냥 필받쳐서 여기다 써보네요.


1990년대 중후반에 군생활 하신분들은 혹시 아실지도 모를 이야기입니다.


요즘 군대는 그렇지 않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입대날은 요일 상관이 없지만, 전역날은 늘 꼭 목요일이어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군대니까 그냥 그런 줄 알았죠. 생각해보니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그냥 행정적 편의를 위한 발상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를 들어 1995년 10월 5일에 입대한 사람이 1997년 12월 4일에 전역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2년 2개월),

12월 4일이 목요일이 아니라면 그 날이 아닌 그 근처의 목요일에 전역하도록 시스템이 돌아갔었죠.


문제는 그 이전 목요일이냐 아니면 그 이후 목요일이냐인데요, 그까짓 며칠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혹시나...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물론 중요합니다. 말년 며칠은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것은 기꺼이 주고라도 바꾸고 싶은 법이니까요.

만일 12월 4일이 월요일 이라고 치면, 재수 좋으면 11월 30일 목요일에, 재수 없으면 12월 7일 목요일에 전역하는 거죠.

물론 대한민국 군대가 미리 전역 시켜줄리는 없죠. 대부분의 경우 12월 7일에 전역하는 식이었습니다.

무려 3일을 군대에서 더 있어야 하는 거죠. 2년 2개월을 다 했는데도!


여튼 다양한 입대요일에 비해 전역일을 목요일로 고정시키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매달 소위 '특명'이라는 걸 전군에 내려보냈습니다.

특명은 별게 아니고 그냥 숫자 4개인데요, 보통 '7 7 7 7'이 내려왔습니다.


7의 의미는 지난 주 목요일에 전역한 전역자들의 입대일 중 가장 늦은 날 이후 7일 동안 입대한 사람들을 이번 주 목욜에 전역시켜라라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어떤 이유엔지 당겨져서 전역하는 사람은 없이, 가장 운좋으면 당일, 아니면 1일에서 최대 6일까지 군생활을 더 하는 식으로 세팅이 된 상태에서 

매주 특명이 7이 반복이 되어왔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가 엄청 억울한 케이스였죠. 원래는 금요일에 전역해야 되는데, 6일을 더해 다음주 목욜에나 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누구를 원망하리...하며 억울한 운명을 동기들과 함께 한탄하던 제대 2개월 전 무렵 (97년도 입니다), 정말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특명이 떨어졌는데, 보통때와는 달리 '13 7 7 7'이 떨어진 겁니다. 이 말은 즉, 최대 일주일씩 미뤄졌던 전역일이 13으로 인해 최대 일주일이 당겨지는 방식으로

조정이 되었다는 겁니다. 덕분에 저와 동기들은 엄청 덕은 본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2년 2개월 이상 있지는 않아도 된 셈이죠.

뭐 부대 내 모두가 아주 까무러치게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에요.

왜 갑자기 특명에서 '13'이 갑툭튀 했냐는 겁니다. 사병들의 인권이나 사정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국방부가 왜 갑자기 이런 자비를?

이에 대해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대에서 돌았던 소문의 버전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병이 전역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애인 소식에 탈영을 했다가 잡혔다.

이 사병은 자신은 법이 정한 2년 2개월 근무를 이미 완료한 상태이므로 자신은 죄가 없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그리고 법원이 이 사병의 손을 들어줬고, 국방부는 울며겨자먹기로 특명 13을 내려 전체 군복무 기간을 1주일 줄였다.


이 사병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희 부대에서는 '영웅님'으로 불렸습니다. 자기 한몸 희생해 전군 사병들의 복무기간을 일주일이나 단축시킨 거니까요.

이 이야기가 법적으로 얼마나 가능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놀랍게도 전역 한 후 저와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복무한 친구들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알고 있더군요. 디테일은 약간씩 다른 구전동화의 변종 같은 식이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골자는 거의 흡사했습니다.


그 이후, 군대를 전역한지 무려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건의 배후 이야기의 진위,그리고 사실이라면 그 분은 과연 누구실까.

어떤 분일까,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살고 계실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군 규모가 60만이고, 그중 사병이 최소 40만은 된다고 치면, 적어도 13 특명이 떨어졌던  당시 군대에 있었던 사병들 40만명은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고, 저같이 특히 드라마틱하게 혜택을 받은 경우라면 그 사건과 소문, 그리고 누구신지는 모를 그분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꽤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물론 단 한번도 언론이나 방송 같은데서 다뤄진 적은 없죠.


혹시 이 이야기에 대해서 들어보셨거나 혹은 기억하시는 예비역들 안계신가요.

혹은 혹시 저같이 그냥 소문이 아닌 진짜 관련 리얼 스토리를 아시는 분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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