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1 23:25
Mr. Turner, 2014
개봉 때 극장에서 봤지만 시리즈온에서 엄청 싸게 볼 수 있길래 오늘 다시 봤습니다.
이전에 볼 땐 감독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보면서는 마이크 리 감독 작이라는 것을 의식했더니, 대가가 대가를 다루었다는 느낌이 확연했습니다.
윌리엄 터너(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1775-1851)는 대학 때 지인이 얘기해서 그림을 몇 개 본 기억이 있을 뿐 화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어요. 그림은 제 기억에 바다와 하늘이 구분이 안 되는 번지는 빛의 효과,로 남아 있었습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와 비슷한 느낌으로요. 제가 미술에 대해 모르니 터너라는 실제의 화가에 대해선 말을 얹을 주제가 못 되고 영화에서 이분을 어떻게 표현했나만 조금 얘기하려고요.
영화는 터너의 장년기부터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던 초반에는 화가가 살던 시대의 풍속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터너를 따라가는 영화임에도 화가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당시의 영국인들의 생활, 당시의 화가 일반의 생활이 조금의 보정도 없이 다루어지는 것 같았고 그것을 보는 맛이 상당했거든요. 시대물 중엔 인물들 의상이나 소품이 새로 장만한 듯 금방 세탁한 듯 말끔한 느낌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생활의 현장을 참 그럴듯하게 재현하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인물을 표현한 방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인물이 어땠는지와 상관없이 보정이 없다는 느낌을 줍니다. 미화나 신비화, 천재력 같은 것에 집중하지 않으며 내용을 풀어나가고 그럼에도 이 인물이 재능이 탁월한 기인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손발이 오그라들만한 손쉬운 주변의 칭찬이나 성취, 예술가로서의 극한 고난으로인한 센티멘털한 여운 같은 건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엔 없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터너는 터너로 표현되는가. 화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르는 장소들을 찾아다닙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도 가고 영국의 해안 동네들도 밥먹듯이 갑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많이 걷고 마차나 배도 많이 타면서요. 언제나 홀몸으로 행상의 차림새로 꾸역꾸역 가고 있는 장면들이 아주 많습니다. 벌판이나 해안가에 심지어 배의 돛대에 몸을 묶고, 인적 없는 곳에 서서 작은 노트에 스케치하는 모습이 이 전기 영화에서 인물의 정수로 보여 주고자 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코를 킁킁대며, 눈으로 볼뿐 아니라 주변의 냄새까지 가두겠다는 듯이, 사람이기 보다는 먹이를 노리는 짐승과 같은 집중력과 추진력으로 걷고 그리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걷고 그리는 인간입니다. 이것이 터너를 만들었다고 봤어요. 다른 건 부수적입니다.
그 이외의 부분들. 동료 화가들과 얇은 교류가 있고 어릴 때부터 드나든 미술원에서 전시 작업도 하고 백작집에 초대도 받고 평론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터너는 미술계에서 일찌감치 성공해서 생활이 어렵지 않았던가 봅니다. 그리고 숨겨놓고 잘 돌보지 않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어요. 게다가 하녀와는 성적으로 관계하면서 거의 인격이 없는 존재처럼 대하며 일말의 관심도 없죠. 이 인물의 냉혹함과 무책임을 보여주어 국민화가로 전설시 되는 것을 비웃으려는 것이었을까. 비웃는 것이 이 감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고, 그저 사실성에 더 천착했다고 봐야 할지도요.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감독이 하녀가 피부병을 점점 심하게 앓으며 언제나 때에 절은 누더기 한 벌로 등장하게 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 합니다.
혼자서 걷고.
배도 탑니다.
집에 오면 열심히 그림 그림.
1. 평론가 러스킨이 두 번 등장합니다. 터너를 극찬하면서 뭔가 고상하게 미화시킨 표현들을 씁니다. 마이크 리 감독은 러스킨을 싫어하는 걸까요. 러스킨이 자기 말에 도취해서 말하는데 터너는 하녀를 불러 파리를 잡으라고 명령하고 또 한 번은 러스킨 집에서 중요한 질문이라면서 러스킨의 말을 끊고 좋아하는 식사 메뉴가 뭐냐고 묻네요. 젊은 러스킨이 터너 앞에서 책에서 배운 언어로 과시적인 소리들을 하는 것은 미숙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두 번이나 그런 장면을 넣으니 의아하더군요.
2. 이 영화에도 레슬리 맨빌과 러스 쉰,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계절'의 예비 며느리가 나옵니다. 레슬리 맨빌(메리)은 이번엔 과학자이자 화가로 등장해서 당대의 앞서가는 여성 지식인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왜 등장했는지? 그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ㅎㅎ 러스 쉰(제리)은 이번엔 구박받는 숨겨진 아내로 나옵니다. 사랑받지 못 하고 돈이라도 받아내야 하는, 터너를 방문하는 불청객입니다. 두 분이 감독의 이전 영화와는 반대되는 캐릭터를 맡았어요.
(추가 : 생각해 보니 맨빌이 맡은 과학자는 터너 집에 와서 쇠핀이 빛에 의해 자성을 띠는 실험을 해 보입니다. 터너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런 면모를 보여주려는 역할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터너는 사진관에 두 번 가서 사진 기술에 대해서 캐물으며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터너의 그림 한 점으로 마무리합니다.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 서부 철도>(1844)
2021.11.02 10:23
2021.11.02 10:37
회원 리뷰에 검색하니 쓰신 글이 있네요.
깔끔하게 짚으신 글이고 미술 지식이 있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공통된 느낌을 표현 부분도 있어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2021.11.02 10:50
이 영화 아직 못봤는데 언젠간 봐야지 하면서 잊고 있었네요(대체 이런 영화가 몇 편인지…;;) 터너 시대의 풍속이 제대로 묘사됐다니 영화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합니다.
터너의 작품 세계에 대해 떠오르는 건 젊은 시절에는 클로드 로랭식의 고전풍의 풍경화를 근사하게 그려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는 것, 그런데 중년 이후로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화풍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유명한 명작들을 여럿 남겼다는 것이네요. 이 변화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이 양반 인생에 뭔가 큰 변곡점이 될만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제멋대로 상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의 묘사를 들어 보니 그건 아닌가 봅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하녀와의 관계는 더 참담하군요. 그냥 그 시절의 무정한 부르주아 남성의 전형이네요. 이런 사례는 하도 많아서 또냐? 이 생각부터 들지만 (근대 영국의)국민화가 반열에 오른 예술가라도 쓸데없는 후광 따위 주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는 듣기만 해도 호감이 갑니다.
1. 러스킨 싫어하는 사람 많을걸요. 예전에 라파엘 전파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진짜 무슨 흑막있는 악당처럼 묘사되서 보는 내내 식겁했던 기억이…19세기 영국 미술 문화계에 워낙 남긴 족적이 많아서 이 양반의 기가 막힌 행보는 이 시절 미술작품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막 들리는 정도랍니다. 일례로 지금까지도 미술 연구의 정석이 되는 명제가 있죠.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요컨데 당시 미술 비평계에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이 양반 힘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자기가 선호하는 작가는 최고작으로 띄울 수도 있었고 반대인 화가는 화단에서 상당한 고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그런 문화계 권력자였죠. 그런데 또 독실한 신앙인이어서 미술비평이 무슨 신앙 간증서 같…여튼 오늘날 기준으로는 영 부담스러운 캐릭터라 좋게 묘사되기가 참 어려운 양반입니다.
2021.11.02 12:08
언젠가 봐야할 영화가 자꾸 쌓이는 건 다 비슷한가봐요.ㅎ
맞습니다. 가족이나 하녀를 대하는 당시 부르주아 남성의 모습을 꼭 집어 감독이 전시해 주었어요. 특히 하녀의 경우는 참 가혹함이 느껴지도록 사실적으로요.
마이크 리 감독은 러스킨이 평론가의 이론으로 실제 창작하는 이들을 갈라치기 하거나 과도한 미사여구로 터너를 칭찬하는 모습을 터너 본인을 통해 못마땅한 듯이 그리고 있었어요. 저는 러스킨 관련해서는 짧은 글 두어 편만 읽어서 잘은 모르는데 영화에선 좀 지적 허영에 들뜬 언어를 쓰는 인물로 나옵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청년기에 신념에 차 있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21.11.02 12:50
포스터 이미지가 상당히 멋진데 화가 양반 화풍을 살짝 흉내낸건가 봐요.
예술가 주인공 영화들은 대부분 그 폭발하는 '로맨틱' 때문에 보기가 힘든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하니 보지도 않았지만 좋은 영화인 걸로. 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그림도 멋지네요. 화가님 인성과 관계 없이(...)
2021.11.02 14:32
화가가 우는 장면도 있고 여성에게 고귀한 대사로 호감을 표현하는 장면도 있지만 전-혀 로맨틱한 느낌을 주진 않아요. 감독님이 아마 거기에 알레르기 증상이라도 있는가 봅니다.ㅎㅎ 저도 이런 식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영화는 시대극이니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즉각 나의 현실에 비추어 숨은 의미 찾기를 해야하는 부담도 덜한 것 같아요 .
전에 이 영화보고 회원 리뷰에도 썼지만 참 이상한 전기영화에요. 명색 예술가 전기 영화의 주인공인데 이렇게 안로맨틱한 주인공은 찾기 힘들죠. 이런 정없는 남자주인공이 또 나중에는 고향동네 과부랑 사귀어서 끝까지 해로했다는 것도 신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