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3 15:03
1. 2016년 9월 6일 문유석 판사가 "남성들의 분노와 여성들의 분노"라는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0554913
개인적으로 이 기고문의 핵심부분은 여기라고 봅니다.
여성들은 능력에 맞는 기회와 임금을 달라,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직업상 불이익을 주지 말라, 때리지 말라, 용변 보는 걸 몰카로 찍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죽이지 말라며 분노하고 있는데 남성들은 여자는 군대 안 가냐, 더치 페이 왜 안 하냐, 왜 농담에 예민하게 구느냐, 난 안 그러는데 왜 싸잡아 욕하느냐로 분노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누군가 말했던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는’ 예가 아닐까.
2. 2016년 9월 22일에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경향신문에 "혐오의 상승작용"이란 글을 기고합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9222109035&code=990100
이 기고문은 작은 아들이 학교에서 겪은 모욕을 기술하면서 미러링이 과연 효용이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 학교의 공식 교육 프로그램 중에 ‘미스 ○○○ 선발대회’라는 게 있다는데, 남학생들을 여장시키고 여학생들로 하여금 심사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참가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다행히 자기는 강제 출전당하는 ‘굴욕’을 겪지 않았지만, 강제로 ‘여장’당하며 민망해하는 친구들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단다.
중략
저 고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도 미러링에 해당하지만, 역효과가 더 컸다. 질 나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쓰는 온갖 추잡한 말들을 그대로 복제해서 남자 일반에게 돌려주면, 남자들이 회개할까? 이런 행위는 오히려 여자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남성성’을 내면화하게 하여 여성주의가 그토록 혐오하는 ‘폭력성’의 저변을 확대 강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으로는 ‘남자 중심으로 짜인 사회’가 해체되면 더 ‘인도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줄 수 없다. 이런 주장과 방식은 혐오를 억압하기보다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은 정당하다’는 태도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혐오의 정당성’이 공인되면, 여성들이 맞서 싸우기가 한결 수월해질까?
3. 이에 대해 오석태 이코노미스트가 페이스북에서 한마디 코멘트를 던집니다. 코멘트는 "이 남학생에게도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할까?"라는 것이었죠.
4. 학교측에서 남학생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미스 *** 선발대회에 참여하게 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의미에서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나 전우용 역사학자가 해일 이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일은 무엇인가 하면, 남녀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세이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도태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유석 판사가 말한 해일은 여성들의 깊은 분노, 여성들이 당하는 차별인 것 같네요. 제가 말하는 해일은 현재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사회의 변화입니다.
전우용씨의 아들은 미인대회를 여성이기에 쌓을 수 있는 특권적 스펙으로 보고, 여자 선생님들에게 순종했다는 것 때문에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주장에 공감도 하지 못한다고 전우용씨는 서술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아들을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있게 만들려면 학교가 아니라 전우용씨가 아들을 적극적으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제가 어떤 이유로 이런 말을 하는지 짤막하게 말씀드리죠.
5. 2010년 기준 미국에서는 여성 가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35%가 되었습니다. 여성 가장이란 남편보다 여자가 더 많이 돈을 벌 때 여성 가장 (female breadwinner)라고 정의합니다. 교육 측면에서 봤을 때 미국내 여성의 고등 교육수준은 남성과 거의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시장 참여율이나 임금은 남자보다 더 적죠. 보통 30대 초반에 소득이 대폭 떨어집니다. (아마도 자녀 때문)
교육을 시켜서 여성을 인재로 만들었는데 이들이 집안에서 살림을 하게 되면 국가 경제적으로 봤을 때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손실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올들어 월스트릿저널은 맥킨지의 도움을 받아 특집기사를 썼는데, 여성소득을 남성과 같이 매칭해야하고, 여성에게 더 많은 남성 멘토 (upper level manager)를 연결시켜줘야하고, 여성들에게 야심을 불어넣어줘야 한다는 대강의 내용이 통계와 함께 제시했습니다.
http://www.mckinsey.com/global-themes/employment-and-growth/how-advancing-womens-equality-can-add-12-trillion-to-global-growth
아시다시피 WSJ는 보수매체이고, 공화당 지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수적인 WSJ가 여성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발벗고 나선 건, 이 신문이 돈냄새를 잘 맡는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문이나 미국사회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입니다. 따라서 투자에 대해 수익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죠. 자본주의는 힘이 세서, 교육받은 여성이 사회에서 고급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맥킨지 보고서는 전세계적으로 남녀평등이 실현되면 28조 달러가 추가성장할 거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을 원하죠. 특히 인도의 경우 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거라고 합니다. 지금 여성차별이 많아서 성장이 지체된 나라일 수록 남녀평등에서 오는 경제적 이득은 크다는 이야기죠.
현재 미국에서는 공립이나 사립을 막론하고 대개 남녀평등을 가르칩니다. 미국 초등학교 논픽션 교재를 읽어보면,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남녀를 차별한 예를 지문으로 들고 남녀차별이 왜 나쁘냐를 기술하게 합니다.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초등학교 위인전으로 여성차별에 맞선 페미니스트 전기들을 읽힙니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역사의 반동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현재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가끔 아시아 남자분들 중에서는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남녀차별 발언이나 행동을 해서 직장 잡을 기회, 승진 기회를 놓치는 것을 봅니다. 지금 틴에이저들이 살아갈 사회는 글로벌 사회이고, 여권의 영향력이 큰 사회입니다. 자녀들이 글로벌 회사에서 일할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의 의식 수준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글로벌 회사의 기준은 어찌됐든 한국보다는 남녀가 평등한 쪽이란 것을 기억하셔야할 겁니다.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결혼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는 모르겠지만 국제 결혼시장에서 여자차별하는 남자들은 자기 가치를 크게 깎아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3년 NYT에서 나왔던 르뽀에서도, 여대생들이 더이상 전통적인 데이트, 결혼에 묶이지 않고 남학생들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http://www.nytimes.com/2013/07/14/fashion/sex-on-campus-she-can-play-that-game-too.html?pagewanted=all&_r=0
이제는 그런 시대인 것이죠. 이제 여학생들은 남편감을 찾지 않고, 커리어를 위해 매진합니다. 제가 우연하게도 최근에 열혈여성들을 좀 만났습니다. 남편들이 전부 전업주부입니다. 남편들 최소 학력이 아이비리그 석사이고, 박사인 정도입니다. 남자들은 은퇴하고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살림하고 음악 연주하고 그림 그리고 혹은 학위를 하고,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제법 큰 연봉을 벌어옵니다. 남편과 아내가 둘다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불가능한 관계죠. 이게 실제로 한국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는 더 많이 일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문화 (특히 남녀차별적 문화)는 힘이 세지만, 자본주의와 세계화 역시 아주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해일은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추세입니다. 여자들도 이렇게 남자들 만큼 욕 잘하는데, 남자 중심으로 짜인 사회를 해체하면 더 인도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도래하겠느냐고, 전우용씨는 묻습니다. 남녀평등한 사회가 남자들이 봤을 때 더 인도적이고 도덕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녀평등한 사회는 지금보다 더 부유한 사회가 될 거라고 맥킨지와 보수신문 WSJ는 예상합니다. 미국은 이미 남자 중심으로 짜인 사회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경제발전하자고 아젠다를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뒤쳐지면 국가 경쟁력 떨어집니다. 실제로 한국이 잘살려면 여성인력을 살려 써야 한다고 맥킨지 코리아가 자문을 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수주한 리포트였죠. 이로 인해 많은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사람들이 남녀평등이 국제적으로 대세이고, 또 남녀평등이 대세여야만 한국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속속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캔자스 대학 김창환 교수의 포스팅을 소개합니다.
http://sovidence.tistory.com/789
2016.09.23 16:11
2016.09.23 16:42
전우용씨 아들 이야기를 보면 그옛날 남녀차별의 과실을 제대로 따먹은 양반들이 이제와서 양심선언하듯 젊은 세대들에게 N빵으로 고통분담하자하면 좀 벙찔것같다는 생각이 들긴합니다. 거부할수없는 남녀평등의 해일이 아무 노력없이 자연재해처럼 우리 사회를 덮칠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차별철폐는 경제성장의 요인이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권력의 이동이 전제되어야 가능하겠죠. 그게 이뤄지면 WSJ이 아니라 조선일보라도 대열에 동참하겠지만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못시키는 현실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남의 나라 이야기같게 들릴 것같네요. 우리는 그동안도 서구국가들과 인식의 시차를 보이면서 잘도 살아왔지 않았던가요? '한국식 ㅇㅇㅇㅇ'같은 말로요.
2016.09.25 19:55
2016.09.23 17:27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평등을 가져오느냐 그렇지 않느냐 자체가 우선 너무나 큰 논란거리죠. 저 논리 자체가 고소득 직종이 아니라 저소득 직종에서도 통하는 지 자체도 의문이고요. 또한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와 여성차별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이야기하는걸요.
2016.09.23 21:53
"자본주의가 평등을 가져오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우선 너무나 큰 논란거리죠"란 말,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김창환 교수의 이 블로그 포스팅 (http://sovidence.tistory.com/783)이 떠오르는 말인데요.
"여성이 전혀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을 때보다 여성의 일부가 노동시장에 참여할 때는 전체 가구의 불평등을 줄어듦. 그 이유는 빈곤층이나 준빈곤층 여성이 노동시장에 먼저 참여하기 때문. 여성 노동 시장 참여가 전반적으로 확대되어 중상층의 여성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 가구 불평등은 증가함. 중산층 여성이 교육도 더 많이 받고 전문/관리직을 취득할 확률이 높기 때문.
나찌가 전문직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함으로써 남성 노동자의 전문직 취득을 용이케하고 전체 가구 불평등은 줄인 효과가 있었음.
나찌와 비교하는 것이 좀 극단적이기는 하나, 한국에서 실업률이 매우 낮게 유지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역시 여성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 한국의 여성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음. 그 결과 한국의 교육 받은 남성들은 경쟁률이 절반으로 줄이들어 손쉽게 전문/관리직을 취득할 수 있었음.
경제적 빈곤층의 여성들은 어차피 허드렛일을 하면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시장 배제 효과는 주로 "괜찮은 일자리"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효과임. 이는 한국에서 가구 불평등을 낮추는 효과도 있음.
한국이 나찌의 정책을 베낀 것은 아니나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배제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메카니즘에 동일한 정책적 효과임."
간단하게 요약하면 남녀평등을 이루면 한국이 더 부유해지는 반면 가구 불평등은 증가하겠죠. 반면 남녀차별 문화를 존속하면 한국은 경제 후진국이 되지만 전체가구 불평등을 줄어들겠죠. 정책 입안자로서 세계 추세를 고려하면 전자를 선택하는 게 현명하죠. 특히 인구 구조로 봤을 때 한국은 젊은 노동인력이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여성 노동력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국가 경제적으로 자살행위와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추세라면 글로벌 인력시장에서 한국의 교육받은 여성들을 흡수해갈 확률도 충분히 있죠. 즉 교육투자는 한국에서 하고 이득은 다른 나라에서 가져가는 거죠. 실제로 Siegel, Pyun, and Cheon (2014: working paper지만 이번에 저널에 accept 되었음) http://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1653087 논문 보면, 한국의 여성차별 때문에 교육받은 여성인력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한데, 외국인 회사들이 여성들을 타겟으로 적극 고용함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적인 문화로 인해 배제되나, 국제노동시장에서 봤을 때는 이 여성노동력이 싸고 질이 높으니까) 는 내용입니다.
이미 2010년에 한국에서 글로벌 기업이 사업을 하려면 여성을 고용해야 이득이라는 내용이 Harvard working knowledge에 나왔죠. (by Carmen Nobel) 자본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죠.
http://hbswk.hbs.edu/item/it-pays-to-hire-women-in-countries-that-wont
2016.09.24 06:55
인적자본이 중요한 고소득 일자리에서는 자본의 욕구가 평등의 움직임을 낳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양극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나쁜 일자리들을 위해 각종 차별들(여성, 인종, 국적 기타 등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사실이에요.
2016.09.24 07:14
MELM님은 용어 정의부터 하셔야 무슨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평등이라는 게 소득평등을 말하는 건지, 남녀평등을 말하는 건지.
저는 위에서 남녀평등이 가구소득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김창환 교수의 주장을 소개했죠. 그 내용을 잘 읽어보면, 저소득층 여성이 노동시장에 들어오면 가구소득 불평등은 줄어듭니다. 저소득층 가구에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예요. 이런 면으로 봤을 때 저소득층 여성 노동참여를 끌어들이면 보다 가구간 '소득 평등'을 낳는 거구요. 고등교육 받은 중산층 이상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집입하면 이들은 보다 고임금자가 되기 때문에 '남녀평등'은 증가하고 가구간 '소득평등'은 줄어드는 겁니다. 다수의 나쁜 일자리라는 건 양극화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고 나쁜 일자리란 건 늘 있어왔구요. MELM님이 말하는 나쁜 일자리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고 저소득인 일자리라고 가정한다면, 그런 일자리라도 저소득층 여성들이 일할 수 있으면 가구소득은 보다 평등해졌다는 겁니다. 글을 읽고 댓글을 다시는 건지 의아하네요.
2016.09.24 08:10
자본주의 발전이 곧 양성평등을 추동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상하로 분절된 노동시장 중 에서 상층 만큼이나 하층에서도 성별직업분리가 해체되고 있음을 입증해야해요. 그렇지만 하층에서 소위 돌봄노동, 감정노동 등으로 불리는 열악한 일자리들이 여성의 일로 구조화되고 있죠. "서구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1960년대 이후 노동시장 젠더 체계에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성별직업분리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성별직업분리 완화 경향도 정체 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며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성별직업분리의 위력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난다(England, 2010). 특히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성별직업분리에 관한 연구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서비스 산업화 등 급변하는 노동시장 상황에서 성별직업분리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재구조화되고 있지만, 성별임금격차를 비롯한 젠더 불평등한 노동시장 결과와의 밀접한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Ehrenreich and Hochschild, 2003; Gauchat, Kelly and Wallace. 2012; McCall, 2001; Raworth, 2004; Waller and Marcos, 2005)." 이건 한국사회학에 실렸던 허은(2013: 244)의 논문 일부분이에요.
2016.09.24 08:18
결정적으로 겨자님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적자본론은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적 입장일 뿐, 유일한 정답이 아니에요. 인적자본이 그대로 시장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논의는 너무나 많아요. 자본주의가 인적자본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평등만을 추구한다면, 자본주의 최전선인 미국이 왜 저지경이겠어요.
2016.09.24 09:29
2016.09.24 10:17
말씀하신 미국에서 일어나는 변화인 "양질의 여성노동력을 성별 분업없이 활용하자"가 노동시장 일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분절된 노동시장의 주로 위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란 거에요. 위쪽에서는 그런 긍적적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래쪽에서는 성별분업에 기초해 여성노동을 저가에 후려치는 일이 더욱더 심화되는 중이죠. 다시말해 저 보수지에서 주장하는 양성평등은 여성일반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란거에요. 자본주의는 양성차별문화를 단지 타개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는거죠. 그리고 그 경계가 노동시장의 분절과 겹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고요.
2016.09.24 12:14
2016.09.23 17:29
전우용이라는 사람 스탠스 웃깁니다. 역사학자이고 근현대사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입장이죠.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볼 수 있다는 뉴라이트의 입장에 비판적인 진영에 속합니다. 피식민자들이 발언통로, 혹은 합법적 저항의 경로가 사라진 상황에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폭력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메갈 논쟁에 있어서 만큼은 뉴라이트 못지 않은 기계적 합리주의자로 돌변합니다. 인터넷상에서의 예의를 말하기도 하고 폭력의 내면화를 말하기도 합니다. 메갈과 이들을 용인하는 여성주의는 그들이 반대하는 차별만큼 나쁜 것이죠. 맥락적 이해 따위는 개나 줘버립니다. 자기모순이죠.
지난번 시사인 절독 파동 때 시사인을 향해 일갈한 것을 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대중을 무시하는 언론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논지로 질타를 하더군요. 그렇다면 그못지않게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덕일과 환단고기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전우용 본인은 그들을 혐오하겠죠. 그런데 시사인 문제에 있어서 그가 취하는 태도는 이덕일과 다르지 않아요.
학자라는 사람이 SNS뽕을 맞으면 어떻게 밑바닥이 드러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순식간에 자신과 학문적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2016.09.23 20:20
2016.09.23 18:02
막줄에 링크하신 김창환교수의 글의 결론이 제가 지난해부터 인터넷 일각에서 불고 있는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그러다 디지게 냅두자'라고 결론을 내린 이유입니다. 여성혐오는 남성들의 자기파괴적 인식이라는거죠 결국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충실하자면 대다수의 남성들은 반성하며 여성혐오를 거두게 될것이고 변화를 거부하며 메갈같은 허수아비 때리기에만 골몰하는 것들은 결국 러다이트 운동을 주동하던 육체노동자들 신세가 되겠죠. "이 구조적 변화의 약한 고리에 위치한 남성들이 여성혐오라는 자기파괴적 인식을 갖지 않도록 돕는 길이다."
2016.09.24 10:58
2016.09.24 12:32
우파도 스펙트럼이 넓죠. 그리고 WSJ도 여성차별적인 기사 썼다가, 이런 특집 올렸다가, 오락가락합니다. 미국 경제가 다소 지지부진 하고 아랫목까지 군불 잘 들어오지 않으니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성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돌파구를 뚫어보겠다는 거죠.
왜 우파도 스펙트럼 넓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냐 하면, 현재 트럼프가 던지는 여성혐오적 발언때문입니다. 노동시장에서 좌절한 사람들이 첫째는 이민자를 미워하지만, 다음으로는 잘나가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증오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트럼프가 여성에게 한 말은 평소같으면 용납 못되는 말이거든요. 미국에서는 남자가 고등학교만 나와도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2016.09.27 20:06
게다가 한국의 우파들이 양성간 경제적 평등에 동의하는가 하면... 아니라고 봅니다. 아내가 나가서 돈 벌어오는 건 좋지만 decision making 권한은 내게 있고 가장은 여전히 나이며 살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한다 이 정도라고 생각해요.
영미권에서는 이미 평등한 부부가 고소득을 누립니다. 한국남성의 살길은 여성관을 개조하여 황금알을 낳는 여성에게 구애하고 여성이 계속 황금알을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변화시키는 거 아닐까 하네요. 그럼 많은 남성들의 꿈인 백수로 살 수도 있단 말이죠....